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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l 07. 2023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

제(齊)나라 명재상 안영(晏嬰)이 복숭아 두 개로 세 장군을 제거하다

관중(管仲)과 더불어 중국의 격동기 춘추 시대 천하의 맹주인 제나라의 국정을 이끌었던 안영은 우매한 군주를 보필하여 국정을 훌륭하게 수행하였던 재상으로서 실로 대단한 인물이었다. 안영이 100여 년 뒤 사람이다. 국정에서 군주가 훌륭한 신하의 보필도 받아야 하지만, 군주가 어리석은 경우 신하의 간언을 제대로 수용할 능력이 부족하여 해당 국가의 미래도 밝을 수 없게 된다. 더욱이 안영 같은 훌륭한 신하가 우매한 군주를 보필한다 해도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하지만 안영은 훌륭하게 군주를 보필하였다. 안영에 관한 여러 가지 일화 중 유명한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이야기는 『晏子春秋(안자춘추)』에 나온다. 복숭아 두 개로 장군 세 명을 없앤다는 것인데 그 이야기 안에는 기막힌 내용이 들어 있다. 복숭아 두 개로 어떻게 막강한 장군이자 권신(權臣)을 제거할 수 있는지 안영의 그 지혜가 참으로 궁금하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장군은 공신으로 나라의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실세들이었다.      



제(齊)나라 경공(景公) 시절 전개강(田開彊), 고야자(古冶子), 공손첩(公孫捷) 등 용맹스런 세 인물이 있었다. 각각 뛰어난 공적을 세워 경공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지만, 그것을 믿고 국정을 농단하면서 조정 내에 커다란 골칫거리가 되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신(功臣)에 대한 사후 처리는 매우 민감한 사항이었다. 논공행상에 관한 한 아무리 정교하고 공정하게 처리한다고 해도 어딘가 미흡한 점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불만을 갖게 된 사람들이 역모를 품고 반란까지 일으켜 사회를 더욱 혼란으로 몰아가는 경우도 발생한다.



여기에서 언급하는 세 사람 전개강(田開彊), 고야자(古冶子), 공손첩(公孫捷)은 모두 용기와 힘이 있는데다가 문장도 잘 지어 경공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문제는 권력의 속성에 있었다. 하늘에 태양이 오직 하나이듯이 나라의 지존은 하나뿐이며,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는 속성을 지닌 것이다. 이 세 사람이 경공을 받들고 겸손한 자세로 처신하였다면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심리가 그렇지 않은가 보다. 남들보다 탁월한 공을 세우는 사람들은 저마다 권력의지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권력의지나 출세욕이 공존한다고 할까. 주군을 도와 천하 쟁패의 승자가 되거나 비범한 공을 세운 장상(將相) 대부분은 권력의지가 너무나 강했고, 권력에 대한 미련 때문에 토사구팽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개국이나 정난(靖難)에 혁혁한 공을 세운 부하들이 개국이나 권력 이동을 지나 나라가 안정을 찾아가면, 곧장 권력자의 칼날 아래 스러져 간 역사가 허다하지 않는가.



권력은 참으로 비정한 것이다. 그래서 권력의 비정한 속성을 꿰뚫고 정상(頂上)에서 미련없이 물러나 조용히 삶을 살아간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극히 적었다. 한고조의 특급 참모 장량(張良)이나 월나라 구천를 보좌하여 나라를 되찾았던 범려(范蠡) 정도나 그랬을까.


     

위에 언급한 세 사람의 공로를 확인해 보자. 경공이 지난 날 사냥 갔을 때 호랑이가 달려들었다. 좌우가 당황하고 있을 때 과감히 뛰어들어 호랑이를 맨손으로 쳐서 경공을 구해 준 사람이 공손첩(公孫捷)이었다. 그리고 경공이 황하에서 커다란 자라의 습격을 받았을 때 이를 잡아 죽여 위기에서 구해 준 고야자(古冶子)였다. 경공의 초청에 응하지 않았던 오만방자한 서(徐)나라를 정벌해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전개강(田開疆)이었다. 제경공의 입장에서 이 세 사람은 그 어느 누구 하나 부족함이 없는 그야말로 공신(功臣)들이었다. 그들이 공적을 앞세워 경공 곁에서 설쳐대는 모습은 정말 오만방자하기 그지없었다.



