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이런 유능하고 검소하며 백성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재상이 없는가
사마천도 안영을 흠모하다
사마천도 저서 『사기』 「관안열전」에서 안영에 대한 흠모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안자가 제 장공이 역신 최저에게 시해되었을 때 그 시체 앞에서 엎드려 곡하고 예를 마치고 그대로 돌아갔으니 이것이 이른바 ‘의를 보고 행하지 않음은 곧 무용 見義不爲無勇’이라는 말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가 간언의 말을 올릴 때는 그 군주의 안색에 아랑곳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바로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물러나서는 허물을 고칠 것을 생각한다. 進思盡忠退思補過’는 것인가. 가령 안자가 오늘날 살아 있어 말채찍을 잡고 그의 수레를 몰 수 있다면 그 일은 내가 기뻐하고 흠모하는 바가 될 것이다. 余雖爲之執鞭, 所忻慕焉.”
최고의 역사서로 평가받는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司馬遷)도 안자가 살아 있다면 그의 말채찍을 잡고 그의 수레를 몰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기쁘다고 할 정도였으니 안영의 역량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군주의 즉흥적인 기분에 따라 한 순간에 목이 달아날 수 있는 전제군주 체제하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대담하게 직언할 수 있는 용기, 국내외 정세에 통달하면서도 결코 오만방자하지 않고 자신을 낮출 수 있는 겸손함, 서슬이 퍼런 권력자의 위협에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당당하게 표현하는 담대함, 내치(內治)든 외치(外治)든 탁월한 역량을 갖고 여러 대에 걸쳐 군주를 일관성 있게 보필하던 안영 같은 재상이 우리 역사에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자신의 역량을 사심이 아닌 오직 공적인 분야에 오롯이 헌신할 수 있는 인물이 정말 그립다. 일인지상 만인지하의 제나라의 재상이 되어서 식사를 할 때에는 고기반찬을 두 가지 이상 먹지 않았고 아내에게는 비단옷을 입히지 않았다. 조정에 있을 때는 군주의 묻는 말에는 곧고 바른 말로 대답하고 묻지 않으면 곧은 행동으로 일을 행했다. 나라에 도가 있으면 군주의 명에 순응하고 도가 없으면 그 명이 옳고 그름을 가려 행했다. 이렇게 검소하고 능력이 출중하고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공직자를 만나는 것이 그렇게도 지난한 일인가?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 이야기
이번에는 안영의 지혜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를 들어 보겠다. 관중과 더불어 중국의 격동기 춘추 시대 천하의 맹주인 제나라의 국정을 이끌었던 안영은 우매한 군주를 보필하여 국정을 훌륭하게 수행하였던 재상으로서 실로 대단한 인물이었다. 군주가 훌륭한 신하의 보필도 받아야 하지만, 군주가 어리석은 경우 해당 국가의 미래는 밝을 수 없다. 더욱이 안영 같은 훌륭한 신하가 우매한 군주를 보필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점에 봉착하게 된다. 그런데도 안영은 훌륭하게 군주를 보필하였다. 안영에 관한 여러 가지 일화 중 유명한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이야기는 『晏子春秋(안자춘추)』에 나온다. 복숭아 두 개로 장군 세 명을 없앤다는 것인데 그 이야기 안에는 기막힌 내용이 들어 있다. 복숭아 두 개로 어떻게 막강한 장군이자 권신(權臣)을 제거할 수 있는지 안영의 그 지혜가 참으로 궁금하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장군은 공신으로 나라의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실세들이었다.
