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과 점심을 하고 집에 가던 길이었다. 고관절 수술 이후 다리가 불편해지신 장모님에게 여쭈었다.
"다리는 괜찮으세요? 걸으실만하세요?"
내 팔에 의지해서 전혀 힘들지 않다고 하시면서 "자네 같은 사람이 내 사위가 돼서 난 정말 행복해"라고 하셨다.
요즘 장모님은 행복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80이 넘으실때까지 수술대만 수차례 오르락내리락하셨다.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술을 얼마나 했는데. 이렇게 건강히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장모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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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다고 느낄 때가 언제일까?라고 누가 물으면 쉽게 대답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바람결에 스치듯 다가오는옛 생각에 '아! 그때는 참 즐거웠었지'라는 추억에 잠겨본다. 솟구쳐 오르는 순간순간이 한 편의 시요 한컷의 영상이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찰나들이지만그 속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일본 유학 시절에 눈 내리는 이른 아침, 신문배달용 오토바이를 타며 환호성을 들녘으로 날려 보내던 모습은 내 각본 없는 인생 드라마의 명장면 중 하나다.
친구들과 어깨동무하며 노래방에서 술에 음악에 취했던 날들과 아내를 향해 예식장 무대를 긴장하며 걸어갔던 때도 같았다. 딸이 아내의 뱃속에서 세상 빛을 보고 나오는 순간을 맞으며 간호사에게 "건강한 거죠?"라고 물었을 때 "네"라는 말을 그녀에게 듣는 순간, 환희는 이루 말로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아내가 아기새처럼 짹짹거리는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짓는 때와장모님에게서 자네 같은 사위를 만나 행복하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등은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럼, 또 다른 행복은.....?
"나의 행복 속에는 80의 고통이 있다. 기쁨은 20이다."
일본에 있을 때 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의 4번 타자 카네모토 선수가 한 말이다. 오래된 신문기사의 내용이지만 행복과 고통의 비율이 2 대 8이라는 숫자는 정확하게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재일교포 2세로 알려진 그는 큰 체구가 아니었음에도 중장거리 타구를 종종 날려인기가 있었다.
일상을 들여다보면, 수험생은 일정기간 피나는 노력에 따른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사업가는 성공을 위해, 예술가는 훌륭한 작품을창조하기 위해 오랜 시간 힘들게 보내기도 한다. 목표를 달성했다는 행복을 맛보기 위해서말이다.
행복은이처럼 누구나가 동일하게 많은 시간과 고통을 수반해야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소소한 기쁨도 우리네 일상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것일까?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무거운 짐을 잔뜩 들고 가시는 어르신을 도와드리며 나누었던 대화가 문득 생각난다.
"어휴 어르신 그 무거운 것을... 이리 주십시오. 제가 들어다 드릴게요."
"어휴, 고마워요. 세상에! 이리 고마울 수가"
그분의 동 앞까지 가서 짐을 건네 드렸더니
"집에 들어와서 뭐라도 마시고 가요."라는 말씀에 나는 "아니요. 괜찮습니다. 조심히 들고 올라가세요."라고 한 후 마음속 뿌듯함을 안고 돌아섰던 적이 있다.
사소한 일인지 모르지만, 우연히 마음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늘 상존한다. 그 순간의 선택권은 우리 자신에게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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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행복을 느끼지 못한 채 하늘 위에 떠다니는 뭉게구름을 구경하듯이 소중한기쁨의 시간을 인생의 저편에 있는 시냇가로 흘려보내고 있지는않는가? 하고 말이다. 행복의 시간을 타는 것이 얼마 동안 지속 가능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 기준도 체감 온도도 사람마다 매 순간 다르다. 행복의 순간이라는 것은 언제일까? 그것은 자신이 지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닐까. 이는 덕(德)의 실천이요 고정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한 열린 마음은아닐까.
우리는 태어나면서 누구나가 증명 가능한 명제를 가지고 나온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그래서 매 순간이 중요하고행복은 먼 미래를 위해 돈을 모으듯 저축하는것이 아닌 지금 바로 다른 무엇과도 비교하지 않으며 느끼는 가슴 뿌듯함 같은것은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