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신(處身)의 최고 달인 범려(范蠡)도 아들을 잃다.

by 길엽


중국의 상신(商神)으로 평가받고 중국인들이 가장 본받고 싶어하는 롤모델인 범려(范蠡)는 진퇴(進退)에서 탁월한 처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범려 하면 대표적인 한자성어로 토사구팽(兎死狗烹)를 들 수 있다.

‘범려(范蠡)’는 실질적으로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크게 공헌했다. 범려는 20여 년 동안 구천을 보필하며 그를 패자(覇者)로 만들었다. 그 공로로 범려는 상장군이 되었지만, 구천이 어려움은 같이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함께할 인물이 못 된다는 것을 꿰뚫어 보고, 구천에게 작별을 고하고 월나라를 떠나 제(齊)나라로 떠났다. 그가 떠나며 자신과 가장 절친했던 대부 ‘문종(文種)’에게 ‘토사구팽’의 이치를 비유하며 서신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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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먹는다는 뜻으로 흔히 나라나 군주에게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비정하게 버림받는 상황에서 많이 인용된한다. 물론 범려가 토사구팽을 당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토사구팽을 경고하였다. 월나라 구천이 오나라 부차를 최종적으로 격파하고 오월쟁투를 승리를 이끌었을 때 자신과 함께 구천의 특급 참모였던 대부 문종에게 냉혹한 권력의 현실을 들어 토사구팽을 경고한 것이다.



토사구팽은 사기(史記)에 두 번 나온다. 춘추시대 월나라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킨 범려가 월왕 구천의 사람됨을 평가하며 문종에게 일러 말했다.

장경오훼(長頸烏喙)가 등장한다. 구천이 바로 ‘긴 목에 까마귀 부리와 같이 뾰족한 입을 가진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어려움은 함께할 수 있으나 즐거움은 함께 누리지 못할 관상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말로써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주인공 월왕(越王) ‘구천(勾踐)’을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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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려는 문종에게 구천에 대한 평가로 고난은 함께 할 수 있으나 영화를 함께 누릴 수 없는 인물이라 판단하여 구천의 만류를 무릅쓰고 월나라를 탈출한다. 범려는 월나라를 떠나면서 자신을 처음 구천에게 천거하여 월 구천을 위해 일했던 대부 문종에게 서신을 보낸다.

‘날던 새를 다 잡으면 좋은 활도 창고에 버리고,

蜚鳥盡 良弓藏,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

狡兔死 走狗烹,

적국을 멸망시키고 나면, 함께 도모하던 신하도 버림받는다

敵國滅 謀臣忘.’



범려는 대부 문종에게 목숨을 건지라며 ‘토사구팽(兔死狗烹)’의 사례를 들며 자신처럼 떠나라고 권했다. 문종은 이 서신을 읽고 살 길을 도모한다. 그래서 병을 핑계로 조정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구천의 시야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렇지만 권력의 비정한 세계가 그를 놓아두지 않았다. 조정 신하들이 월 구천에게 대부 문종을 끊임없이 참소했다. 구천이 사람을 의심하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신하들의 참소를 듣고 구천은 끝내 그의 반역을 의심해 칼을 보내 자결하도록 했다.


대부 문종은 대단한 인물이었다. 뛰어난 역량의 소유자 범려를 천거했고 월 구천과 범려가 오나라로 끌려간 뒤에는 조국 월나라에 남아 후일을 대비하여 철저한 대비를 하였다. 오나라 부차의 의심을 피해가면서 망국 월나라가 재기하기 위해 어디 만만한 일인가. 그래도 대부 문종은 오나라에 몇 년 간이나 포로로 끌려가 있는 월왕 구천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 결국 월나라가 막강한 전력을 갖추고 주군 구천이 오월쟁패에서 승리하는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그러한 대부 문종이 구천에 의해 철저하게 버림을 받고 자결당하게 되니, 범려의 혜안이 대단하지 아니한가.


토사구팽의 다른 사례는 한고조 유방 휘하 최고 장수였던 한신이다. 진시황 사후 5년 초한쟁패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고 황제에 올랐던 한고조 유방이 낙양(洛陽)의 남궁(南宮)인 궁전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천하를 놓고 엄청난 군세(軍勢)를 자랑하던 초패왕 항우를 격파했으니 유방 스스로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연회 자리에서 황제 유방이 시립해 있는 모든 신하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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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후들과 제장들은 짐의 물음에 답해주기 바라오. 짐이 천하를 얻게 된 까닭과, 그리고 반대로 항우가 천하를 잃은 까닭은 무엇인가를 말해 주시오.”


