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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l 01. 2023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자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 중 예양(豫讓) 이란 자객 이야기

“사내대장부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죽고,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용모를 꾸민다.”          

                 

             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     

                                 

                                      출전(出典)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 예양(豫讓)     


사마천의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 중 예양(豫讓)이란 자객 이야기가 나온다. 예양이 지백(智伯) 요(瑤)의 총애를 받았는데, 지백 요가 조양자(趙襄子)와 한강자(韓康子)와 위선자(魏宣子)의 연합군에게 패망한다. 조양자가 지백의 집안을 도륙하고, 그래도 분에 덜 찼는지 지백의 두개골로 술잔을 만들어 버렸다.


이에 예양이 자신이 따르던 죽은 지백을 위해 조양자에 대한 복수를 결심한다. ‘선비는 또는 사내대장부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죽는다.’ 다면서 조양자를 죽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런데 지백 요는 강퍅하고 오만한 성격으로 가문의 멸망을 초래하는 장본인이었다.  


『설원(說苑)』에 이런 기록이 나온다. 지백의 강퍅함과 조양자의 인내를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어느 날 지백(智伯)과 양자(襄子)가 술을 마실 때 지백이 양자의 머리에 술을 붓자 대부들이 지백을 죽이자고 청하니 양자가 말했다.

“선군(先君)께서 나를 후계자로 세울 때 ‘능히 사직을 위하여 모욕을 참을 것이다.’라고 하셨지, 어찌 ‘능히 사람을 찔러 죽일 수 있다.’고 말씀하셨느냐!”  

      


예양이란 자객을 논하려면 지백과 나머지 세 사람 조양자, 한강자, 위선자에 얽힌 진양성(晉陽城) 전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晉)나라에는 경(卿)의 지위에 있는 지(智), 조(趙), 한(韓), 위(魏), 범(范) 중항(中行)씨가 각자 소국을 형성하고 있었다.


예양은 처음에 범씨, 순씨를 섬기다가 지씨를 섬겼다. 후에 그가 밝히기로는 순인(荀寅)과 범길사(范吉射)는 예양을 그냥 보통 사람으로 대하였고, 반면에 지백(智伯)은 자신을 알아주었다는 이유로 지백을 섬겼다고 했다. 최종적으로 지백의 사람이 된 것이다.

    

B.C 455년 진(晉)나라의 실권을 좌우하던 지백(智伯)이 조(趙)와 한(韓), 위(魏)에게 땅을 요구했는데, 조나라만 거부한다. 지백요(智伯搖)는 거절한 조양자를 제거하기 위해 한강자(韓康子)와 위환자(魏桓子)에게 연합을 요청하여 한나라, 위나라 군사와 함께 조양자를 공격하게 되었다.

    

지백의 요구를 거부했지만 군사력이 열등했던 조양자는 도읍을 옮겨서 대항하게 된다. 조양자가 어느 곳으로 도읍을 정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장맹담(張孟談)이 말한다.  어디로 갈까.

   

"진양(晉陽)으로 가시지요"라고 합니다.      


왜 진양성이었을까. 그 이유를 알려고 하면 지난 날 있었던 일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조양자의 부친 조간자(趙簡子)에겐 아들 둘이 있었다. 장남(백로), 막내(조양자)가 바로 그들이다. 평소엣 두 사람의 역량을 시험한 적이 있는데, 한번은 죽간으로 쓴 글을 두 아들에게 주면서 훈계하였다. 3년 후, 숙지여부를 점검을 하면서 후계자를 정한다. 맏아들 백로는는 훈계문을 암기하지도 않았고 수중에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막내인 무휼 조양자  항상 훈계문을 휴대하고 암송하였다. 그리고 조간자는 윤탁에게  윤탁에게 “진양”을 다스리게 하면서 질문하였다.


“임지에서 어떻게 정책을 펼칠 작정이냐?”

윤탁의 답변에 쾌히 승락하였다.

“무거운 세금을 감면, 양잠 장려와 성곽증축으로 전란에 대비하겠습니다.”

이에 조간자가 죽기 직전에 유언을 내렸다.


“나라에 환란이 발생하면 윤탁을 등용하고 진양으로 피신하라”


실제로 조양자의 부친인 조간자 조앙이 살아 있을 때, 조앙의 심복 가신인 동안우(董安于)는 윤탁(尹鐸)과 더불어 진양성을 새로이 개축했다. 또한 백성들에게도 많은 은혜를 베풀었다.       



그리고 진양성 피난을 제안한 충신 장맹담은 진나라 조양자를 섬긴 책사이자 유세객이다. 『사기(史記)』에는 장맹동(張孟同)으로 나오는데, 이는 사마천이 장맹담의 '담(談)'자가 자신의 부친인 사마담(司馬談)과 이름이 같아서 피휘(避諱)를 한 것이다.



