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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l 03. 2023

우리 마음을 알아 주니 고맙지요.

아내를 태워서 퇴근하고 돌아오는데, 아파트 주차장에서 연세가 많은 경비원 분께서 인상 좋은 어느 분을 끌다시피 하며 제게로 다가와 인사를 시킵니다. 아내를 조심 조심 내리고, 차를 주차해야 하는 제 입장에선 그분과 인사는 그리 급한 일이 아니었지요. 경비원 분께서 그분의 팔을 끌고 오시기에 제가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아내가 내려서 아파트 현관을 지나 엘리베이트에 오르는 것을 보고 경비원과 그분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번에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 시설 주임으로 오신 분인데, 현직에서 퇴직하고 여기에 오셨는가 봅니다. 경비원들은 60대 후반, 70대 초반이고 현직에서 막 퇴직한 이분은 이제 60대 초반이시니 이분들의 세계에선 비교적 젊으셨습니다. 인상도 참 좋았습니다. 경비원 분께서 저에 대한 좋은 말씀을 많이 하셨던 모양입니다. 정말 쑥스럽게 말입니다.


"우리 같은 어려운 사람들 편을 들어주셔서 나이 많은 사람들 내쫓지 않게 해주신 분이십니다. 우리들이 진짜 많이 의지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우짜든동 잘 부탁드립니다. "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전해 주시네요. 제가 그랬지요. 너무 그렇게 남들한테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지 마시라고 말이지요. 물론 저를 칭찬하는 것은 그리 나쁜 일이 아니지만, 어디 제 혼자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설령 제가 좋은 역할을 해주었다고 해도 반복하는 것은 썩 그리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분과 함께 아파트 관리 사무소까지 가서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 입장에선 아파트 동대표자회의 전체 대표도 아니고 회의 멤버들의 한 사람일 뿐인데 경비원들이 저에게 유난히 살갑게 대해주셔서 고맙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속 모르는 경비원 반장님이 가끔 눈치가 없으셔서 좀 그렇지요. ㅎㅎ.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 갔다가 노인정에 잠깐 들렀습니다. 저녁 6시가 되면 모두 귀가하시는데 고스톱 막판에 시끌벅적하네요. 제가 들어가니, 93세 된 할머니께서 두 팔을 높이 크게 흔들며 저를 반겨주십니다. 환한 웃음으로 저에게 빨리 오라고 재촉하십니다. 이 할머니 그 연세에도 몸짓이 아주 쾌활하십니다. 표정도 매우 건강하시고, 화투 패를 뿌리는 자세가 보통 솜씨가 아닙니다. 젊은 시절 상당한 미모를 가지고 계신 덕분인지 지금 그 연세에도 참 곱습니다. 그리고 10원 짜리 고스톱인데로 승부욕이 매우 강하십니다. 저를 보고 당신 곁에 앉으라고 하십니다. 제가 곁에 있으면 돈을 잘 딴다면서요. 제가 평소에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 말동무를 잘 해드리는 편이라 이분들이 저를 좋아하시는가 봅니다. 고향마을에 들렀을 때도 아지매들 형수님들이 저를 참 좋아한 것도 생각해 보면 어른들께 살갑게 대하는 저의 평소 생활 방식 덕분이겠지요.


고스톱을 치시면서 저의 하루 일과와 근황을 궁금해하십니다. 요즘 왜 노인정에 발길이 뜸한지도 물어 보시네요. 고스톱을 치시면서 동시에 질문을 쏟아내는 그야말로 멀티플레이가 탁월하십니다. 노인정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면서 이렇게 찾아주니 진짜 고맙다고 저에게 몇 번이나 강조하네요.


"오늘 이렇게 올 줄 알았으면 순대나 족발이라도 사올 것을 이렇게 빈손으로 와서 죄송해요. 다음엔 꼭 사올게요."


그렇게 말하자, 다들 강하게 "그냥 오셔도 된다."면서 거부 의사를 보이십니다. 그때 어느 분께서 냉장고에서 담은 술을 꺼내셔서 저에게 한 잔을 강제로 권합니다. 한 잔 정도는 하면서 받아 마셨습니다. 탁자 위에 놓인 족발 한 점을 젓가락으로 꼭 집어 주십니다. 저도 기꺼이 받아 먹었지요. 내일 퇴근할 무렵에는 제가 음식을 좀 사오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다시 둘러 앉아 잠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저보고 국회의원이나 구청장 선거에 나가면 이분들 전부 고스톱도 안 치고 선거운동하시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93세 할머니께서도 선거 운동 하러 오시겠다니 더욱 놀랄 일이지요. 제가 물었습니다. 왜 저에게 이렇게 잘 대해주시느냐고요. 그랬더니,


"우리 마음을 잘 알아주니 정말 고맙지요. 다른 사람들은 우리를 아는 척도 안 하는데, 여기는 그래도 한번씩 노인정에 와서 인사도 하고, 먹을 꺼도 가지고 와서 하도 친절하게 해주이 우리가 얼마나 고맙겠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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