제(齊)나라 경공(景公) 시절 전개강(田開彊), 고야자(古冶子), 공손첩(公孫捷) 등 용맹스런 세 인물이 있었다. 각각 뛰어난 공적을 세워 경공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지만, 그것을 믿고 국정을 농단할 정도가 되어 조정 내에 커다란 골칫거리가 되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신(功臣)에 대한 사후 처리는 매우 민감한 사항이었다. 논공행상에 관한 한 아무리 정교하고 공정하게 처리한다고 해도 어딘가 미흡한 점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불만을 갖게 된 사람들이 역모를 품고 반란까지 일으켜 사회를 더욱 혼란으로 몰아가는 경우도 발생한다. 여기에서 언급하는 세 사람 전개강(田開彊), 고야자(古冶子), 공손첩(公孫捷)은 모두 용기와 힘이 있는데다가 문장도 잘 지어 경공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문제는 권력의 속성에 있었다. 하늘에 태양이 오직 하나이듯이 나라의 지존은 하나뿐이며,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는 속성을 지닌 것이다. 이 세 사람이 경공을 받들고 겸손한 자세로 처신하였다면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심리가 그렇지 않은가 보다. 남들보다 탁월한 공을 세우는 사람들은 저마다 권력의지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권력의지나 출세욕이 공존한다고 할까. 주군을 도와 천하 쟁패의 승자가 되거나 비범한 공을 세운 장상(將相) 대부분은 권력의지가 너무나 강했고, 권력에 대한 미련 때문에 토사구팽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개국이나 정난(靖難)에 혁혁한 공을 세운 부하들이 개국이나 권력 이동을 지나 나라가 안정을 찾아가면, 곧장 권력자의 칼날 아래 스러져 간 역사가 허다하지 않는가. 권력은 참으로 비정한 것이다. 그래서 권력의 비정한 속성을 꿰뚫고 정상(頂上)에서 미련없이 물러나 조용히 삶을 살아간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극히 적었다. 한고조의 특급 참모 장량(張良)이나 월나라 구천를 보좌하여 나라를 되찾았던 범려(范蠡) 정도나 그랬을까.
이도살삼사의 세 사람
위에 언급한 세 사람의 공로를 확인해 보자. 경공이 지난 날 사냥 갔을 때 호랑이가 달려들었다. 좌우가 당황하고 있을 때 과감히 뛰어들어 호랑이를 맨손으로 쳐서 경공을 구해 준 사람이 공손첩(公孫捷)이었다. 그리고 경공이 황하에서 커다란 자라의 습격을 받았을 때 이를 잡아 죽여 위기에서 구해 준 고야자(古冶子)였다. 경공의 초청에 응하지 않았던 오만방자한 서(徐)나라를 정벌해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전개강(田開疆)이었다. 제경공의 입장에서 이 세 사람은 그 어느 누구 하나 부족함이 없는 그야말로 공신(功臣)들이었다. 그들이 공적을 앞세워 경공 곁에서 설쳐대는 모습은 정말 오만방자하기 그지없었다. 사람들이 공을 세우면 자신도 모르게 거만하게 되어, 겸손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가 보다.
공신 세 사람이 어울려 다니며 안하무인(眼下無人) 격으로 처신하였으니 당시 경공 이하 조정의 신하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전제군주 체제하에서 국가의 공신은 그 존재 자체가 군주에게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인식하였다면 더욱 조용하게 처신하여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였을 것이다. 어차피 권력은 오래 가지 않는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십일을 넘기지 못하는 법! 권력이 천년만년 자신의 손아귀에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겠지만, 그 끝은 참으로 허무하다. 그런데도 권력자들은 권력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향유하려 한다.
제경공의 힘이 아직은 세 사람을 제거할 정도로 갖추지 못했기에 경공이 현실을 방치할 뿐이었다. 만약 경공의 세력이 조정을 제압할 정도였으면, 이 세 사람처럼 오만방자하게 처신하면 곧바로 죽임을 당할 것이었다. 그렇다 하더라고 세 사람이 자신의 공은 뒤로 물리고 스스로 겸손하게 처신했다면 조야의 존경을 받고 온전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세 사람은 불행하게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들은 나라에 공을 세워 왕의 신임이 두터워지자 예의가 없고 안하무인격이 되어서 주군이 경공에게도 불손한 태도를 보일 정도였다. 사람은 권력을 잡으면 주위를 전혀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의기양양해지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권력을 둘러 싼 암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 더욱이 권력을 쥐락펴락하고 있더라도 언제나 그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자가 조정에 가득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당시 재상이었던 안영도 이 세 사람의 국정 농단에 대해 깊이 우려하였음이 자명하다. 안영 같이 탁월한 국정 수행 능력을 지니고 담대한 기백까지 갖춘 재상이 기고만장하던 이 세 사람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국가의 안녕을 위해서도 그들을 조기에 제거해야만 했다. 어떻게 보면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 세 사람 모두 설득하여 민족과 국가에 기여하는 인물로 개과천선하게 하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안영이 보기에 세 사람은 그럴 가능성이 결코 없었다. 가급적 피를 흘리지 않는 것이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겠지만 이들은 애초에 누군가의 충고를 들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세 용사의 등장에 대해 신정근은 『안자춘추(晏子春秋)』 「암주(暗主)의 일상적 폭정과 최후 시간의 유예」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제나라는 춘추시대 초기에 환공이 패자의 역할을 한 뒤로 국제무대에서 뚜렷한 위력을 떨치지 못했다. 안영이 활약하던 시절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 등 부족한 정치 지도자가 연이어 등장하면서 국력이 더욱 위축되었다. 하지만 그들도 춘추전국시대의 시대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던 터라 쇠락한 국위를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장공과 경공은 반발이 일어나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제도 개혁을 통해 제나라의 국력을 만회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렵지만 성공하면 탄탄한 기반을 가질 수 있는 진나라 식의 개혁, 즉 변법(變法)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길을 채택했다. 그들은 용력지사(勇力之士), 즉 오늘날 육군의 특전사나 해군의 UDT를 키우고자 했다.