피휘란 국왕, 조상, 성인이 쓰는 이름, 국호, 연호와 같은 글자를 사용하지 않음. 또는 그러한 관습. 존중받아야 할 대상의 이름을 범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때에 따라서는 글자뿐만 아니라 음이 비슷한 글자를 모두 피하거나 획의 일부를 생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조 양자의 돌아가신 아버지도 조 양자에게 "무슨 일이 있거든 진양으로 가라"고 한 적이 있어 조 양자는 진양으로 가게 된다. 근데 진양성의 성곽은 거의 다 부서져 있고 창고는 비어 있다시피 했다. 진양은 지난 10년간 세금을 거의 거두지 않고 백성들에게 쓰기만 했다고 한다. 조양자가 불만을 터뜨린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장맹담도 왜 진양성으로 가라고 했을까. 성곽도 무너져 있고 창고도 텅텅 빈 이곳에서 뭘 어떻게 하란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상태로 적과 맞선단 말인가?"


그러자 장맹담이 답한다.


"신이 듣기로 성인이 다스릴 때는 관의 창고가 아니라 백성의 곳간에 양식을 쌓아둔다고 합니다. 주군께서는 명령을 내리시어 백성들로 하여금 각각 3년 치 먹을 양식만 남기고 모두 관의 창고에 넣으라 하시고, 남는 인원은 성곽을 보수하게 하소서"


명령을 내리자 마자 백성들이 그날 저녁으로 돈과 식량을 가져왔는데, 너무 많아서 창고에 다 넣을 수 없을 정도였고 모두 달려들어 성곽을 보수하니 성곽이 3일 만에 세워졌다고 한다.




진양을 포위한 후, 거대한 강둑을 만들어 수공(水攻)을 펼친다. 그런데 지백의 강요로 연합군을 이루어 함께 공격에 가담한 한강자와 위환자는 눈앞에 다가온 승리가 썩 내키지 않았다. 당장의 승리로 패전이 예상되는 조양자의 땅을 각각 균등하게 분할하여 분배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조나라 항복이 임박했지만 한강자와 위선자는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근심과 걱정에 빠진다. 이번 전투가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면 다음 차례는 자신들이 겪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거대한 수공(水攻)으로 고통을 당하는 조양자의 진양성내 백성들을 바라보며 한강자와 위선자가 경악과 공포를 경험했을 것이다.


이후 지백이 주도하는 연합군이 수공을 하여 싸웠는데 3년 째가 되어도 조양자 군을 패퇴시키지 못한다. 진양성을 강물로 둘러싸 성(城)을 물에 잠기게 했는데도 백성들이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 진양성이 함락되지 않았지만 조양자 입장에선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셈이다. 이에 한강자, 위선자에게  장맹담(張孟談)을 특사로 파견한다.


장맹담은 한강자와 위선자를 차례로 설득한다. 조양자가 멸망하면, 반드시 한강자와 위환자도 공격을 당할 것이다. 그래서 셋은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로 입술과 잇몸과 같은 처지다. 장맹담이 두 사람을 설득하면서 지백요의 속셈을 일깨워주자, 한강자와 위환자는 이번에는 도리어 지백요를 배신하고 조양자와 손잡게 된다.   

   

드디어 B.C 453년 조양자는 지백요의 진영을 쳐서 무너뜨리고 지백요를 사로잡아 처형한 뒤 지백요의 두개골로 술잔을 만들었다. 이 시점부터 진(晉)나라는 실질적으로 조(趙), 한(韓), 위(魏) 세 나라로 분할되었고, 이를 삼진(三晉)이라고 부른다. 이때부터 전국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춘추시대엔 그래도 명분을 따지기도 하면서 각국이 쟁패했지만, 전국시대부터 명분 따위는 아예 무시하고 그야말로 약육강식과 권모술수가 횡행하는 세상이 된다. 승리가 정의가 되는 시기였다.    

  



지백의 두개골로 술잔을 만들었다는 말을 듣자 분노한 예양은 지백을 위해 조양자에 보복을 할 것을 맹세한다. 죄인으로 가장하여 비수를 품고 조양자의 변소에 잠입하여 죽이려다가 발각된다. 조양자는 예양을 의인이라 말하며 석방하였다.     


      

그러나 예양은 몸에 옻칠을 하여 문둥병 환자처럼 변장하고 벙어리 거지의 행세를 하여 다시 기회를 노렸다가 조양자가 외출할 때 다리 밑에서 숨어 기다렸다. 심지어 숯을 삼켜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준비하여 조양자를 저격하려 했지만, 조양자의 말이 놀라는 바람에 다시 붙잡힌다. 조양자가 이번에는 석방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자 예양은 조양자에게 간청하여 그의 옷을 칼로 세 번 친 뒤 ‘지하에 있는 지백에게 보고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태연하게 칼로 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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