사람들이 공을 세우면 자신도 모르게 거만하게 되어, 겸손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가 보다. 공신 세 사람이 어울려 다니며 안하무인(眼下無人) 격으로 처신하였으니 당시 경공 이하 조정의 신하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전제군주 체제하에서 국가의 공신은 그 존재 자체가 군주에게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인식하였다면 더욱 조용하게 처신하여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였을 것이다. 어차피 권력은 오래 가지 않는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십일을 넘기지 못하는 법! 권력이 천년만년 자신의 손아귀에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겠지만, 그 끝은 참으로 허무하다. 그런데도 권력자들은 권력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향유하려 한다.      


     

제경공의 힘이 아직은 세 사람을 제거할 정도로 갖추지 못했기에 경공이 현실을 방치할 뿐이었다. 만약 경공의 세력이 조정을 제압할 정도였으면, 이 세 사람처럼 오만방자하게 처신하면 곧바로 죽임을 당할 것이었다. 그렇다 하더라고 세 사람이 자신의 공은 뒤로 물리고 스스로 겸손하게 처신했다면 조야의 존경을 받고 온전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세 사람은 불행하게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들은 나라에 공을 세워 왕의 신임이 두터워지자 예의가 없고 안하무인격이 되어서 주군이 경공에게도 불손한 태도를 보일 정도였다. 사람은 권력을 잡으면 주위를 전혀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의기양양해지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권력을 둘러 싼 암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 더욱이 권력을 쥐락펴락하고 있더라도 언제나 그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자가 조정에 가득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당시 재상이었던 안영도 이 세 사람의 국정 농단에 대해 깊이 우려하였음이 자명하다. 안영 같이 탁월한 국정 수행 능력을 지니고 담대한 기백까지 갖춘 재상이 기고만장하던 이 세 사람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국가의 안녕을 위해서도 그들을 조기에 제거해야만 했다. 어떻게 보면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 세 사람 모두 설득하여 민족과 국가에 기여하는 인물로 개과천선하게 하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안영이 보기에 세 사람은 그럴 가능성이 결코 없었다. 가급적 피를 흘리지 않는 것이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겠지만 이들은 애초에 누군가의 충고를 들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세 용사의 등장에 대해 신정근은 『안자춘추(晏子春秋)』 「암주(暗主)의 일상적 폭정과 최후 시간의 유예」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제나라는 춘추시대 초기에 환공이 패자의 역할을 한 뒤로 국제무대에서 뚜렷한 위력을 떨치지 못했다. 안영이 활약하던 시절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 등 부족한 정치 지도자가 연이어 등장하면서 국력이 더욱 위축되었다. 하지만 그들도 춘추전국시대의 시대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던 터라 쇠락한 국위를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장공과 경공은 반발이 일어나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제도 개혁을 통해 제나라의 국력을 만회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렵지만 성공하면 탄탄한 기반을 가질 수 있는 진나라 식의 개혁, 즉 변법(變法)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길을 채택했다. 그들은 용력지사(勇力之士), 즉 오늘날 육군의 특전사나 해군의 UDT를 키우고자 했다.       



『안씨춘추』 제일 첫 편을 보면 장공은 용력(勇力)으로 수세의 상황을 반전시키고자 했기 때문에 도의를 지키는 문제를 신경 쓰지 않았다. 용력지사들도 나라에서 어떤 제지를 받지도 않아 거리낌 없이 행동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귀족과 인척들도 장공에게 유능한 사람을 추천하지 않았고 근신과 총신들도 잘못을 범하고서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다. 장공의 길이 실패로 끝난 뒤에도 경공도 실패한 길을 되풀이해서 걸었다. 공손첩(公孫捷), 전개강(田開疆), 고야자(古冶子) 세 사람이 경공에게 중용되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호랑이를 때려잡을 정도로 용력(勇力)이 뛰어났다.


