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보이는 것보다 내면의 격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내 안의 나를 살피는 데에 좋은 것은 무엇이 있을까.
얼마 전, 한 일본인에게 여기에서 생활하면서 불편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웃들의 차들이 다 커요. 소형차가 별로 없어요."라고 했다. 일본에서 살았던 나는 그의 말에 공감했다. 일본의 보통 사람들은 소형차를 이용하고, 그들의 집도 넓지 않았던 기억에 주거환경은 어떠냐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그는 굳이 큰 집이 필요 없는데도 커야 한다며 돈이 많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품위유지비가 많이 들어 불편할 때가 있다면서 여기서는 필요 이상으로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고 했다. 하긴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면 반 친구들로부터 처음 듣는 질문들이 너네 집은 몇 평이야? 너네 아빠는 무슨 차를 타? 등이라는 얘기는 예전에 들은 적이 있다. 아파트 평수에 상관없이 단지에 들어서면 소형차는 거의 없고 직장, 마트 등의 주차장에도 중대형이 대부분이다. 굳이 큰 차나 집이 필요 없는데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경우는 그만큼 남에게 보이는 나를 의식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다 그렇지 않겠지만, 일본에서는 타인을 의식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나도 그랬다. 그럼 지금 우리는 어떨까. 위에서 얘기했듯 그 반대라고 해도 부인 못할 것 같다. 나도 한때 그 안에 있었고, 지금도 거기에서 온전히 벗어났다고 장담할 수 없다. 단지 안 그러기 위해 노력할 뿐.
남의 시선에 생각을 두지 않으면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도 하고 힘도 낼 수 있지 않을까. 자신과 슬픔이나 기쁨을 나눌 수 없는 사람들의 말에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기도 하고.
여럿이 대화할 때 주변에서 자신을 추켜올려주기라도 하면 신나서 무심코 속내를 얘기해 버릴 때가 있다. 그들은 전혀 관심이 없는데도. 분위기나 누군가의 의도에 말리게 되면 순간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도 있다. 나도 예외일 수가 없다. 내가 주위에 많은 생각을 안 두고 살려는 이유다. 그렇다면 내게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산책이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하든 점심 후에 짬을 내어 걷든, 나를 돌아보고 내 안의 나를 살필 수 있어서다. 또 부유하는 생각들을 정리하며 나를 위로하기도 격려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성숙된 자아와 만나고 마음의 근육도 단단해진다. 내가 산책하는 또 다른 이유다.
산책.
몸이 불편한 이들 외에 일상에서 우리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거의 받지 않고 경제적 부담도 많지 않다. 저녁에 공원을 나가보면 산책을 하러 나온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어떤 이는 반려견과 또는 가족과 어떤 이는 음악을 들으며 또는 유튜브를 보며, 옷매무새에는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저마다의 목적을 갖고 걷는다. 내게 있어서의 산책은 나와의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성찰의 시간을 갖고 미래의 나를 그려볼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걷는 순간부터 현재는 붙잡을 수 없는 과거가 되어 가고, 조각조각 퍼져있는 가상의 공간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멈출 수 없는 거대한 사유의 물결 속으로 빠져들며 반추에 반추를 거듭한다.
산책을 시작한 지 이제 십 년이 넘어 이십 년을 향해 흐른다. 때로는 해찰의 시간을 선물하여 나를 무념무상에 빠지게 하는 그. 그래서 나는 그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