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ti Feb 12. 2024

가닿지 못하고 미국 아카이브에 잠들어 있는 편지들

 

 1998년 경북 안동에서 무덤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던 적이 있었다. 조선시대 무덤 속에서는 머리카락으로 만든 미투리 신발과 한글 편지가 들어 있었다. 일명 '원이 엄마의 편지'이다. 무덤의 주인인 이응태의 부인이었던 원이 엄마는 아픈 남편이 죽고 나자,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미투리 신발을 함께 묻는다. 여기에 편지도 한 장 넣는데, 거기에는 "남들도 우리처럼 어여삐 사랑할까"하는 문장이 적혀 있다. 원이 엄마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넘쳐서, 편지지의 바깥쪽까지 다른 방향으로도 글자를 빼곡하게 둘렀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자료실에서 이와 비슷한 편지 한 통을 읽게 되었다. 편지가 쓰인 시점은 1951년 6월 23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일 년이 지난 무렵이었다. "사랑하는 남편에게"로 시작하는 글에는 이들 부부의 아이 성명이도 잘 지내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성명이 엄마는 7개월 만에 남편의 답장을 받았던 모양이었다. 전쟁에 나간 남편이 처음으로 보내온 편지에서 남편의 생사를 확인하고 자신의 애탔던 마음을 다 털어놓았다. 그녀는 몸조심하라는 이야기로 마무리하며 "처 올림"이라는 마지막 문장을 남긴 이후에도 하고픈 이야기가 흘러넘쳤던 모양이다. 편지지 바깥 공간에 “가족 일동 평안하오니 안심하십시오”, “이 편지를 받아보았으면 반드시 한 장 더 하시오.”, “떠나면 떠난다고 하십시오”라는 말을 담았다. 하고 싶은 말이 차고 넘쳐 버린 편지 한 통이었다.          

  아카이브 자료실에는 많은 이들이 자신의 남편과 아들의 안부를 걱정하며 남긴 편지들이 박스 안에 담겨 있었다. 이 편지들은 주로 평양중앙우체국에서 미군이 주로 노획해 온 것으로 전달되지 못한 채, 미국에 건너와 있다. 전쟁 통에 성명이 엄마가 애타게 쓴 이 편지는 성명이 아빠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있을 때, '성명이 엄마'의 편지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었다. 그 글의 댓글에 박건호 선생님께서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라는 책을 참고해 보라는 이야기를 남겨 주셨었다. 이 책은 국립중앙도서관 사업의 일환으로 오랜 기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자료 수집 및 조사를 해 온 이흥환 선생님이 쓴 책이었다. 박스 두 개에서 나온 천여 개의 편지를 정리하여 묶었다고 했다. 저자는 먼저 편지 주인공이 직책과 상황을 간단히 언급하고, 편지 원문을 보여주고, 마지막으로 당시 상황과 비교하여 편지글을 분석한다. 이런 형태의 구성은 저자가 개입할 부분이 많지 않은데, 저자는 편지의 글씨체와 문체 등을 맛깔나게 비교 분석한 필력이 돋보였다.


  혹여 저자가 편지마다 이것이 얼마나 슬픈 상황이냐고 덧붙였다면 읽는 내내 감정 과잉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저자는 편지 주인공이 저 편지를 썼던 날의 그 장소는 역사적으로 어떠한 상황이었다고만, 마지막에 그저 툭하고 한 문장을 던져두고 만다. 편지 내용에 몰입해 있던 나는 그럴 때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마는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미리 결말까지 알고 보는 느낌이 들곤 했다.


  우리는 '6·25 전쟁'이라 부르고, 저들은 '조국 해방전쟁'이라 부르던 사건 속에 휘말린, 북쪽 땅의 전쟁 피난민들은 서로에게 안부를 묻고 당부하고 있었다. 그들은 가족에게 공습기를 보면 쳐다보지 말고 즉시 방공호로 가서 몸을 피하라고 이야기했다. 비행기를 쳐다보고 있던 사람들은 다 죽었다며. 이런 문장들은 날짜와 이름을 쓰고 난 다음에도, 편지지의 여러 여백에 부연 설명으로 덧붙여 쓰여 있곤 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자식 뒤통수에다가, "차 조심해라.', "길 조심해서 건너라"를 몇 번이나 덧붙이는 가족의 마음이다.


  편지는 '기다림'을 전제로 한다. 전쟁 시기에 쓰인 편지는 용건을 전하고 마음을 확인하는 용도를 넘어, 상대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는 절대적 수단이 되기도 한다. 답장 좀 달라는 애끓는 편지들은 현재 상대에게 전해지지 못한 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자료실 박스 안에 들어 있다. 만약 이 편지들은 평양에서 미군이 아니라, 국군이 노획해서 왔더라면 어땠을까. 지금쯤 박물관에 전시되어 훌륭한 1차 사료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 않을까.


  전쟁 통에 가족 간에 쓰인 편지에는 누구를 타도하자던지, 전쟁을 승리로 이끌자는 등의 표현이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날씨가 추워지는데 의복은 어찌하면 좋으냐는 이야기와 10월이 되어 너른 들판에 추수할 일이 걱정이라는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혼례 날짜를 잡아 두었으니, 속히 돌아오라는 이야기도 보인다. 편지 속의 그때 사람들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전쟁이 그로부터도 3년은 더 지속될 거라는 걸.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인가, 그렇지 않다. 전쟁의 반대말은 '일상'이다. 

이전 23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