경공은 세 사람으로 국내외에서 위세를 과시하게 되었지만 그들은 제나라에게 안하무인으로 굴었다. 안영이 경공에게 이 문제를 제기하자 경공도 그제서야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도 세 사람을 때려잡으려고 해도 제대로 되지 않고 찔러 죽이려고 해도 제대로 맞추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인접국이던 노나라 소공(昭公) 일행이 제나라로 왔는데, 연회를 베푸는 자리에서 안영이 금복숭아 두 개를 내 놓으면서 양측 군주에게 바쳤다. 후원의 금복숭아가 향기롭게 익었으니 두 임금께서 그것을 드시고 만수무강하시라는 말과 함께 복숭아 두 개를 올렸다. 그 복숭아는 너무나 귀한 것이라 맛이 좋다고 소문이 쟁쟁할 정도였다.



그런데 안영이 복숭아를 단 여섯 개만 따서 가져온다. 안영이 복숭아 여섯 개를 쟁반에 받쳐 들고 와서 경공에게 올리자, 경공은 한 개를 귀빈인 노나라 소공에게 주고 한 개는 자기가 먹었으며, 또 한 개는 소공을 모시고 함께 온 숙손착(叔孙婼)에게 주고 한 개를 안영에게 주었다. 총 여섯 개 중에 네 개를 먹게 되니, 두 개만 남게 되었다. 여기에서 안영의 계책이 빛을 발하게 된다. 이런 상황 전개를 안영이 애초부터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안영이 경공에게 제안한다.
 
 “아직도 쟁반에 2개의 복숭아가 남았으니 전하께서는 이를 세 신하 중에 이 나라에서 가장 공이 크고 수고를 많이 한 사람에게 주십시오.”
 
 그러자 공손첩이 먼저 나서서 지난 날 자신이 세운 공적을 자랑하자, 경공이 그에게 복숭아와술을 하사했다. 안영의 의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공을 인정받으려는 단순한 사람들의 행동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인간상의 표본이라고나 할까. 금복숭아 하나 먼저 받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렇게 앞으로 나섰을까.


더욱이 그들이 뜻을 합치면 그냥 금복숭아에만 그치지 않고 제나라 전체까지 장악할 수 있었을 것인데, 평소에 어울려 다니던 마음과 달리 막상 이(利)가 눈앞에 보이자 지금 상황이 어떤 것인지도 전혀 모르고, 그냥 공치사할 마음으로 나선 것이다. 세 사람 모두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공손첩이 금복숭아를 받고 나자 이번에는 고야자가 나아가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업적을 크게 말하니, 경공이 역시 복숭아와 술을 하사한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안영이 총 여섯 개의 금복숭아를 준비하여 두 군주와 숙손착, 안영 그리고 공손첩과 고야자가 가져 갔으니, 남은 복숭아가 있을 리가 없었다. 필시 과수원에 가면 더 많은 복숭아가 있었을 테고, 그렇게 대접하려는 의도가 있었으면 더욱 많이 준비해 두었을 터. 여기에서 전개강이 폭발하게 된다. 사실 전개강 이 사람은 두 사람의 공적보다 더욱 크다고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개인의 용력을 보여 인정받았다면 전개강은 춘추전국시대에 가장 중요한 무력 수단인 군대를 동원하여 타국을 무너뜨린 공로를 세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 경공이 천하 패자임을 선언할 때 서(徐)나라가 불복하였고, 이에 전개강이 군대를 이끌고 정벌하여 굴복시켰다. 그런데 자신에게 복숭아 하나도 남지 않은 상태를 목격하였으니 그 분노는 하늘을 찌를 만했다. 자존심도 상하고 굴욕감마저 느꼈다. 사람이 경쟁에 눈이 멀면 긴 호흡으로 세상을 볼 수 없다. 우선 그 순간의 자존심이 상했다는 것에 구속되어 물불 가리지 않게 된다. 평소에 권력을 탐하고 국정을 농단하던 것에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전횡한 자들이었으니 오죽하겠는가?