이에 고기(高起)와 왕릉(王陵)이 대답하기를, 한고조 유방은 성(城)을 공격하여 땅을 빼앗으면 전리품을 천하의 백성들과 고루 나누었지만, 항우는 공이 있는 자를 도리어 죽이고, 어진 자를 의심하였으며, 땅을 얻은 자에게 이익을 주지도 않았다고 했다. 이들이 말한 내용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항우와 유방의 인품을 비교할 때 흔히 거론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유방은 이 말을 듣고, 두 신하가 한쪽 면만 알고 다른 면에는 생각이 미지치 못한다고 하면서 세 인물을 극찬한다.

“장막 안에서 천리 밖의 전선에서 승리를 결정함에 짐은 장량(張良)보다 부족하고, 백성을 어루만지고 군량을 전선에 공급하는 것은 소하(蕭何)를 따를 수가 없소. 또 백만의 대군을 이끌고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것에는 한신(韓信)보다 못하오.“


당시 한고조와 함께 자리한 신하들이 기뻐하면서 탄복하였다. 한고조 유방도 인정하듯이 초한쟁패에서 최후 승리를 거두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세 인물 장량, 소하, 한신을 흔히 서한삼걸(西漢三傑)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렇데 백만 대군을 이끌고 승리를 거듭하여 한고조를 황제의 자리에 올려 준 한신이 바로 토사구팽을 당한다. 권력의 세계는 부자간에도 나누지 않을 만큼 그렇게 비정하다.


한고조 유방을 도와 초한쟁패에서 유방이 항우를 격파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던 한신이 결국 유방에게 철저하게 버림받았을 때 탄식한다.


"과연 사람들의 말과 같도다. 교활한 토끼를 다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고,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감추어지며, 적국이 타파되면 모신도 망한다. 천하가 평정되고 나니 나도 마땅히 '팽' 당하는구나(果若人言. 狡兎死良狗烹, 飛鳥盡良弓藏. 敵國破謀臣亡. 天下已定, 我固當烹)"


그렇게 권력의 비정한 세계를 철저하게 파악하고 일찌감치 구천을 떠났고, 엄청난 부(富)를 축적할 정도로 뛰어난 역량을 지녔던 범려가 정작 자신의 둘째 아들은 어이없이 잃게 된다. 그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범려의 둘째 아들이 시체로 돌아왔다. 둘째 아들의 시신을 앞에 놓고 범려의 부인과 다른 아들들 그리고 집안 사람들 전체가 통곡하였다. 둘째 아들을 구명하러 간 큰아들이 범려 앞에 꿇어 앉아 사죄하였다.


범려는 이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다. 큰아들은 결코 제 동생을 구해오지 못할 것임을. 범려는 그랬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주인공 월왕 구천을 도와 화계산의 치욕을 갚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월나라 재상 범려(范蠡)가 구천의 손길을 떨치고 권력에서 표표히 떠나간 뒤 도(陶)땅에서 엄청난 재물을 모아 다시 한번 천하의 이름을 알려 도주공(陶朱公)이라 일컬어지던 범려도 둘째 아들을 구하지 못했다.


범려(范蠡)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월의 정치가, 군인이다. 자는 소백(少伯)이다.

범려는 이십여 년간의 치밀한 계획 끝에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구천을 천하에 호령하는 패왕으로 만들었으며 자신은 상장군의 지위에까지 오르지만 곧 구천의 곁을 떠났다. 구천과는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어도 편안함은 나누기 어렵다. 권력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범려가 구천을 떠나 가솔을 이끌고 간 제나라에서도 수십만 금(金)을 모아 이름을 세상에 알렸지만, 다시 그곳을 떠난다. 그렇게 도착한 도(陶)땅에서 정착하였다. 이곳에서 살고 있을 때, 둘째 아들이 초나라에서 살인죄를 저지르고 옥에 갇히게 된다.


범려는 둘째 아들을 살리려고 셋째를 초나라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큰아들이 강력하게 반발하여 어쩔 수 없이 큰아들을 초나라고 보내게 되었다. 황금 일천 일(鎰)을 주어 초나라의 오랜 지기 장생(長生)에게 보내면서 주공은 신신당부한다. 장생이 하자는 대로 따라야 한다고. 큰아들도 아버지 범려의 당부에 반드시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하고 초나라도 떠났다.


