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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추억의 온기

by 김곤

요즈음에 토요일이 되면 나보다 두 살 아래인 아내는 말을 놓으며 늘 이렇게 말한다.

내일은 우리 oo 이와 같이 노는 날, 뭐 할까?

글쎄....

어디 가고 싶은 곳 얘기해 봐.

너는?

어허, 너라니, 누나.

뭐래 ㅋㅋㅋ.

터미널?

그래. 좋아.


1981년 지하에 상가들이 하나 둘 들어선 이후 2012년 새 단장한 강남의 명물 고투몰이라는 이름의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 그 후 신세계백화점이 생기면서 신구의 조화가 이루어진 곳.


아내와 백화점에 들어가 명동성당에 갈 때면 미사 후에 줄을 서며 사기도 했던 밤식빵과 예전에 낙성대에 있는 본점에 갔을 때 기다리다가 먹지 못한 맘모스빵을 구입하고 화장실을 찾았을 때다. 한쪽 계단을 올라가니 그곳에는 지금도 예전의 모습이 한편에 남아있는 고속버스터미널 호남선 대합실이다.


초고속지하철이 생기기 전에 명절이면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던 고속버스터미널. 그래서일까. 이별과 만남의 장소, 서민들의 희로애락이 깃들어 있는 그곳에 가면 언제나 추억의 따스함을 느낀다.



초등(국민) 학교 때 서울로 온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찾았을 때다. 그날은 다시 집으로 올라가는 날이었다. 서울에서 편지를 주고받았던 여자 친구가 생각이 났다. 부모님들이 공부해야 한다고 만남을 금지했던 시간들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전화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전날 마신 술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녀가 수화기 앞에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여보세요?

......

여보세요?

응. 나야.

언제 왔어?

며칠 됐어. 나 지금 서울 가.

어딘데.

..... 터미널.

내가 갈게. 가지 말고 기다려. 꼭. 응?

..... 응.


그렇게 그녀와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나는 그녀를 기다리지 않고 서울행 버스를 타고 만다. 왜 그랬는지 그 이유를 나는 아직도 모른다. 아마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라는 막연한 추억 밖에는. 그 후로 그녀를 나는 다시 본 적은 없다. 그래서였을까. 어제 호남선을 뒤로하며 순수했던 그 시절, 잃어버린 인연 속에서 온기를 느끼며 나는 지하철에 올랐다.


남편으로서 아빠로서의 인연 속에 매일 온기를 불어넣으며 살자고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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