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정의할 수 있을까. 물리학의 아버지 뉴턴도 하지 않았다는 시간에 대해 문과계 출신인 내가 정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나는 물리학자도 아니요. 과학적 이론을 내 산문에 녹여내면 글이 현악적으로 흘러갈 우려에 독자들의 삶을 강요하는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살아보니, 농부의 발소리에 벼가 익듯이 시간의 소리에 나는 성장하고 그에게 위로를 받으며 생활한다고 말할 수 있기에, 시간의 소중함, 그의 위대한 힘 앞에 겸손함으로, 과거와 미래보다는 현재에 감사하며 생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건넬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을 뿐이다.
누구에게든 평등하게 주어지는 시간의 힘은 위대하다. 누구는 혼자만의 시간을 잘 활용하여 성장해 나가고 누구는 그 시간에 쓸데없는 친구들이나 사람들을 만나는 데에 소비하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시간의 통제를 받으면서 생활하는 우리로서는 이 한정된 시간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삶의 질이 결정된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물론 각자가 느끼는 삶의 질이나 행복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시간의 교훈은 많다. 인간관계에서는 장점만을 보이고 그때까지 보지 못한 그 사람의 단점이 시간이 지나면 보이기도 하여 실망을 하고 헤어지기도 한다. 사람들과 카페에서 만났을 때였다.
내가 이렇게 물었다.
“우리가 일 년에 몇 번 정도 만나는 것이 좋을까요?”
그러자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자주보다는 가끔 만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그러자 다른 사람이 말했다.
“그렇죠. 일 년에 한두 번이 좋지 않을까요?”
내가 다시 말했다.
“그래요. 자주 만나는 것보다 아쉬움에 만나야 관계도 오래가고 다음 모임이 기다려지고 하는 것 같아요.”
영양제는 오랜 시간 복용을 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지난 4월에 병원에서 정기 건강검진을 하고 의사를 만났을 때다.
아내가 의사에게 물었다.
“교수님, 영양제 등을 잘 챙겨야 먹어야 하는데, 어떤 것이 남편에게 좋을까요?”
“글쎄요.”
그의 말에 아내가 다시 물었다.
“요즘 우리 나이에 사람들이 몸에 좋다고 하는 것은 찾아서들 먹으니까요.”
그러자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효과를 보려면 오래도록 먹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요. 그런데 그게 쉽지만 은 않아서요.”
시간의 누적효과는 영양제뿐만 아니다. 운동, 재테크 등에서도 오랜 시간 간절해야 성취감을 맛본다. 나는 산책을 하기 시작한 것이 15년이 넘었다. 최근에는 무릎에 안 좋아 그전보다 마음먹은 대로 걷지 못하기도 한 적이 있었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회복하여 다시 산책을 즐기고 있다. 어려서부터 장이 안 좋았던 터라 매실을 애용하는데, 오랫동안 먹은 고구마와 먹었더니 위와 장이 좋아지고 잦았던 설사도 지금은 하지 않는다. 재테크에서도 장기간 우량주를 보유하고 하는 자만이 누적 수익을 불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혼자만의 시간은 나에게 무엇을 선물할까. 바로 성장과 위로다. 나는 오래전부터 건강을 위해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 그 덕분에 인간관계가 줄었다는 단점도 있지만 장점이 더 많다. 혼자만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그중에 산책과 사유의 시간을 빼놓을 수 없다. 혼자만의 산책은 언제 어디서든 가능하기에 건강도 챙기면서 걸으며 부유하는 생각들을 정리하며 글쓰기의 퇴고의 과정을 거친다. 그러면서 나 자신의 내적 성장을 가져오고 자신을 끝없이 위로하는 시간을 갖는다. 친구들을 좋아해 자주 모임에 나갔더라면 엄두고 내지 못할 일이다.
시간이 주는 힘 앞에 겸손하고 그를 귀중한 손님으로 맞이하며 하루를 보내고 다시 내일, 최선을 다해 맞이하면 좋을 것이다. 오랜 전통의 어느 식당 주인장의 품격 있는 손님맞이처럼. 그것이 시간에 대한 예의요 어떤 상황에서도 시간 앞에서 내 품격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