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가 당신을 부른다

by 김곤

어느 겨울 눈이 내린 아침이었다. 아이와 엄마들이 길을 나섰다. 그들이 가는 길에서는 청소부 아저씨가 소복이 쌓인 눈을 치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엄마가 아이에게 말했다. "얘야 저분들이 거리를 청소하시니까 우리가 이렇게 안전하게 길을 갈 수 있단다. 저들에게 늘 감사해야 할 이유란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 옆을 지나가던 한 엄마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야, 공부 열심히 해야 되는 거야. 알았어! 안 그러면 저 아저씨 같이 되는 거야!"


"제가 구성한 두 아이의 엄마 모습에서 여러분은 무엇이 떠오르나요?"




며칠 전이었다. 길을 가다가 처음으로 낯선 광경(글 제목의 사진)에 눈이 갔다. 길거리나 공원, 그리고 화장실 등에서 버려진 음료수 컵들을 본 적은 있으나 신호등 건널목 앞에 보행자 보호용 봉 위에 장식품(?)으로 버려진 음료수병은 처음이다. 주인은 자신이 마셨던 캔을 봉 위에 세우기 위해 몇 번을 시도한 끝에 성공하고 자아도취하며 건널목을 건넜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보았다. 어처구니가 없었. 살다 보니 별난 구경도 다 하는구나 싶었다.


버려진 비닐봉지과 커피잔

위 사진은 지난해에 집 앞의 공원을 산책하면서 발견했던 것이다. 주인 없는 커피 잔과 먹다 남은 케이크 찌꺼기가 들어있던 비닐봉지다. 그때 이 녀석들을 치우면서 내 마음을 담았던 글도 있다.


사진들 속에는 일상 속 어떤 들의 민낯이 들어있다. 국내총생산(GDP) 세계 10위권을 자랑하는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자신은 그러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원인 제공자일지도 모른다. 기러기아빠를 했을 때 싱가포르에 여려 차례 간 적이 있다. 비슷한 광경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35년 전 일본에서 유학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안에 담배꽁초를 버린 채 남겨진 컵

위의 사진 속 종이컵은 오랜만에 장모님과 점심을 같이 하고 집에 오던 길에 만난 녀석이다. 누군가가 음료수를 마시고 그 안에 담배꽁초를 버린 채 버린 컵이다. 만날 수만 있다면 담배 피웠던 그 컵 주인의 손가락을 깨물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모습을 접했는지 모르겠다. 이뿐만이 아니다. 거리를 가며 음료수를 마시고 태연히 길가에 버리고 가는 학생들도 가끔 본다.




학교와 가정에서 주어진 역할에 우리가 충실하고 있는지 잠시 생각해 보자. 슬프게도 학교는 오로지 명문대와 일류기업에 들어가기 위한 훈련장이 되고, 인성과 교양을 가르치는 교육의 장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집에서 안 되는 교육을 학교에서 담당했다. 지금은 그게 어렵다고 한다. 교사였던 친구는 학생들에게 훈계라도 하면 그다음 날 왜 우리 애한테만 그러냐고 학부모들의 민원전화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일부의 모습일 것이다. 자격 미달의 선생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못하면 집에서 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잔소리다. 잔소리가 부모들을 부르고 있다. 예전에는 잔소리를 많이 들으며 자랐다. 요즘은 그렇지가 않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잔소리가 필요할 때는 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은 안다. 부모의 사랑이 담긴 잔소리를 듣고 자란 이들은 바로 효과가 없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아! 엄마가 아빠가 이렇게 하는 것은 안 좋다고 했었지.'라고 사고하며 행동한다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렇다. 부모의 옳은 말은 아이의 잠재의식 속에 새겨지는 효과가 있다. 올곧은 인성이 자녀에게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고 잔소리를 해야 하는 이유다. 아이들이 지금은 듣기 싫어하더라도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일방적으로 안돼!라고 혹은 아이의 요구를 무조건 받아주는 엄마아빠보다는 조언자로서의 부모가 좋다.


며칠 전의 일이다. 한 아주머니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앞에 가족들이 있어 자전거 벨을 울렸다. 아이가 아빠에게 벨소리가 크다며 불평을 했다. 그랬더니 아빠가 지나가는 그 아주머니를 두고 xx... 하는 말과 함께 불평하는 소리를 했다. 아주머니는 아이가 다칠까 봐 울렸던 벨인데 그 부자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불평하는 아이 앞에서 한술 더 뜨듯 불만을 토로하는 아빠의 모습에서 아이는 무엇을 배울까 싶었다.


"응, 네가 다칠까 봐 아주머니가 벨을 울린 거야. 자전거에 달린 벨은 너 같은 어린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그 역할을 하는 거지. 이해하자. 알겠지?"라고 아빠가 아이에게 말했으면 어땠을까.


위의 사진들의 사례들에서도 알 수 있다. 윗 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오랫동안 곁에 두어야 할 격언임에 틀림없다.





작가의 이전글북극이 이사를 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