『안씨춘추』 제일 첫 편을 보면 장공은 용력(勇力)으로 수세의 상황을 반전시키고자 했기 때문에 도의를 지키는 문제를 신경 쓰지 않았다. 용력지사들도 나라에서 어떤 제지를 받지도 않아 거리낌 없이 행동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귀족과 인척들도 장공에게 유능한 사람을 추천하지 않았고 근신과 총신들도 잘못을 범하고서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다. 장공의 길이 실패로 끝난 뒤에도 경공도 실패한 길을 되풀이해서 걸었다.
공손첩(公孫捷), 전개강(田開疆), 고야자(古冶子) 세 사람이 경공에게 중용되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호랑이를 때려잡을 정도로 용력(勇力)이 뛰어났다. 경공은 세 사람으로 국내외에서 위세를 과시하게 되었지만 그들은 제나라에게 안하무인으로 굴었다. 안영이 경공에게 이 문제를 제기하자 경공도 그제서야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도 세 사람을 때려잡으려고 해도 제대로 되지 않고 찔러 죽이려고 해도 제대로 맞추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재상 안영이 미래의 齊(제)나라 군을 이끌 지휘관으로 사마양저(司馬穰苴)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마양저가 아직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미약한데다가 이 세 용사의 틈바구니 속에서 성장할 수나 있을지 걱정되었던 시절이다. 훗날 안영이 사마양저를 군 장수로 임명하여 제나라의 안정을 확보하게 되지만 이 때만 해도 세 사람의 전횡에 따른 국정농단으로 전도양양한 젊은 장수를 발탁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세 사람이 뭉쳐서 군사 행동이라도 하는 날에는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혼란을 초래할 터. 그래서 안영은 고도의 술수로 세 사람을 제거하려는 계책을 쓰게 된다. 역사적으로 전선에서 평생을 보내는 장군이나 무관(武官)들은 상대적으로 문관(文官)에 비해 단순한 편이라 비열한 권모술수가 횡행하는 정치에는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강력한 충성심(忠誠心)을 갖고 군사를 일으켜 공을 세우는 데는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지만, 이들이 의외로 머리 회전이 잘 돌아가는 문관들에게 판판이 깨지는 역사적 상황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더욱이 안영이 내치나 외치에 뛰어난 역량을 지니고, 대국을 파악하고 정세 흐름을 판단하는데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세 사람의 장군을 제거하는 방법이 비상하였다. 단도직입적인 방식이 아닌, 교묘하게 우회하여 상대방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방법을 동원한 것이다. 개인적인 권력욕에서 나온 비열한 계책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임금 주위에서 전횡을 일삼는 무리들을 제거하기 위한 방략이었으니 안영의 계책을 사악한 술수로만 볼 수 없다.
우둔한 세 용사
어느 날 인접국이던 노나라 소공(昭公) 일행이 제나라로 왔는데, 연회를 베푸는 자리에서 안영이 금복숭아 두 개를 내 놓으면서 양측 군주에게 바쳤다. 후원의 금복숭아가 향기롭게 익었으니 두 임금께서 그것을 드시고 만수무강하시라는 말과 함께 복숭아 두 개를 올렸다. 그 복숭아는 너무나 귀한 것이라 맛이 좋다고 소문이 쟁쟁할 정도였다. 그런데 안영이 복숭아를 단 여섯 개만 따서 가져온다. 안영이 복숭아 여섯 개를 쟁반에 받쳐 들고 와서 경공에게 올리자, 경공은 한 개를 귀빈인 노나라 소공에게 주고 한 개는 자기가 먹었으며, 또 한 개는 소공을 모시고 함께 온 숙손착(叔孙婼)에게 주고 한 개를 안영에게 주었다. 총 여섯 개 중에 네 개를 먹게 되니, 두 개만 남게 되었다. 여기에서 안영의 계책이 빛을 발하게 된다. 이런 상황 전개를 안영이 애초부터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안영이 경공에게 제안한다.
