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ti Feb 11. 2024

논문이라는 글쓰기 장르

  모든 글쓰기 장르가 그렇겠지만, 특히나 논문 글 쓰기는 오만가지 감정과의 싸움을 각오해야 했다. 논문 쓰기는 자료 조사와 연구를 통해 '자신만 쓸 수 있는 그 한 줄'을 만들기 위해 달려가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소위 '선행 연구'라 불리는 지금까지의 연구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그러다 이미 저 산의 고지에 올라서 깃발을 꽂아 놓은 이들의 흔적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때마다, 나는 이곳에서 얼마나 작은 점에 불과한가를 끊임없이 확인하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가 아니라, '알아가는 만큼 부끄러워진다'와 같은 감정이 밀려오곤 했다. 어느새 나도 그들의 연구 앞에 새로운 디딤돌 하나를 놓고 싶다는 의욕은 사라지고, 이미 놓인 돌 옆에 모래알 하나처럼 붙기는 할 수 있을지 하는 자괴감이 슬며시 밀려오곤 했다.


  하지만, 나는 본격적인 논문 쓰기 작업을 하기 전까지 무척이나 흥분된 경험을 하다 온 상태였다. 몇 달 동안, 국사편찬위원회와 북한 자료센터를 들락거리며 자료 수집을 해 왔다. 이베이에서 구입한 물건들이 라트비아, 캐나다, 독일 등지에서 내게 날아왔다. 택배 상자를 뜯고 책자를 넘겨보다가 논문에 사용할 만한 도판 이미지 하나라도 발견하게 될 때의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국내에 있을 리 없는, 나만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이 내 손에 있었다.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던 자료들을 비교해서 들여다보다가 어느 순간 상관없이 보이던 낱개의 조각들이 시대적 맥락 속에서 읽히는 순간, 나는 이미 학술대회 발표장에 서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하지만, 이 단계를 넘어 본격적으로 그물을 짜는 글쓰기를 할 때는 전혀 다른 감정과 마주해야 했다.



  논문이 잘 쓰이지 않는다고 하소연했을 때, 출판사 편집자 출신의 내 친구는 모든 초고는 다 쓰레기이니, 쓰레기라도 써 보자는 마음으로 우선은 막 써 내려가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 말을 붙잡고 써 내려가다 보면, 또 지도교수의 말이 떠올라 멈칫하곤 했다. 논문은 이 분야 연구에 어떠한 공헌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 논문은 전공자들에게 많이 읽혀야 가치가 있다는 것, 인용되지 않는 논문은 생명력이 없다는 것. 이런 생각이 한번 밀려들면 내 논문은 학위논문 심사장에서나 한번 읽히고 사라지고 마는 글이 될 것인가 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올라타게 되는 것이었다.


  논문은 자료와 논거를 바탕으로 주장하는 글쓰기이다. 따라서 1차 사료를 정확히 표시해야 했다. 사료를 분석하는 데 논리적 비약이 있어서도 안 된다. 논문 글쓰기는 지나치게 짧은 단문은 사용하지 않는 장르인데, 그러다 보면 글이 길어지면서 주어와 술어가 조응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곤 했다. 


  각주와 본문을 조율하는 것도 문제였다. 대중서에서는 본문에 들어가서 독자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내용을 각주로 내려보내는 것이 나을 때가 있었다. 내가 발굴한 것들을 자랑하고 싶어서 본문에 펼쳐놓고 싶은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각주 안으로 겸손하게 접어 두는 것이 좋았다. 논문을 읽는 독자들은 주제를 중심으로 읽어가고 있으니 부수적인 이야기들은 독서 행위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었다.


  언젠가 기말 발표를 했을 때, 지도교수님은 내게 설명과 발표는 부족함이 없으나, 글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면 좋겠다고 조언하셨다. 연구자는 발표가 아니라 글로 승부해야 하며, 학술 논문 한 편 안에서 자신의 역량을 다 보여야 한다고 했다. 정곡을 찔린 듯했다. 나는 PPT 발표 준비에 더 많은 공을 기울이곤 했었다. 발표에서 이 부분은 이렇게 덧붙여야지, 저렇게 강조해야지 했던 것들이 있었다. 글보다 발표에 더 집중했던 건, 수업을 오랫동안 해 온 교사의 습관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글 프로그램을 열고 깜빡거리는 커서를 보고 있으면, 얼룩 하나 없는 하얀 도화지를 받아 든 기분이 들었다. 선을 그어서 스케치도 하고 색도 칠해야 하는데, 정작 선 하나 긋는 일부터 주저하게 되었다. 지우개로 지우면 될 일이지만, 한 번에 좋은 선을 그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소설가 정아은의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진정으로 글을 쓰고 싶다면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잘 쓰지 않겠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끝까지 쓰겠다. 어쩌면 글쓰기란, 잘 쓰고 싶다는 마음과의 싸움이 그 시작이요, 끝인 장르일지도 모른다."


  딱 내 마음과 같은 문장이었다. '잘 쓰지 않겠다.', '막 쓰겠다.', '어차피 초고는 쓰레기다.', '나중에 다시 고치면 된다.'. 이런 글귀들을 마음속에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한글 프로그램은 닫아버리고 인터넷 창을 먼저 열었다.  흠집 없는 하얀 도화지 같은 한글 프로그램에 초고를 쓰는 대신 이면지같이 막 써도 부담 없는 인터넷 창에 낙서처럼 논문 글들을 써 나가기 시작했다. 

                     

이전 16화 사료 수집부터 난감한 북한미술이라는 전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