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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i Feb 11. 2024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가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에 1950년대 북한 자료들이 소장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6.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으로 한반도에 들어온 미군은 38도선을 넘어 평양으로 진격한다. 이때 평양 시내 곳곳의 공공기관과 유명 인사들의 집에서 문서들을 노획해 왔고 그것이 현재 국립문서기록관리청, 흔히 NARA라고 불리는 곳에 소장되어 있었다.


  2020년 2월, 대학원 사람들과 열흘간의 일정으로 그곳을 방문하였다. 나는 그저 스쳐 가는 관광객이라 그들의 문화를 내밀한 면까지 알지 못하지만, 몇 가지 인상적인 것들이 있었다. 이들은 모르는 이와 눈이 마주치면 웃거나 '안녕'하고 인사를 건네왔다. 알지 못하는 타자와 눈이 마주치면 시선을 피하는 게 예의인 우리나라와 문화 양상이 달랐다. NARA 열람실에서 필요한 자료를 신청하고 카트를 받아 들게 되면 "원하는 자료를 찾길 바란다." 혹은 "행운을 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짧은 영어 실력 탓에 미국에서의 며칠 동안도 참 곤혹스러웠다. 사실 일 년 전부터 인도인 대학원생 톨리에게 일대일 영어 레슨을 받아 왔었다. 미리 나눌 대화는 파파고를 돌려서 외우고 톨리와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해 왔었다. 하지만 실전에 나가게 되자 긴장이 되었다. 나의 영어 선생 톨리는 내게 미국에서는 우선 "Can I have -?"만 잘 사용해도 될 거라고 긴급 처방을 해 주었다.


  하지만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필수 문장들은 어떻게 외워서 이야기해 보겠으나, 그다음에 이들이 받아쳐서 빠르게 대답하는 말들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뭐라는 거니?' 하는 마음을 감춘 채, 어색한 미소만 지을 수밖에 없었는데, 나의 반응을 본 NARA 열람실의 직원들은 대충 자신들이 이해한 만큼, 일 처리를 해 주기도 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이에게 보내는 답답해하는 눈빛을 이곳 직원들에게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그러나 NARA 밖으로 나가 다른 기관의 식당이나 라커룸에 갔을 때는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이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느끼곤 했다. 타국의 언어를 유창하게 사용하지 못하면, 현지인들보다 하나의 핸디캡을 갖게 된다. 누군가 아무렇지도 않게 수행할 수 있는 일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한편 신체적으로 장애를 가진 이들의 삶도 이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장애를 평균의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는 관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하루 종일 긴장하고 지낸 탓인지, 시차 적응이 안 된 탓인지, 저녁을 먹고 침대에 잠깐 눕는다는 것이 기절한 듯 잠들어 새벽에 잠이 깨었다. 그때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클릭했다가, 성전환 수술을 한 학생이 결국 숙명여대 입학을 포기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녀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되었다 하더라도, 재학생들은 '정서적 거부감'이 든다고 했다. 끝까지 이겨내서 또 하나의 역사를 써 주었다면 좋았겠지만, 당사자는 어디서든 이질적인 존재로 주목받는 공간에서 버텨내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 미국으로 오기 전에 캐나다를 경유했는데, 캐나다 이스타 비자 용지의 한 단어가 눈에 들어왔었다. 자신의 성별을 체크하는 란에 남성과 여성 이외에, 'another gender'라는 칸이 하나 더 있었다. 인식은 제도를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제도의 변화는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제도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결국 숙명여대 입학을 포기해 버린 학생의 상황을 보며, '정서적 거부감'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쉽게 차별을 퉁쳐버리는 단어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제도적으로는 또는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왠지 마음으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라는 말이 누군가에게 더 큰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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