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래. 꼬니(아내가 나를 부를 때 사용하는 애칭이다.) 왜 울어?"라고 옆에 누워있던 아내가 물었다,
"흐흑....."
난 계속 훌쩍거리며 울기만 했다. 나오는 눈물을 삼킬 수가 없었다. 건너편까지 들렸는지 딸이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 아빠 왜 울어?"하고 딸이 말했다.
계속 훌쩍거리는소리에,
"아빠, 울보야?"하고 다시 딸이 말했다.
이유를 알지 못한 아내는 "삐져서 운대ㅎㅎ"하고 놀려댔다.
"훌쩍... 훌쩍..."
"흥. 흥..."
추운 겨울 고드름이 녹아내리듯 뚝뚝... 떨어지는 콧물을 들이마시는소리와 코푸는 음파가 뒤섞여 방안을 울렸다.
"ㅎㅎㅎㅎㅎ"
"ㅋㅋㅋㅋㅋ"
아내와 딸은 눈앞의 볼거리에 킥킥거리며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듯 계속 웃고 있었다.
그날,
나의 눈가에서 울음 방울의 입자들이 터져 나온 것은 생전 어머니에게 서운하게 했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연거푸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발끝에도 못 미친 막내아들의 철없는 행동과 언어들, 죄송함과 감사함이 뒤범벅이 된 곡성이었다.
생전 어머니는 이러하셨다.전날의 술독을 없애는 데 최고라며 새벽 찬바람을 맞으시고 수산시장에서 사 온 생태로동태탕을 아침상에 올려주셨다. 남자가 추접하게 다니면 안 된다며 핑크색 폴로티를 사주셔서 조카들에게는"핑크 삼촌"이라고 불리게 하셨다. 결혼 후 일주일마다 가면 반찬이며 김치며 바리바리 싸주셨고, 혼자 가서 뵙는 날이면 대문 밖까지 따라 나오셔서 손을 흔들며 잘 가라고 하셨다. 비싼 고깃집에 형제들과 가더라도 너희들이 무슨 돈이 있냐며 늘 호주머니를 주저 없이 개방하셨다.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오른 것은 장모님에게 잘하라는 어머니의 소리 없는 메시지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당신에게 다 하지 못했던 정성, 지금 할 수 있을 때 잘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