“아직도 쟁반에 2개의 복숭아가 남았으니 전하께서는 이를 세 신하 중에 이 나라에서 가장 공이 크고 수고를 많이 한 사람에게 주십시오.”
그러자 공손첩이 먼저 나서서 지난 날 자신이 세운 공적을 자랑하자, 경공이 그에게 복숭아와술을 하사했다. 안영의 의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공을 인정받으려는 단순한 사람들의 행동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인간상의 표본이라고나 할까. 금복숭아 하나 먼저 받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렇게 앞으로 나섰을까. 더욱이 그들이 뜻을 합치면 그냥 금복숭아에만 그치지 않고 제나라 전체까지 장악할 수 있었을 것인데, 평소에 어울려 다니던 마음과 달리 막상 이(利)가 눈앞에 보이자 지금 상황이 어떤 것인지도 전혀 모르고, 그냥 공치사할 마음으로 나선 것이다. 세 사람 모두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공손첩이 금복숭아를 받고 나자 이번에는 고야자가 나아가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업적을 크게 말하니, 경공이 역시 복숭아와 술을 하사한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안영이 총 여섯 개의 금복숭아를 준비하여 두 군주와 숙손착, 안영 그리고 공손첩과 고야자가 가져 갔으니, 남은 복숭아가 있을 리가 없었다. 필시 과수원에 가면 더 많은 복숭아가 있었을 테고, 그렇게 대접하려는 의도가 있었으면 더욱 많이 준비해 두었을 터. 여기에서 전개강이 폭발하게 된다. 사실 전개강 이 사람은 두 사람의 공적보다 더욱 크다고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개인의 용력을 보여 인정받았다면 전개강은 춘추전국시대에 가장 중요한 무력 수단인 군대를 동원하여 타국을 무너뜨린 공로를 세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 경공이 천하 패자임을 선언할 때 서(徐)나라가 불복하였고, 이에 전개강이 군대를 이끌고 정벌하여 굴복시켰다. 그런데 자신에게 복숭아 하나도 남지 않은 상태를 목격하였으니 그 분노는 하늘을 찌를 만했다. 자존심도 상하고 굴욕감마저 느꼈다. 사람이 경쟁에 눈이 멀면 긴 호흡으로 세상을 볼 수 없다. 우선 그 순간의 자존심이 상했다는 것에 구속되어 물불 가리지 않게 된다. 평소에 권력을 탐하고 국정을 농단하던 것에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전횡한 자들이었으니 오죽하겠는가?
적어도 임금 측근으로 국정을 장악할 정도의 권력을 갖고 있는 신하라면 안영이 금복숭아를 차례로 바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러한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의도로 그가 이렇게 하는가를 파악했어야 했다. 하지만 평소 국가에 공을 세웠다는 자부심이 가득한 그들이 그저 눈앞의 금복숭아를 먹지 못한 그 속상함 때문에 스스로 흥분된 상태에서 전개 상황을 전혀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전개강을 비롯한 세 사람 모두가 눈앞의 이익에 홀려 안영의 계략에 완전히 말려 들어가게 되었다. 물론 세 사람의 단편적인 인식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한 안영의 역량이 뛰어나긴 했다. 드디어 안영이 말한다. 분노의 감정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던 전개강의 가슴에 기름을 붓는 제안이 나온 것이다.
“폐하, 우리에게 불복하던 서(徐)나라를 무력으로 정복한 전개강의 공로는 실로 지대하여 앞의 두 장수보다 훨씬 더 크지만, 안타깝게도 복숭아를 다 먹어 하사할 수 없게 되었으니 전하께서는 술이나 한 잔 내리시고 내년을 기약하소서.”
안영이 전개강의 입장을 진정으로 안타까워하여 이렇게 전개강을 위로할 리는 없다. 오히려 이런 상황을 만들고 이런 사태를 조장한 사람이 바로 안영이었으니 말이다. 안영 이 사람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세 사람이 안영의 의도를 조금이라도 눈치했다면 당장에 칼을 빼어 달려들었을 터였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세 사람보다 먼저 저승길을 갈 수 있는 실로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세 사람을 이간질시켜 동시에 제거하려는 안영의 의도를 알았다면 그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않는가.
