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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i Feb 01. 2024

"나는 학계를 깜짝 놀라게 할 논문을 쓸 거야"

  대부분 학생의 미술사 대학원 진학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석사 학위 취득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학예사로 근무하기 위해서는 석사학위는 필수 조건이다. 학위를 따기 위해서는 논문을 써야 한다. 하지만 애초 학예사가 될 목적도 아닌, 학위를 따기 위해서도 아닌, 삶의 쉼표를 찍어보자고 왔던 나에게 논문은 남의 나라 일이었다. '그놈의 논문' 때문에 울고 웃는 선배들을 보며 내심 나는 저 고통의 대열에 서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애매해지기 시작했다. 동기들과 후배들은 마주할 때마다 어떤 주제를 쓸 것인지를, 현재 논문 진도는 얼마만큼 나갔는지 하는 이야기들을 나눴다. 무엇보다 다른 연구자들의 논문을 읽어갈수록 '그놈의 논문', 나도 한번 쓰고 싶어졌다. 특히나 박사 논문을 읽다 보면 누군가 인생을 갈아 만든 지적 결과물을 마주하는 경이로움이 있었다. 그 세계를 한번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 사실로 공식화되어 교과서에 실리는 한 문장은 많은 연구자들의 자료 수집과 입증 과정의 결과물이었다. 논문들을 읽으며 연구자들을 상상했다. 문장 하나, 각주 하나, 참고 문헌 하나가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석사 2학기에 지도 교수님을 정했고 논문 주제 상담을 했다. 교수님은 강의 시간에도 종종 연구자는 논문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시곤 했다. 다른 연구자에게 인용되고 회자되어야 논문으로서의 생명력을 갖는다고 하셨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누군가의 아류로 그치고 말 것이라고 하셨다. 나 역시 이력서나 경력에 한 줄 보충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앞선 이들의 축적된 연구에 딱 한 개라도 나만의 돌을 하나 놓고 싶다고 생각했다.


  회화사 논문의 경우, 크게 작가론 중심과 주제 중심으로 나눠볼 수 있다. 작가론의 경우, 기존에 연구된 바 없는 화가의 생애를 조사하고 작품을 분석하는 방식이다. 화가 유족의 구술 증언을 채록하고 생애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하면 되니 상대적으로 논문을 빨리 완성할 수 있었다. 반면 주제 중심 회화사의 경우 주제를 어떻게 선정하냐에 따라 논문의 완성도나 가치가 달라졌다. 내게 더 끌리는 방식은 후자였다. 국사편찬위원회와 북한 자료센터를 들락거리며 남들이 쓰지 않은 주제를 뽑아내기 위해 자료를 뒤적였다.


  북한 역사 교과서에 재현된 역사 사건의 이미지 양상을 정리해 볼까 생각했다. 북한 역사 교과서 서술을 연구한 역사교육 전공자들의 논문은 이미 나와 있었지만, 교과서에 수록된 그림을 분석한 논문은 나온 적이 없었다. 역사 교사인 내가 미술사학을 전공하면서 쓸 수 있는 경계의 좋은 주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료를 모을수록 점점 좌절하게 되었다. 북한 역사 교과서 속의 그림은 펜으로 그려진 스케치화가 대부분이었는데, 미술사적 가치는 낮아 보였다. 도판 분석을 하기에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 않았다. 나만이 찾아낼 수 있는 참신한 주제라고 생각했던 것은 물 건너가 버렸다. 여태 내가 구상해 본 주제가 나오지 않은 거,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시작해야 했다. 폴더를 새로 만들었다. 1990년대 제작된 북한 미술 작품집을 보니 4·19 혁명과 5.18 민주화운동을 그린 작품들이 있었다. 우리 쪽 사진 자료를 참고해서 그렸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사의 장면이 그쪽 화가들에 의해 재현되어 있었다. 우리의 민주화운동을 이미지화하여 자신들의 체제 우월성을 홍보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내용 또한 아직 연구된 바 없는 주제였다. 하지만 자료를 모으고 글을 정리할수록 과연 이 연구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다. 상대를 노골적으로 혐오하고 조롱하는 그림을 계속 보는 일 또한 정서적으로 우울감을 가져왔다. 결국 이 주제도 접고 말았다. 그렇게 논문 주제 탐색만 하다가 2주가 흘렀다.


  이 시기 소설가 정세랑의 <옥상에서 만나요>를 읽었다. 정세랑은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던 작가이다. 논문과 관련한 자신의 경험을 묘사한 부분을 읽다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야기'라고 말해버린 시점에서 이미 끝나버린 거다. 내 논문은 모든 망한 논문의 시작이 대개 그렇듯이, 나 역시 나만 들을 수 있는 역사의 속삭임을 들었다고 믿었다."


  '논문'을 쓰고 싶었으나, 그건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평가. 이건 기말 주제 발표 때 나 역시도 들었던 이야기였다. 논문을 쓰는 이들은 누구나 세상을, 학계를 깜짝 놀라게 할 글을 발표하고 싶다. 자료를 한참 수집하고 정리해 놓고 나면, 그제야 읽은 선행 연구 속에 내가 할 이야기가 이미 다 실려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내가 이 산을 제일 먼저 오르겠구나 하고 올랐는데, 막상 도착하니 이미 누군가 꽂아 놓은 깃발을 발견하게 되는 거지. 그제야 '나만 들을 수 있는 역사의 속삭임을 들었다고 믿었다'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논문 주제 정하는 게, 결코 만만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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