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ti Feb 11. 2024

누군가 외친 '세이프'라는 말

  아이가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사를 했다. 위탁 이모님에게 아이를 맡겨 왔던 우리 부부는 내 직장 근처에 있는 공동육아에서 아이를 키우기로 결정했다. '터전'이라 불리는 그 공간에서 8년 정도 여러 가족과 함께 아이를 키웠다. 늘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었고, 더구나 그 가운데는 저희끼리 할퀴고 싸우기도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궂은날도 있고, 속 시끄러운 날도 있었다. 그래도 지나고 나니 반짝거렸던 어떤 순간이 떠오르는데, 가령 이런 장면이었다.


  강화로 모꼬지를 갔던 날, 우리 부모들은 야외 벤치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앞에는 네 살배기 민우가 계단 옆 비탈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뒤뚱거리면서 가속도 붙어서 내려오는 폼이 안 그래도 불안하다 싶었는데, 철퍼덕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민우가 넘어지는 걸 보고, 우리는 순간 대화가 끊긴 채, "아이고" 하고 아이를 쳐다보았다. 이제 막 넘어진 민우는 자기를 쳐다보는 한 무리의 부모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울음보가 막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 녀석은 으앙 하고 울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한 아빠가 "세이프!"하고 외쳤다. 그러자 나머지 부모들이 웃음이 터져버렸고, 다 같이 박장대소하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나도 나도 "우리 민우가 울지도 않고 대견하네."하고 말을 보탰다. 민우의 얼굴에 순간 웃음이 번졌다. 아이는 툭툭 털고 혼자 일어났고, 다시 쪼르르 뛰어서, 원래 비탈을 내려오던 지점에 다시 섰다. 그리고 또 비탈을 총총총 뛰어 내려오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내가 공동육아에 처음 들어갔을 때, 한 엄마는 아이를 공동육아에서 키우는 큰 장점 중의 하나는 호의적인 어른들의 따뜻한 눈빛을 크고 자랄 수 있다는 것이라 했다.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떠올릴 수 있는 순간이었다. 유년기에 자신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많은 어른의 눈빛을 보고 자란 아이는 다시 금세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넘어진 아이와 그 아이를 함께 응원했던 한 무리의 어른들. 누군가 외친 '세이프'라는 말을, 어떤 의미가 담긴 메시지인지를 빠르게 인지하고, 모두가 아이에게 힘을 보탰던 순간, 그 짧은 순간이 공동육아를 상징하는 한 장면으로 내게 남았다. 


이전 21화 학위도 없는 사람이 무슨 강연을 한다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