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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n 01. 2023

당신이 비싼 가방을 사줘 봐야 알지?

어제 밤에 아내가 작은 가방을 들고 제 앞으로 와서 이리 저리 흔듭니다. 솔직히 저는 가방 종류가 어떤 것인지 전혀 모릅니다. 그냥 겉으로 보기에 디자인이 좋으면 좋은 줄로 알고 있지요. 흔히 사람들 말하기를, 남자는 자동차에 여자는 가방에 관심이 많다고들 하지요. 가끔 모임에 가보면 남자 선배들이 여자들 가방에 아주 정통한 듯한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고 제가 의아해서 물어 본 적이 있습니다. 


"형님은 어째 여자들 가방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까? 저는 암만 봐도 모르겠던데요."

"야~야, 니 지금까지 제수씨 가방 한번 안 사줬제. 그기 좀 안 그렇나. 내야 가끔 형수 가방을 사이끼네 알제. 오늘 이후로 니도 여자들 가방도 좀 신경써서 보고 제수씨 한번 사줘라. 제수씨가 대하는 기 완전히 달라질 낀데."

"아이고 저는 가방을 알지도 몰라요. 봐도 어는 기 비싼 것인 줄도 모릅니다. 그럴 일이 있으면 가방 사라고 현금을 줄까해요. 꽤 비싸겠지만. "


그런 대화를 나눌 정도로 여자들 가방에 대해 전혀 몰랐지요. 그렇다고 자동차에 뭐 그리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내가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큰아들 방에 들어가니 큰아들이 

"와~ 어머니 가방 정말 좋은데요. 루이비똥 진짜 좋은 건데 어머니 그걸 도시락 가방으로 쓴다니 영 아까운데요. 잘 사셨습니다."라고 하기에 저도 그 유명한 루이비똥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어서 함께 감탄했지요. 큰아들과 마찬가지로 도시락 가방으로 쓰기엔 정말 아깝다고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표정이 아주 짓궂게 변합니다. 본격적인 장난기 모드로 바뀝니다. 그 순간 딸 아이가 퇴근하여 집에 돌아왔지요. 아내와 딸 아이가 시선을 교환하는데 딸 아이도 배시시 웃습니다. 그리도 두 사람 동시에 저를 쳐다봅니다. 딸 아이가 저에게 먼저 말합니다. 


"아빠 이거 진짜 아니고 짜가예요. 그래도 속을 정도로 정교하게 보이죠."


아내 폭소가 터집니다. 저는 그때 제 자신보다 큰아들을 살짝 원망합니다. 큰아들이 방문을 살짝 열어보곤 슬쩍 닫아 버립니다. 큰아들이 크게 반응하지 않았으면 저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그 와중에도 큰아들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ㅋㅋ. 


그리고 아내의 한 마디,"당신이 비싼 가방을 사줘 봐야 알지?당신이 비싼 가방을 사줘 봐야 알지?

"당신이 비싼 가방을 사줘 바야 알지?"라고 일갈(?)합니다. 


가방 메이커도 모르는 저에게 제 연금을 한 푼도 안 쓰고 아내가 다 쓰면서 가방 하나 안 사준다고 일갈(?)하는 아내가 귀엽기도 하고 해서 다음에 내가 그냥 돈을 줄 테니 가방은 알아서 사라고 약속했습니다. 구체적 금액까지 약속했습니다. ㅋㅋ. 왠지 모르게 아내의 술수에 넘어간 듯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웃으면서 하루를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게 생각하지요. 


아내가 건강하다면야 한 번쯤은 반박도 할 만하지만 지금 아내 상태는 어떻게든 즐겁게 웃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제가 조금 망가진들, 아내에게 타박을 받는들 그것이 아내 건강 호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한번이라도 더 웃을 수만 있다면 그런 것이 무슨 대수겠습니까. 지금 아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 훗날 엄청난 후회의 시간을 가질 것 같아 최선을 다해 아내 기분을 맞추어야 하겠지요. 괜히 지금 돈 아낀다고 아내 심정에 상처를 주고 나면 다음에 수십 배 수천 배 돈을 써도 아내 마음을 달랠 수도 없지 않을까 싶어요.  


다음에 가방 가게에 가면 가격표도 유심히 봐 두어야 하겠네요. 그렇다고 여자 가방에 대한 제 눈썰미가 나아질 리야 없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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