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길이다. 비가 내린다. 땅을 적신 빗물이 흐르며 공원길을 씻어낸다. 빗물이 우산을 두드린다. 나는 문을 연다. 추억의 문을....
1986년이다. 서울 1호선 종각역 3번 출구로 나오면 종로서적이, 건너편에는 닭꼬치 집들이 즐비했다. 가게들은 길가 쪽 기다란 창문을 열고 장사를 해서 비 오는 날이면 거리에서 빗소리가 연주하는 다양한 음향을 들으며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오천 원에 소주 두 병과 닭꼬치 한 접시를 먹을 수 있던 시절......
신촌의 굴레방 다리를 지나가보면 학사주점들이 한쪽 길가에 줄을 만들었다. 그들은 김치찌개와 두부김치에 소주잔을 부딪치며 추억을 쌓았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해산물이 두툼한 파전에 막걸리를 마시던 모습은 낭만거리였다. 하얀 담배연기를 뿜어대며 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자연이 창조하는 음향소리에 시국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묻힐세라 목청을 높이며 미래를 논했다.
거리를 걸으면서 손잡고 팔짱 끼는 정도였던 때였음을 감안하면 과감하게도 애인 없는 사람 서럽게 두 입술을 쪽쪽 거리며 애정표현을 했던 이들도 있었다. 가능했던 것이 어떤 학사주점에는 테이블 옆에 내숭쟁이나 날라리 커플들을 위한 칸막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 오는 날 친구 녀석이 여자친구와 있다며 같이 술 한잔 하자고 불러 가면 둘이 있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하곤 했던 시절......
"니들 또 비디오 찍냐? ㅋㅋㅋ"
감시카메라도 핸드폰도 없는 세상이라 가능했던 농담이다.
청춘들이 모이던 또 다른 장소는 대학가나 번화가의 경양식집이었다. 그 안의 부드러운 조명과 테이블마다 벽막이는 연애에 목마른 청춘들을 그곳으로 몰려들게 했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안은 더 북적거렸다. ‘낭만'이었다고 할까 아니면 갈 곳이 별로 없었던 놀이문화 때문이었을까. 청춘들은 그곳으로 모였다.
지들끼리 소개팅도 주로 그곳에서 했다. 상대와 만나면 정식을 주문했는데 오래되어 가격은 정확지 않지만 (아마 이천 오백 원이었을 것이다) 왕 돈가스에 수프와 커피가 나왔다.
순수함으로 가득 찬 맑은 눈동자로 서로를 마주 보며 미래 목표가 뭐냐, 이상형은, 좋아하는 팝송은 뭐냐, 어디에 사냐, 취미는 무엇이냐 등을 주고받으며 얘기꽃을 피운다. 물론 그들 중에 돈가스 맛에는 일도 관심 없으면서 '어떻게 해야 저 여자애 옆에 앉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했던 친구들도 있었다. 작전에 작전을 하며 온갖 수단을 젖은 손수건 짜듯 궁리해 내는 사이 가슴은 두근두근. 콩닥콩닥. 난리가 나고. 아직 20대 초반. 연애 고수도 아니고 시간만 흐르다가.....
.......
그곳을 나오면서 누구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우산 같이 쓸까?
..........."
침묵의 허락에 그는 그녀의 우산 아래로 들어가서 우산 내가 들게, 라면서 팔은 은근슬쩍 그녀의 어깨로 올리고 걷는다.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그날 이후 그 둘은 연인의 길을 걷는다.
물론 그들이 다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지는 않았다. 누구는 연애만, 어떤 커플은 오랫동안 일편단심으로 지내다가 결혼식장에서 팔짱을 하고 걸어갔다.
변하지 않기로 맹세하면서.......
사진: 김곤, 2025. 4. 22. 오전, 산책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