장생은 초나라의 성곽 밖 초라한 집에 사는 가난한 선비였다. 그렇지만 장생은 초나라 왕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었다. 범려의 큰아들이 가지고 간 황금 일천 일을 건네자, 장생이 받으면서 말한다.


"자네는 여기를 빨리 떠나시게, 행여 동생이 구출되더나도 그 까닭은 절대 묻지 말게.”

장생은 그날 바로 초나라 왕을 찾아 아뢰었다.


"폐하! 하늘의 별의 움직임을 보니 장차 이 나라에 해로움이 있겠습니다."


초나라 왕은 깜짝 놀라 즉각 사면령을 내려 덕을 베풀기로 한다. 장생이 이렇게 초나라 왕을 만나 구명 작업을 하고 있는데도, 범려의 큰아들은 장생의 말을 따르지 않고 다른 초나라 귀인을 상대로 동생 구명을 위한 로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라에서 사면령이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사면령이 떨어지만 장생을 통하지 않고도 자기 동생이 석방될 것임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장생에게 건넨 일천 일의 황금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으니 돌려 받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범려의 큰아들은 장생을 찾아 갔다. 장생이 깜짝 놀라 물었다.

.

"자네 어찌하여 아직도 이곳을 떠나지 않았는가?"

범려의 큰아들이 말하기를,


"최근에 사면령이 내려진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직 인사나 드리고 떠나려고 왔습니다."

하지만 장생은 범려의 큰아들이 이곳에 왜 왔는지 단번에 파악했다. 그래서

"방안에 있는 황금을 다시 가져가게."


그렇게 장생의 방안에 온전히 보관되어 있던 황금 일천 일은 다시 범려의 큰아들 손에 들어갔다. 동생도 구하고 거금의 재산도 유지했으니 돌아가서 부친 범려에게 큰 칭찬을 받으리라. 그러나 장생은 생각이 전혀 달랐다. 상대를 믿고 헌신적으로 구명 운동을 펼쳤는데, 배신감이 너무나 컸다. 그래서 다시 초나라 왕에게 다시 아뢰기를,


"폐하! 도(陶)땅의 도주공 자제가 사람을 죽이고 옥에 갇혀 있사옵니다. 그런데 소문에 듣자하니 폐하의 측근이 도주공의 뇌물을 받아 폐하로 하여금 도주공의 자제를 살리려고 사면령을 내리시게 한다고 하옵니다."

장생의 간언에 초나라 왕이 격노하였다. 도주공 범려의 아들은 사형을 당하였다. 범려의 둘째 아들이 사형을 당한 후에 초나라에 사면령이 내린다. 큰아들은 동생의 시체를 안고 도(陶)땅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도주공 범려가 말했다.


“처음에 첫째를 보낼 때부터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 둘째 아이는 시신으로 돌아올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는 어릴 때부터 나랑 같이 고생하였기에, 돈 쓰는데 신중하다. 하지만, 셋째는 재물을 많이 모아 부자가 된 뒤 태어나서 고생을 몰랐다. 당연히 돈을 아낄 줄을 몰랐을 것이다. 돈을 쓰는 것에는 능하지만, 돈을 축적하는 것은 부족했다. 그래서 둘째를 구하기 위해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셋째를 보내려고 한 것이다.”


오월쟁패의 그 엄혹한 상황에서도 월왕 구천을 위해 천하의 형세를 파악할 정도로 뛰어난 그였기에 작금의 상황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 아들들의 품성과 기질 그리고 지기(知己) 장생의 성품, 장생이 초나라 왕의 존경을 받고 있다는 사실 등등을 알고 있었다. 권력의 비정한 속성을 파악하고 구천의 곁을 과감하게 떠날 수 있었고, 함께 공을 세운 대부 문종에게도 권력 세계에서 떠날 것을 강력하게 권했던 범려였다. 그랬던 범려도 정작 자신의 아들을 구하는 것은 실패했다. 만약 첫째가 아닌 셋째를 보냈다면 둘째는 당연히 구하지 않았을까.


이미 지난 일은 후회해 본들 무슨 소용이랴! 첫째가 반발하고 나서더라도 셋째를 보내는 용단을 내렸다면 좋았을 텐데, 범려는 이후 상황을 충분히 예견하고 있음에도 어쩔 수 없이 큰아들을 보냈다. 사람 일이 다 그런 것인지 모른다. 더욱이 부모 자식 간에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쉽지 않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뻔히 알지만, 부모로서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내세울 수 없었던 범려의 속사정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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