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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n 09. 2023

가급적 나지막하고 편하게 말하라

며칠 전에 TV를 우연히 보는데, 엄마와 아이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초점은 아이의 문제 행동이었습니다. 어떻게 아이가 저럴 수 있느냐 하면서 프로그램 패널들이 그 영상을 보면서 거의 동시에 경악하는 장면이 많이 나왔습니다. 어린 아이가 문제 행동을 할 때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기 쉽지 않습니다. 설령 어떤 이유나 원인을 알았다고 해도 그것을 치료하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지요. 그래서 남의 아이 양육에 대해 함부로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은 곤란하지요. 


저는 그날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이의 엄마 음성에 주목했습니다. 엄마의 목소리가 앙칼지고 너무나도 하이톤이었습니다. 그것이 아이의 성장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오랜 기간 교육 현장에 있었기에 숱하게 경험하였지만 '문제 아이 뒤에는 문제 부모가 있다.'는 것을 거의 진리로 여깁니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은 소수입니다. 눈에 띄지 않은 경우도 꽤 있겠지요. 그래도 소수입니다. 선도협의회나 폭력대책위원회에 불려오는 학부모들이 학교에 오면 자신의 아이가 가해자임에도 처음부터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가 매우 드뭅니다. 어디서 누군가로부터 코치를 받고 오는지 모르지만 한결같이


 '장난이었다. 아이들 다 그렇게 싸우고 맞고 그러면서 크는 거 아니야. 우리들 어릴 때 다 그랬지 아니냐. 아이키우는 부모 심정으로 너그럽게 봐줄 수 있는 것 아니냐. 등등.'


아이가 가해자임에도, 바로 앞에는 피해자와 피해자 부모가 있음에도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이 오히려 기세 등등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면 진짜 역겨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세등등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대개 큽니다. 나중에 가해자에 대해 징계 결정이 떨어지면 길길이 날뜁니다. 한번도 제대로 승복하고 피해자를 찾아와 진심으로 사과하는 경우 거의 못 봤습니다. 그렇게 징계 결정이 떨어진다고 해도 피해자가 겪었던, 앞으로 겪어야 할 정신적 고통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습니다. 정말 오랜 시간 공들여야 아이의 마음을 달래고 손을 잡아 주어야 합니다. 진찌 그 순간부터 아이를 돌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서로 화해했다고 해서 그 고통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학폭이 아예 발생하지 않게끔 가정, 학교, 사회가 유기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한번 폭력을 겪으면 그 삶이 황폐해집니다. 수렁텅이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제3자는 쉽게 말합니다.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털어버려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그게 그리 쉽게 된답니까. 당사자가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왜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이 그런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까. 그래서 우리가 피해자에게 말을 건넬 때도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위로랍시고 어설프게 했다간 상처가 덧나고 그 위에 소금 뿌리는 격이 되지요. 말없이 손을 꼭 잡아주거나 안아주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말 하지 않아도 그 눈빛만 보다 상대방의 뜻을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다시 아까 이야기로 돌아가서 TV 속 어린이가 문제행동을 일으킬 때 엄마의 음성에 주목해 봅니다. 앙칼지고 신경질적이 역력합니다. 지난 삶이 그녀의 음성을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먹고 살기 바쁜데 목소리를 고상하게 유지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겠지요. 당장 하루 하루 버티는 것도 힘든데 그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고 있네라고도 하며 핀잔을 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다른 것은 모두 차치하고서 어머니의 음성은 아이의 성장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제 어린 시절 우리집 유난히 가난하였습니다. 그래도 어머니께선 살아 생전에 저에게 큰소리 한번 치시지 않았습니다. 잔소리도 적었지요. 그 흔한 '공부 좀 해라'라는 말씀도 전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제 인생이 남들에게 크게 자랑할 만한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렇게 가난한 집에서 성장하였지만 어머니의 잔잔한 미소와 부드러운 목소리 늘 안아주시는 것에 익숙하여 그런지 몰라도 제 삶은 참으로 평탄했습니다. 학교 문턱에도 가보시지 않았고, 글자도 몰랐던 어머니가 세상 그 누구보다 훌륭한 교육철학을 갖고 계셨습니다. 낮으막하고 부드럽게 말해주면서 늘 따뜻한 미로를 띤 채 저를 바라 보셨습니다. 그리고 불쑥 품에 안아 주셨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마을 인근에서 효자났다고 칭찬도 많이 들었습니다. 어머니께 잘 해드리려고 애썼고, 그렇게 하니 어머니가 좋아하시기에 그랬을 뿐이지요. 그런 행동도 어머니의 음성과 직결되지 않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 덕분에  제 자신도 삶에 대해 정말 만족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어느 시절 예를 들면, 고교1학년 때로 다시 돌아가면 진짜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법대라도 진학하여 어머니 소원을 한번 풀어 주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한 그런 후회는 한 적이 꽤 있지요. 그렇지만 제 삶의 대부분은 편하고 좋았습니다. 


어렸을 때 동네 아지매들도 온순하고 부드러웠습니다. 대부분 가난했지만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뛰놀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요즘 젊은 도시 엄마들처럼 극성을 부리지 않은 영향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 고향 시골 마을에 가도 70대 80대 동네 형수님들의 음성은 늘 여유롭고 따스합니다. 그리고 그 자녀들도 형수님들이 잘 키워서 잘 살고 있지요. 어쩌다 목소리가 유난히 크고 신경질적인 아지매도 있었지요. 그러면 그 집 아이들 백발백중 모난 성격이거나 ADHD에 가까운 행동을 보였지요. 


부모가 아이를 대할 때 위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낮으막하고 조용한 음성을 보여야 합니다. 말도 천천히 하면서 여유로워야 하며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띤 채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존재를 바라보는 듯한 표정을 지어야 합니다. 당장은 돈이나 학벌 지위 명예 등이 눈에 들어올지 모르나 실제로는 정신적 성장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아이들에게 잔소리한다고 잘못된 행동을 지킬 확률보다 오히려 칭찬하면서 넌지시 살짝 지적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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