조정에서 국정을 농단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용사 세 사람 앞에 전혀 두려움 없이 사태를 지배하고 상황을 통제해 나가는 재주가 정말 탁월하다. 그 어느 누구도 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안영이나 제 경공에게 따지는 사람도 없었다. 다수의 사람이 함께 있었는데도 아무도 안영에게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물어 보지도 않았다. 이 상황에서 세 사람을 제거하겠다는 의도가 조금이라도 들키는 날에는 천하의 안영이라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급박한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한 수 한 수를 펼쳐 나가는 그의 능수능란함이란!
여기에서도 전개강이 좀더 현명하였다면 냉정하게 처신하였겠지만, 그는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고 여겨 뜻밖의 행동을 저지른다. 국가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군대를 이끌고 나가 타 국가를 굴복시키는 큰 공을 세웠지만 복숭아를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해 참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전쟁에선 천하의 맹장일지 몰라도 이런 술수에는 아주 치명적인 것이 단순한 무인(武人)의 특성이라고나 할까. 이러한 치욕으로 두 임금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조정에 설 수 있겠느냐면서 갑자기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사태가 이렇게 급변하게 되자, 그에게 복숭아를 양보하지 않고 먼저 먹었던 공손첩은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역시 목을 찔러 자살했다. 적어도 국빈을 모셔놓고 그까짓 금복숭아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이렇게 망신 주느냐고 한 번이라도 안영에게 대항할 수 있는 깜냥조차 갖지 못한 용렬한 사람들이었다.
전개강과 공손첩이 차례로 자살하자 이번에는 함께 권력을 누리면서 호의호식하던 고야자 역시 자살하고 만다. 세 사람이 모두 죽었기 때문에 결국 안자가 의도한 대로 되었다. 이것을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라고 하여 제나라 명재상 안영의 이름을 후세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된다. 세 용사 입장에서 보자면 안영의 계략이 참으로 교활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누구보다 나라에 큰 공을 세웠는데 재상의 계략에 의해 세 명 모두 자살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안영이 누구인가? 자신의 욕심 때문에 그러한 계책을 쓸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특히 국가에 공을 세운 자들이 겸손하지 않고 오만방자하게 국정을 농단하고 권력을 전횡한 사람들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안영이 부린 술수라고 비하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안정된 국정을 위해서 세 사람은 일찌감치 도태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했다. 세 사람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되 좀더 겸손한 자세로 국정에 참여하였으면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을 터!. 다시 봐도 안영의 계책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제갈량은 세 용사를 동정하고
제나라 명재상 안영의 이도살삼사 사건이 후세 사람들에게 더욱 유명하게 된 것은 제갈량(諸葛亮이 이들 세 사람의 무덤이 있는 탕음리(蕩陰里)를 지나다가 읊었다는 「양보음(梁甫吟)」 덕택이다. 제갈량의 시를 한번 음미해 볼까 한다.
제 나라 도성 동문 밖으로 걸어 나서면 步出齊東門
탕음리가 저멀리 보이는데 遙望湯陰里
그곳에는 무덤이 세 개가 있다 里中有三墳
모두가 같은 모습으로 나란히 늘어져 있다. 累累正相似
지나가던 사람이 누구의 무덤이냐고 묻자 問是誰家塚
전개강(田開疆), 고야자(古冶子), 공손첩(公孫捷)의 무덤라고 한다. 田開古冶子
힘은 남산을 밀어올릴 수 있었고 力能排南山
그 학덕은 지기(地紀)라도 끊어 천지를 움직일 만하였다. 文能絶地紀
하루아침에 참언을 받아 一朝被讒言
복숭아 두개로 삼사가 죽음을 당했다. 二桃殺三士
누가 능히 삼사를 이렇게 죽일 수 있었는가? 誰能爲此者
제 나라의 상국 안자이었더라! 相國齊晏子
끝부분에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가 분명하게 나온다. 어떤 작품이든 어떤 대상이든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 다양한 평가가 나오기 마련이다. 상상력이 가득한 시가(詩歌)야 오죽하겠는가. 따라서 위 시에 대한 관점은 다양할 수 밖에 없다. 안영의 계략을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제나라의 국상 안영이 의도적으로 복숭아 두개를 주면서 세 사람이 자기의 공훈을 자랑하게 한 뒤에 모략을 써서 자결을 유도하였다고 보고 이 고사를 한탄하였다는 것이다.
