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말발 좀 세워주라

고무신과 연애

by 김곤

어제 직장 동료와 저녁을 하고 사무실 인근을 산책했다. 그가 사람이 한결같으면 참 좋겠다며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처음과 다르게 변하는 동료들이 있을 때 가장 서글퍼요."


그의 말을 듣고 길가들의 나무들을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이 나무들을 보세요. 인위적으로 누군가가 옮기지 않으면 항상 그 자리에 있어요. 사람도 이렇게 안 변하면 좋을 텐데요"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것도 한평생을. 결혼 전에 나는 연애를 세 번 했다. 가끔 직장 동료와 결혼 전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그날도 점심을 먹고 사무실 앞을 산책하다가 내가 말했다.

"주무관님은 첫 사랑하고 결혼했어요?"

"그런 셈입니다. 처음 만나 오랫동안 사귀다가 결혼했으니까요."

"아... 그렇군요. 저는 주무관님처럼 일편단심 오래 사귀다가 결혼까지 한 커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에요."

"왜요?"

"저는 그러지 못했거든요."

"저는 오히려 결혼 전에 연애를 많이 안 해 본 것이 아쉬울 때가 있어요."라고 말하면서 그가 내게 물었다.

"주무관님은 연애를 몇 번 하셨어요?"

"세 번 했지요."

"와. 부러워요. 전 한 번만 하고 결혼했으니까요."

"세 번 중에 가장 좋았던 때가 언제였어요?"

"음... 글쎄요."

나는 망설이다가 이렇게 얘기했다.

"일본에서 사귀었던 여가친구가 기억에 남죠."

"왜요?"

"미안해서요."


옛 여자친구 생각에 잠시 아무 말 없이 걷는데 동료가 말했다.

"주무관님, 왜, 미안해요? 무슨 사연이라도 있어요?"

"그게... 제가 야멸차게 헤어지자고 했거든요."

"아... 그랬군요. 아니 얼마나 차갑게 하셨으면 지금도 미안해하세요?"

"일본에 긴자라는 곳이 있어요. 그곳 지하철역에서 그녀와 헤어지고 가다가 뒤를 돌아다보았는데 그녀가 그때까지 저를 보고 있더라고요. 그 모습이 지금도 생각이 나는데 왜 그리도 그녀가 슬프게 보였는지....."

"그랬군요."


그랬다. 나는 고무신을 바꿔 신지는 않았지만 그녀에게 일방적으로 헤어지자는 통보를 하고 그날 이후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결혼 전에 상대가 고무신을 바꿔 싣는 경우는 많다. 나도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종합학원을 다니며 재수를 했을 때였다. 하루는 학원 친구들끼리 종로에 있는 디스코테크를 갔었다.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자리에 왔더니 그 사이 친구들은 각자 짝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고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목소리가 묻힐까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야. 니들 참 의리도 없다. 나만 속 빼고 ㅋㅋㅋ"

한 친구가 큰 소리로 "쏘리."하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 일 없는 듯 신나게 놀다가 헤어졌다. 다음 날 학원에서 어제 같이 갔던 한 친구에게 물었다.

"어제 다들 잘 됐어?"

"응. 괜찮았어."

"축하한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그때 같이 있었던 여자애들 중 한 명이 학원으로 그날 같이 갔던 진수라는 친구를 찾아왔다. 진수는 그녀에게 나를 인사시켜 주겠다고 해서 나는 동석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밝게 웃으며 나를 반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웃음의 의미를 나는 몰랐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였다. 진수게 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야. 좀 도와주라."

"뭐?"

"그때 그 여자 친구가 헤어지자고 해서 말이야."

"그래? 그런데 내가 뭐를 도와?"

"네가 말을 잘하잖아. 같이 좀 만나자."

"야, 내가 거길 왜 가!"

"야, 그러지 말고 같이 가서 말발 좀 세워주라"

"야, 말발은 무슨 말발! 니들 문제는 니들이 알아서 해야지"

"야, 이럴 거냐? 친구가 좀 도와달라고 하는데, 응?"

"거 참.... 그래도 안 돼. 나 공부해야 돼."


그러나 그는 끈질기게 나를 물고 늘어졌고 결국 나는 며칠 뒤에 그녀를 만나러 진수와 같이 종로를 가게 되었다.



후속 이야기는 다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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