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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n 22. 2023

요새도 담장에 병 조각이 꽂혀 있네

색소폰을 배우러 가는 길에 운동 삼아 일부러 걸어갑니다. 차를 운전하면서 다닐 때와 달리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환경을 자세히 보게 되어 새로운 느낌이 듭니다. 골목길 바로 돌아 서면 분식집도 보이고, 여느 집들 문앞에 곱게 핀 꽃들도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걸으면서 세상을 본다는 것을 다시 실감하게 됩니다. 지금껏 너무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바쁘게 사는 것이 잘사는 삶의 자세인 줄 알았습니다.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스스로 채찍질하였지요. 주위 사람들도 가끔 저에게 그렇게 살면 나중에 가족으로부터 소외당할 수 있으니 미리 대비하라고 주의를 주셨지요. 하지만 그런 말을 들어도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쳐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앞으로 노쇠해지면 제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지요.


오늘 걸어가다가  어느 집 담장 위의 병조각이 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살벌하게 보입니다. 저렇게 한다고 해서 도둑이 들어오지 않는 것도 아니고, 예방 효과가 과연 있을까 싶었습니다. 언제 올지 모르고 효과도 없을 것 같은 병조각들을 보면서 가족이나 이웃 사람들이 겪을 정신적 스트레스가 훨씬 클 것 같습니다. 오래 전에는 저런 장면을 많이 보았는데, 요즘은 좀처럼 보기 어렵지요. 저 집 주인 심정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와 달리 절도를 당한 경험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병조각이 살벌하게 꽂힌 담장 위 풍경이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의 금융패권주의가 우리에게 주는 커다란 장벽과 같이 느껴집니다. 스스로 정해 놓은 장벽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가진 자들의 시도라고나 할까요. 강고하기 그지없는 그들만의 리그가 꼭 병조각 담장 같다고 보면 제가 지나치게 예민한 것일까요.

몇 년 전에 담장 허물기가 유행처럼 진행된 적이 있었습니다. 학교 담장을 허물고 그곳에 꽃을 심었더니 외부 사람들의 침입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말이 있었지요. 만약 담장을 허물고 그 자리에 병조각을 심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길가는 사람들이 병조각을 보고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길가던 사람 대부분 섬뜻해졌을 겁니다. 그런 마음들이 우리 자신에게 어떤 정신적 영향을 끼치게 될까를 생각해 보면 병조각 같은 예방 효과가 거의 없는 장면은 쉽사리 눈에 띄지 않겠지요.


사람은 운명적으로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표정도 주요한 환경입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만나는 사람들과 나누는 첫인사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언젠가 어느 학교를 방문했을 때 교문을 통과하자마자 접한 현수막 "인사가 인생 성공의 반이다." 였는데, 다정하고 친절한 인사가 사람의 삶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이 아니라 90% 이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환한 미소로 맞아주는 사람들과 나누는 인사는 그 무엇으로도 계산할 수 없는 중요한 환경입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담장에 있는 것이 병조각이냐 꽃이냐에 따라서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그야말로 천양지차가 되겠지요.


말투도 그렇습니다. 가급적 나지막하고 넉넉한 표정으로 천천히 말하면서 미소가 잔잔한 사람들의 말을 대상이 그 누구든 편하게 해줍니다. 거기에다가 상대방을 격려하고, 배려하며 존중한다면 더욱 훌륭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인생의 최대 목표는 '인생행복'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온화한 사람들 관계가 매우 중요합니다. 명예, 돈, 지위 등도 행복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 엄연한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이 인생 행복을 결정하는 절대 요소는 아닙니다. 뭐니뭐니해도 사람들 간에 나누는 대화 속에서 경험하는 행복이 진짜 중요한 법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저렇게 살벌한 장면을 보이지 않아도 될 만큼 넉넉하고 여유로운 삶이 되길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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