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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n 09. 2023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면

인간관계에서 사후 처리가 매우 중요하다

너무나도 절박하게 사정 사정하여 도움을 요청하기에 선의로 그 말을 들어주는데, 막상 그 일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낯선 사람 대하듯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 재주가 그리 뛰어나진 않지만 오랜 시간 아이들 동아리 활동를 지도한 적이 있어서 강의 요청을 받았습니다. 재능기부로 해달라고 하면서 말이지요. 그 일이 있고 나서 재능기부란 말에 상당히 불편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후는 뭔가 요청을 받을 때 그쪽에서 '재능기부'란 말만 나와도 단번에 거절해 버립니다. 재능기부란 말을 꺼내며 담당자가 온갖표현을 동원합니다. 


'모시기 어려운 분인데 다른 사람들이 하도 훌륭한 분이라 해서 이렇게 부탁드린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주신다고 해서 연락을 드렸다. 우리 행사 예산이 부족해서 여으치 않으니 좋은 뜻으로 재능기부를 해주셨으면 한다.' 등등. 



결론은 재능기부로 강사비를 지불하지 않겠다는 의도입니다. 제가 그렇게 지역 사회에 해주고 싶어서 무료라도 강의하겠다 하면 자부심이나 보람이라도 있지요. 그런데 강의 요청을 하는 측에서 먼저 이렇게 '재능기부'를 운운하여 여러 가지 말로 빙빙 둘러 설명할 때 상당히 실망하게 됩니다. 그렇게 가면 조금이라도 귀하게 여겨야 하는데, 심지어 한참 강의하는데 그쪽 기관장이랍시고 누가 오면 강의 분위기가 엉망이 됩니다. 그렇게 기관장 의전 때문에 제 마음도 편하지 않는데, 강의 도중 휴식 시간에 잠시 틈을 내 기관장이 인사를 합니다. 저는 서서히 불쾌해집니다. 기관장은 의례적으로 악수를 청합니다. 그리고 자기 하고픈 말을 실컷 하고는 일정이 바쁜 관계로 자리를 뜹니다. 


담당자는 기관장 눈치를 보아야 하고 의전도 챙겨야 하기에 그 심정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만 그러면 정작 가장 중요한 수강생들과 강사는 어떤 마음일지도 생각해 주면 안 될까 싶었습니다. 당장 그 자리를 뛰쳐나오고 싶었습니다. 또 그렇게는 할 수 없지요. 그 순간부터 강의 현장 분위기는 좋지 않게 되지요. 기관장이 가고 나면 담당자는 죄송하게 되었다고 입에 발린 말만 내놓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냥 자리만 채우는 격이 되었네요. 


어떤 행사를 가도 국회의원 나리들은 행사 끝날 때까지 지긋이 앉아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일정이 바쁘다고 하는데, 그렇게 바쁘면 무엇 때문에 이런 중요한 행사에 와가지고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드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담당자와 사전 협의 때 강의 도중에 기관장은 절대로 못 온다는 확약을 받습니다. 만약 기관장이 불가피하게 온다면 강의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라는 조건을 답니다. 한번의 강의 직후 그 바쁘다는 의원 나리 기관장이 식당에서 비서관하고 식사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는데, 폭탄주를 말아 부딪히며 건배하면서 왁자지껄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바쁘다는 말은 핑계에 불과하다. 만약 지역 주민들 한 100명이라도 앉아 있으면 그 놈의 표 때문에 '바쁜 일정' 이란 말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너무 옹졸한가요. 그냥 두루 두루 살아가는 것이 좋은가요. 담당자도 그런 강의를 준비해준다고 정말 힘들게 추진하였고, 재능기부에 어쨌든 동의했으니 기쁜 마음으로 해주어야 하는 건가 싶습니다. 그런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후 처리입니다. 그렇게 절절하게 요청해 놓고 막상 프로그램이 끝나면 언제 그런 말 했느냐는 식으로 연락이 없습니다. 


"어려운 시간에 귀한 강의를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런 말 한 마디가 그렇게도 어려울까요. 그것도 바쁘다는 핑계가 될까 싶습니다. 그 전까지 여러 가지로 서운한 점이 있다가도 이렇게 마무리지으면 웬만한 서운함은 눈녹듯 사라질 텐데 말이지요. 부탁할 때는 그렇게 살살거리면서 비굴하고 낯뜨겁게 그리고 지극히 친절하게 하다가 그후엔 전혀 낯선 사람이 되어 있을 때 심정 이해하시는지요. 그런데 웃기는 것은 그 다음 해 또 똑같은 프로그램이 있을 때 다시 연락하여 이전과 똑같이 부탁한다는 점입니다. 참 어이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그런 속담이 있는가 봅니다. 


"화장실 갈 때 마음과 화장실 나올 때 마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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