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학과 안에는 도자사, 불교미술사, 회화사 전공자들이 있다. 각각의 전공마다 논문 작성을 위한 자료 수집의 방법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 도자사 전공자들은 직접 발굴을 하면서 출토된 유물로 논문을 쓰는 이들이 많고, 불교 미술사 전공자들은 중국이나 일본 등지의 사찰을 답사하며 자료를 수집한다. 회화사의 경우 미술관을 가거나 작품의 개인 소장자를 찾아가 작품을 실견하고 글을 쓴다. 또한, 회화사는 도자사와 불교미술사와 달리 작품의 제작자가 명확히 드러나는 장르이다 보니, 작가의 유족을 만나 작가의 생애와 작품 활동을 구술 채록하는 작업도 이루어진다.
그런데, 회화사 중에서도 '북한 미술'을 논문 주제로 잡으면, 자료를 수집할 일이 막막하다. 북한의 평양미술관을 방문해서 작품을 실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평양미술대학에서 문헌 자료들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작가의 유족을 만나 인터뷰할 방법도 없다.
결국 한국에 소장되어 있는 자료들을 삭삭 긁어모아야 한다. 석사 2학기생 시절부터 북한 미술 자료를 찾아 통일부 북한 자료센터와 국사편찬위원회 사료관을 드나들었다. 그러나 내가 살펴보는 1950년대 북한 미술 자료는 이곳에도 많지 않았다. 이 기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자료도 러시아를 통해 들어온 복사본인 경우가 많아 글자 판독이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무엇보다 회화사는 그림을 보고 이야기해야 할 텐데, 원본은커녕 칼라 도판조차 구하기 쉽지 않았다.
이때부터 북한 미술을 함께 공부하던 대학원 사람들은 각자 우회로를 찾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일본으로, 누군가는 중국으로, 독일로 가서 흩어져 있는 흔적들을 쫓았다. 해외의 중고 사이트를 뒤적이며 다들 부지런히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한동안은 어떤 책을 얼마 주고 일본이나 중국 사이트에서 구입했는지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주된 대화였다. 이때부터 휴대용 스캐너를 장만하고 부지런히 도판을 긁어서 이미지 파일로 변환해 두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우리들 사이에는 암묵적 합의가 하나 있었다. 구입해 온 자료가 어느 나라의 어떤 사이트에서 찾은 것인지는 묻지 않았다. 밤샘하며 수십 번의 검색을 통해 어렵게 알아낸 자료 소장 출처는 그 사람만이 알고 있는 게 맞았다. 이는 상대에 대한 학문적 예의였다.
나도 눈치껏 구글을 돌려가며 검색을 시작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복사해 온 <조선 미술> 잡지에 언급된 구절을 참고로, 관련 단어를 파파고로 러시아어나 중국어로 변환하여 조회했다. 발간된 지 70여 년이 넘어가는, 북한 발행 자료들은 '소련' 시절의 국가에 흩어져 있었다.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우크라이나 등지에 흩어져 있던 물건이 주문한 지 한 달이 지나서 우리 집으로 하나둘 배송되어 오기 시작했다. 영어 울렁증이 있는 내가 해외 사이트에서 혼자 물건을 사 낸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