안영의 묘책이 아무리 나라와 민족을 위한 충정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그 계책이 너무나 비열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전개강, 고야자, 공손첩 세 사람은 문무를 국가에 기여한 공이 큰, 훌륭한 인재였으나 안영의 모략에 걸려 큰 뜻을 펴보지도 못하고 비명횡사해 버린 것으로 보는 것이다. 도성 밖의 황량한 무덤 풍경을 서술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어이없이 저승길로 가버린 세 사람의 인생 여정을 추억하면서, 당대 최고의 재상이던 안자(晏子)가 세 총신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의 협량(狹量)을 꾸짖은 작품으로 보는 입장이 그것이다.
제나라 국정을 이끌어가는 주역인 재상으로 그런 모략을 쓴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것이 안영 비판론자의 시각이었다. 그들이 비록 스스로의 공훈에 취하여 과시하면서 때로는 오만하기까지 한 것은 썩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들을 잘 이끌어 국정을 수행하는 데 활용하였으면 하는 안타까움일 것이다. 세 인물의 장점을 잘 활용하여 국가의 동량지재(棟梁之材)로 양성할 수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입장 말이다.
비판론자들의 견해처럼 안영이 이 세 사람을 너그럽게 받아들여 조정에서 훌륭한 역할을 맡길 수가 있었을 정도로 세 사람의 깜냥이 충분했을까. 그들을 모아 적절한 훈계를 하였다면 과연 그들이 안영의 의견을 순순히 받아들여 나라에 기여하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안영의 의견을 수용할 정도의 인품이라면 애초부터 그렇게 거만하게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안영이 그들을 도모하기 위해 다른 방법으로 일을 계획하고 그들 또한 안영의 생각을 알고 있었다면 그들이 오히려 군사를 일으켜 안영을 제거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군주도 눈에 보이지 않는데 까짓것 재상 정도야 고민할 것 있겠는가. 국정을 농단하고 군주의 존재를 무시하듯 처신한 세 사람의 평소 언행을 보면서 안영이 그들을 제거하려고 판단할 정도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과연 이 세 사람을 좋은 말로 설득하고 국정을 위해 너그럽게 포용할 가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안영이 개인적인 권력욕만으로 그들을 제거한 것은 아니었다.
안영은 일관성을 가지고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국정을 수행한 사람인 만큼 이들 세 사람은 제나라의 미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국가의 안녕을 위하여 안영이 아주 기묘한 계책을 써서 세 사람을 제거하려고 시도하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세 사람은 국가의 기둥이 아니라 오히려 천하의 난신적자(亂臣賊子)가 아니었을까 싶다.
제갈양이 양보음을 읊은 의도
그렇다면 과연 제갈공명이 이 양보음 시를 읊으면서 진정으로 의도한 것은 무엇일까. 안영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논리와 달리, 제 경공의 세 용사가 군주의 총애를 업고 권세를 누리면서 오만방자한 태도를 취하는 것만을 비판하고자 한 것일까. 아니면 복숭아 두 개로 세 권신을 간단하게 제거해 버린 안영의 뛰어난 지혜와 역량을 높이 평가하여 자신도 그러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이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제갈량이 어떤 의도에서 이러한 시를 읊었는지 파악할 근거가 전혀 없지만 이도살삼사 고사의 내용을 후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 교훈을 주려고 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조정에 공훈을 세운 사람이 오만하게 처신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심을 잃은 사례가 흔하다. 더 나아가 조정의 실권을 좌지우지하고 전횡하는 모습을 보이면 함께 벼슬하는 관리들의 심정은 하나같이 이들을 제거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그러한 일이 허다하게 일어날 수 있다. 지나치게 자만하거나 자부심이 강해 사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섣부른 판단으로 일을 그르치는 사람들에게 좀더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분석하여 여유있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고방식을 요구한 것은 아닐까 싶다.
안영이 사직을 지키고 국정을 도모하여 조정의 태평을 유지하기 위해 이도살삼사를 실행한 것은 국정의 안정적 수행을 위한 충정이라고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권력 투쟁은 그야말로 권력 그 자체에 매몰되어 국가나 민족의 안녕은 외면하고 정적을 잔인하고 비열하게 제거하여 사리사욕을 채운 경우가 많다. 겉으로 대의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는 권력투쟁으로 귀결된 사례가 많다. 인간이 역사를 만들었던 그 순간부터 잔인하고 교활하게 정적을 제거하는 권모술수가 존재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겉으로는 국가와 민족을 강조하지만 권력의 저 음습한 밑바닥에서는 그러한 술수가 늘 횡행하였다. 우리들의 삶이 전부 그렇다고 믿는다면 기우(杞憂)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