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엽 Jun 05. 2023

상대의 실수를 간접적으로 지적하라

남의 잘못을 용서하여 보답을 받은 두 이야기도 함께 전합니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후반 말미 부분을 읽고 있다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접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남의 허물에 대해선 쉽게 지적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는 보통 사람들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요. 



어느 날 점심 무렵, 찰스 슈워브는 한 제철공장을 돌아보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직원들을 보았다. 직원들 머리 바로 위에는 '금연 표시'가 붙어 있었다. 슈워브가 표시를 가리키며 "글 읽을 줄 모르나?"하고 말했을까? 절대 그렇지 않았다. 그건 슈워브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는 직원들에게 다가가서 시가를 하나씩 손에 쥐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어이 친구들, 밖으로 나가서 이 시가를 태워주면 정말 고맙겠네." 자신들이 규칙을 어겼음을 슈워브가 알고 있다는 것을 직원들도 알았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오히려 작은 선물까지 주면서 자신들이 인정받고 있다고 느끼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직원들은 이런 슈워브를 존경하게 되었다. 여러분이라 하더라도 어찌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겠는가?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269쪽


다른 사람의 허물을 지적하는 방법에 직접적인 것과 간접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는데, 직접적인 것으로 상대방을 바로 지적하는 것은 누구나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후유증이 만만치않지요. 하지만 간접적인 방법은 보다 세련되면서도 한번 쯤은 더 생각해야 할 수준높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후유증보다 오히려 바람직한 해결방안에 유연한 대화가 이어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와 결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낭의 허물을 어떻게 유연하게 넘겨 극적인 결과를 낳는지를 사마천의 사기열전(史記列傳)에서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춘추오패 중 세 번째 주자였던 진목공(秦穆公)의 한원(韓原) 전투의 300용사들 이야기와 네 번째 주자였던 초장왕(楚壯王)의 절영지연(絶纓之宴) 스토리입니다. 절영지연이란 '연회 석상에서 갓끈을 끊다'는 뜻입니다. 무슨 사연일까요. 


진목공은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기 전 제후국 진나라의 9대 국군으로 춘추 오패 새 번째 맹주다. 부국강병으로 국정을 이끌었으며 천하의 인재를 초빙하여 국력을 크게 키웠습니다. 흔히 사불문(四不問)이라 하여 민족, 국적, 지위, 연령 등을 묻지 않고 능력만 있다면 그 어떤 인물이라도 기용하였지요. 현대 정치에도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진목공을 당시의 패주들과 비교하면 공적은 크지 않지만 재위기간에 타국 출신의 인재를 과감히 발탁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그래서 진나라 발전에 기초를 이루고 장대한 진의 발전에 공헌이 큰 국군(國君)입니다. 




진목공 영임호(濴任好)는 39년간이나 재위하면서 춘추오패의 위업을 달성한 것인데 일생의 전공이 혁혁하여 유방백세(流芳百世)로 이름을 날렸으나 죽을 때 결정적인 실책을 합니다. 유명하나 임종시 하령으로 3인을 배장하는 결정을 합니다. 진 목공 37년(기원전 621년), 목공이 훙(薨)합니다. 제후의 죽음을 '훙'이라 하지요. 목공이 죽자 당시 진(秦)나라의 풍습에 따라 순장(殉葬)된 사람이 177명에 달하였고, 이로 인해 진나라는 목공 때의 강성함을 그대로 이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이 순장에 대해선 당대뿐만 아니라 후대까지 의견이 분분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자거씨(子車氏)의 세 아들 엄식(奄息)ㆍ중항(仲行)ㆍ겸호(鍼虎)의 순장에 대한 논쟁이었습니다. 이 세 사람은 매우 어질고 뛰어나 목공이 중용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칭송도 받았습니다. 그런 세 사람이 순장되자 진나라 백성들은 이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나라를 원망하는 <황조>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고, 공자는 이를 《시경》에 수록했습니다. 그리고 춘추좌씨전》에는 군자는 이로 인해 진(秦)나라가 다시는 동쪽을 정벌하지 못할 것을 알았다라는 기사가 나옵니다. 


