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ti Feb 15. 2024

독소전쟁포스터와 한국전쟁 포스터 비교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 화가들이 그린 선전 포스터 몇 점이 벽에 걸려 있었다. 네 귀퉁이가 동그랗게 잘려 있는데, 당시 거리의 벽에 붙었던 것을 떼어온 흔적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북한미술계에서 급속한 진전을 보인 분야는 포스터였다. 포스터는 제작 기간이 짧고 공공장소에서 배포, 전시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에 전쟁 상황에서 효율적인 매체로 활용되었다. 이때 제작된 포스터는 북한뿐 아니라 남한의 거리와 건물의 실내외에 부착되어 선전 선동 활동에 이용되었다.


  북측은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의 정당성과 명분을 이미지로 설명하려 하였다. 탁원길의 <인민군 장병들이여 구원하여 달라>는 북측의 인식을 명확히 드러내는 그림이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머니와 아이에게 칼날을 겨누고 있는 것은 미국이다. '미제의 압박으로 떨고 있는 남한 민중', 그리고 '이들을 구원하는 인민군'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그들이 이야기하는 소위 '조국해방전쟁'의 명분을 선전하고자 했다.

1950년대 북한은 소련 미술을 본받고자 했으므로, 혹시 한국전쟁 선전 포스터도 소련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글 창에 soviet war poster라고 입력하니 다양한 전쟁 포스터들이 화면에 떴다. 


그러다가 1942년에 제작된 빅토르 코레츠키(Viktor Koretsky)의 <붉은 군대여, 구원해 달라>라는 작품을 보게 되었다. 이때는 소련이 독일과 전쟁 중이던 시절이다. 코레츠키와 탁원길의 작품은 너무도 닮아 있었다. 탁원길이 코레츠키의 작품을 참고하여 그렸을 것이 확실했다.



 그는 적의 칼날 앞에 놓인 남한의 어머니와 아이의 옷차림을 우리식으로 변형하였으며, 이들을 겨누고 있는 총칼의 도안 또한 '독일 나치 문양'에서 '미국 성조기와 달러($) 문양'으로 바꾸었다. 또한 포스터 상단에는 인공기를 달고 진격하는 탱크를 추가하여 '조국해방전쟁'이라는 명분을 강조했다.



미군의 폭격으로 가족을 잃은 상황은 자주 그려지던 도상이었다. 정관철의 1950년 <인민군 장병들이여 원수를 갚아다고>에서 어머니는 폭격으로 죽은 아이를 안고 절규한다. 이 작품 또한 소련 전쟁 포스터에서 비슷한 것을 찾아볼 수 있었다. 데멘티 쉬마리노프의 1942년 작 <복수>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는데, 여기서 어머니는 '피해자' 혹은 '연민의 대상'으로 형상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한참 진행되고 나서 제작된 포스터 속의 어머니 모습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정관철이 2년 후에 그린 작품에서 어머니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죽은 아이를 품에 안고 있으나, 화면 하단에 돌격하는 인민군과 탱크를 함께 등장시켜 진격을 '명령'하는 주체로 변모되어 있다. 이제 전쟁에서 어머니 도상은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분노를 결의로 승화하는 주체'로 변화한 것이다.


북한의 전쟁 포스터에서 여성 도상의 경우, '가련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통해 미군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데 활용되었다. 반면 남성 도상의 경우, '강인한 군인' 형상으로 전쟁 참여 의지를 고취하고자 하였다.



정관철의 1950년 작 <모든 것을 전선에로 모든 것을 승리를 위하여>는 정면을 응시한 한 남성이 한 손에 기계를 쥐고 다른 손은 전쟁터를 가리키고 있다. 이 그림은 알렉산드르 메델스키의 <조국에 돈을 빌려주자>를 참고 삼아 그린 것으로 보였다. 두 작품 모두 공통으로 전면에 모자를 쓰고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를 내세워 전선으로 물자를 보내는 것을 호소하고 있다. 주제와 도상 면에서 유사성이 높지만, 주인공을 표현한 방식에서는 다소 상이한 차이를 보인다. 메델스키 작품 속 노동자는 입을 벌려 외치는 표정을 통해 청각적으로 접근하는 반면, 정관철 작품에서는 입을 굳게 다문 채 결의에 찬 눈빛을 통해 감상자의 감정에 호소하고 있었다.




같은 시기 제작된 오택경의 <조국을 위하여>는 빅토르 이바노프의 <서쪽을 향하여>와 주제와 구도 면에서 상당히 유사했다. 국기를 배경으로 두 손에 각각 총과 폭탄을 든 병사가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은 오택경이 소련 전쟁 포스터를 참고 삼아 포스터를 제작했음을 짐작게 한다. 그러면서도 오택경은 국기, 군복, 무기 등은 북한의 특성에 맞게 변형하여 묘사하였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북한이 한국전쟁 당시에 제작한 선전 포스터 이미지를 찾고, 이후 러시아 아카이브 사이트에서 독·소 전쟁 포스터를 찾아 비교해 보았다. 소련과 북한의 전쟁포스터는 구도나 도상 등에서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 소련은 1941년에서 45년까지 독일과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며 전쟁 포스터를 생산했던 경험이 있어, 이때 생산된 소련 전쟁 포스터는 북한 화가들에게 중요한 모델로 작용하였다. 북한 화가들은 전선의 변화에 따라 빠른 시일 내에 선전물을 제작해야 했기 때문에 소련 화가들의 포스터를 참고하는 양상이 두드러졌다.


언젠가 이베이 사이트에 한 미국인이 한국전쟁 포스터를 판매한다고 올려놓은 걸 봤었다.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림이었고 원본을 수집하는 의미도 있었다. 종이 질이나 색감을 가까이서 살펴보고 분석할 수도 있었다. 구매를 신청하고 한 달이 지나 배송을 받았었다. 주소 발송지는 USA였다. 한국전쟁 참전 군인이 소장하고 있던 것일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택배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코팅지에 출력된 인쇄물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아주 반짝거리는 종이에, 쨍하게 출력되어 있는 전쟁 포스터라니. 중고나라에서 물품 거래하고 상자를 열었더니 그 안에 벽돌 하나가 들어 있었다더라 하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었으나, 외국인에게 이렇게 사기를 당할 줄이야. 하긴, 애초 70여 년 전의 포스터가 단돈 2달러 일리는 없으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