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이 없던 시절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야 했던 번호.
여자 친구와 집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백 원짜리 동전을 들고 나와 동네 골목 어귀에 있는 공중전화박스를 찾던 시절.
시간이 지나면서 동전 떨어지는 소리는 왜 그렇게도 요란스럽던지.
내가 일본에서 유학했던 1980년대 말에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늦겠다 싶을 때 천 엔 하는 공중전화용 카드를 편의점에서 구입하여 서울에 계시는 어머니와 밖에서 통화할 때도 그랬다.
엄마 이제 카드 다 떨어진다.
그래. 건강 잘 챙기고.
네.... 주무세요.
아쉬움 속에서 따스함이 있었던 그리움이 때로는 부족함이 우리의 마음을 윤택했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안 보이던 것도 보인다. 자연도 사람도.....
산책을 즐기다 보니 안 보이던 자연과 대화할 수 있는 행운을 만난다. 지난겨울 어느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며 아파트 단지 안 공원길을 지나가는데 감빛의 아침노을이 보였다. 노을을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지금까지 가보지 안 했던 언덕길로 올라가 보았다. 막바지 일출이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아침노을에 시선을 빼앗기며 휴대폰 버튼을 느른 후다. 고개를 드니 겨울 하늘은 포근하게 나를 감싼다.
결혼한 지 삼십 년이 다 되는 우리 부부는 희로애락을 공유하며 서로 나누는 삶을 살았다. 지금까지 온 길은 돌아보면 굽이굽이다. 직선을 가 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요즘의 아내의 얼굴을 아침에 만나면 지금까지 느끼는 못했던 애틋함을 가진다. 시간의 곡선이 주는 선물일 것이다. 아름다운 노을도 물결도 산천도 직선은 없다. 세상은 크고 작은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행을 가다 보면 곡선으로 된 길을 만난다. 직선보다 곡선에서 더 많은 모습을 보며 느낀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혜도 얻는다.
1991년 일본이다. 학교를 가기 전에 집 앞 식당에서 아침으로 불고기 덮밥을 먹었다. 요즘 우리처럼 가게 안 출입구 앞에 있는 주문기기에 돈을 넣고 메뉴를 선택하면 네모난 종이티켓이 나왔다. 티켓을 테이블에 놓으면 주방에 있는 사람이 확인하고 음식을 줬다. 가게 안은 곡선의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바깥쪽은 의자가 안쪽에는 주방이 있었다. 그 사이에는 벽이 없어 음식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주방 한쪽 구석에는 수십 인분이 가능한 커다란 밥솥이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거기에서는 쉴 새 없이 밥 익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났다. 밥솥 위의 동그란 검정 꼭지에서 칙칙 거리며 새어 나오는 소리와 밥그릇 끝부분에 아랫입술을 가져다가 입을 벌린 후 수저 대신 젓가락으로 밥과 고기를 빠르게 긁어모으며 입속으로 가져가며 흡입하는 소리는 내가 살아있다는 설렘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이 떠오르며 갑자기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 것처럼 찾아오는 외로움에 휩싸인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싶지만 떠오르는 사람은 많은데 뭉게구름처럼 그저 생각만 피어오르기를 반복한다. 무엇으로 달랠까 생각하다가 친구에게 전화할까 하다가 아니야 하며 혼자서 어디론가 갈까 하다가 용기는 안 난다. 무엇인가를 했다는 성취감 뒤에 찾아오는 군손님일까. 카페 안에 울려 퍼지는 음악은 오늘따라 왜 이리도 구슬프게 들리는 걸까. 나를 위로라도 하듯 같이 놀자고 계속 말을 걸어주네. 그래서 사람들은 음악을 좋아하는 것일까. 생각나는 사람은 많은데 마음이 가는 사람은 별로 없는 이 마음은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 다른 사람도 이러할까.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도 지금 나처럼 나를 그리워할까.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행복한 일일지도 모르지. 그래서 피어오르는 것일까. 잃어버린 인연 속에 남겨진 온기 속에서 그리움이.
시간의 곡선이 주는 아름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