秦과 晉의 두나라는 전쟁을 끊임없이 벌입니다. 목공의 부인 백희는 진(晉)나라 출신입니다. 처남 매부지간에도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당시엔 흔한 일이었습니다. 진목공이 국력을 강대하게 키워나가던 시점에 명마의 목관(牧官)을 맡았던 융적의 농민들이 배고픔 때문에 명마 4필을 잡아먹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 농민 300명을 사형에 처하기로 합니다. 군주의 말을 몰래 잡아먹었으니 그들의 최후는 명약관화했지요. 그때 이런 사실을 보고 받은 목공은 그들을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말고기엔 술이 필요하다면서 술까지 내려주며 석방합니다. 세월이 흘러 진목공이 한원에서 진혜공 이오와 전쟁을 하게 됩니다. 진목공은 친히 전장에 나가 지휘하는데 진혜공 이오에게 오히려 고전하면서 철저히 포위되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집니다. 그때 어디선가 300명의 결사대가 밀고 들어와 진목공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한원전투에서 위기를 극복한 뒤 300명 용사를 불렀습니다. 그대들은 누군데 이렇게 어려움에 처한 과인을 구해주었느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들이 말합니다. 


"저희들은 지난 날 기산 아래에서 임금님의 말을 잡아먹고 죄를 지은 죄인들입니다. 당시 임금님께서 저희들을 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맛있는 술까지 주시면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은헤를 오늘 갚아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초장왕의 절영지연(絶纓之宴)은 



장왕이 신하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연회가 열립니다. 이 날 장왕은 애첩 허희에게 ‘모든 참석자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술을 따라주라’고 지시했습니다. 허희가 자리를 오가며 신하들에게 술을 따라주고 있을 때, 난데없는 바람이 불어와 연회장의 촛불이 꺼저버립니다. 이미 한밤중이었기 때문에 연회장은 한치 앞도 볼 수 없을 만큼 암흑천지로 변했습니다.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손이 허희의 허리를 끌어안았습니다. 어떤 기록에는 허희의 옷깃을 잡았다, 가슴을 잡았다. 팔을 잡았다 등등 다양한 내용이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용납될 수 없는 행위였지요. 어쨌든 깜짝 놀란 허희가 그 사람이 쓴 갓끈을 잡아 뜯어낸 후, 장왕에게 아룁니다. 


“폐하, 누군가가 첩의 몸에 손을 대었나이다. 첩이 그자의 관모 끈을 끊어 가지고 있으니 불을 밝히면 누가 저지른 짓인지 알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런데 장왕은 허희의 말을 듣자말자 명을 내립니다. 


“과인은 경들과 더불어 즐거운 마음으로 크게 취하고자 하오. 지금 이 순간 그대들의 관모 끈을 모조리 끊길 바라오.” 


영문을 모르는 대신들이 자신의 갓끈을 끊었습니다. 자신의 후궁을 희롱한 죄를 묻기는커녕 오히려 덮어준 것입니다. 



이로부터 3년 후, 초나라가 진(晉)나라와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장왕이 매우 위험한 위기에 처합니다. 그때 당교(唐狡)라는 장수가 나타나 장왕을 구하고 진나라 군대를 격퇴하는 큰 공을 세웁니다. 장왕이 칭찬하며 상을 내리려 하자 당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은 진즉에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대왕께서는 3년 전의 일을 기억하십니까? 그 때 관모의 끈을 뜯긴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대왕의 은혜로 죽지 않고 살아났으니 소신 목숨을 바쳐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남의 허물은 쉽게 발견되고 그에 대한 지적을 하는 것은 매우 쉬운 법입니다. 하지만 그 허물을 용서하거나 데일 카네기 말처럼 간접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말처럼 쉽진 않겠지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나보다 상대가 더 많이 말하게 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