    

 

적어도 임금 측근으로 국정을 장악할 정도의 권력을 갖고 있는 신하라면 안영이 금복숭아를 차례로 바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러한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의도로 그가 이렇게 하는가를 파악했어야 했다. 하지만 평소 국가에 공을 세웠다는 자부심이 가득한 그들이 그저 눈앞의 금복숭아를 먹지 못한 그 속상함 때문에 스스로 흥분된 상태에서 전개 상황을 전혀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전개강을 비롯한 세 사람 모두가 눈앞의 이익에 홀려 안영의 계략에 완전히 말려 들어가게 되었다. 물론 세 사람의 단편적인 인식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한 안영의 역량이 뛰어나긴 했다. 드디어  안영이 말한다. 분노의 감정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던 전개강의 가슴에 기름을 붓는 제안이 나온 것이다.
 
  “폐하, 우리에게 불복하던 서(徐)나라를 무력으로 정복한 전개강의 공로는 실로 지대하여 앞의 두 장수보다  훨씬 더 크지만, 안타깝게도 복숭아를 다 먹어 하사할 수 없게 되었으니 전하께서는 술이나 한 잔 내리시고 내년을 기약하소서.”
 

안영이 전개강의 입장을 진정으로 안타까워하여 이렇게 전개강을 위로할 리는 없다. 오히려 이런 상황을 만들고 이런 사태를 조장한 사람이 바로 안영이었으니 말이다. 안영 이 사람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세 사람이 안영의 의도를 조금이라도 눈치했다면 당장에 칼을 빼어 달려 들었을 터였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세 사람보다 먼저 저승길을 갈 수 있는 실로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세 사람을 이간질시켜 동시에 제거하려는 안영의 의도를 알았다면 그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않는가.


 조정에서 국정을 농단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용사 세 사람 앞에 전혀 두려움없이 사태를 지배하고 상황을 통제해 나가는 재주가 정말 탁월하다. 그 어느 누구도 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안영이나 제 경공에게 따지는 사람도 없었다. 다수의 사람이 함께 있었는데도 아무도 안영에게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물어 보지도 않았다. 이 상황에서 세 사람을 제거하겠다는 의도가 조금이라도 들키는 날에는 천하의 안영이라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급박한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한 수 한 수를 펼쳐 나가는 그의 능수능란함이란!


 여기에서도 전개강이 좀더 현명하였다면 냉정하게 처신하였겠지만, 그는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고 여겨 뜻밖의 행동을 저지른다. 국가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군대를 이끌고 나가 타 국가를 굴복시키는 큰 공을 세웠지만 복숭아를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해 참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전쟁에선 천하의 맹장일지 몰라도 이런 술수에는 아주 치명적인 것이 단순한 무인(武人)의 특성이라고나 할까. 이러한 치욕으로 두 임금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조정에 설 수 있겠느냐면서 갑자기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사태가 이렇게 급변하게 되자, 그에게 복숭아를 양보하지 않고 먼저 먹었던 공손첩은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역시 목을 찔러 자살했다. 적어도 국빈을 모셔놓고 그까짓 금복숭아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사람들을 망신주느냐고 한 번이라도 안영에게 대항할 수 있는 깜냥조차 갖지 못한 용렬한 사람들이었다.           



전개강과 공손첩이 차례로 자살하자 이번에는 함께 권력을 누리면서 호의호식하던 고야자 역시 자살하고 만다. 세 사람이 모두 죽었기 때문에 결국 안자가 의도한 대로 되었다. 이것을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라고 하여 제나라 명재상 안영의 이름을 후세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된다. 세 용사 입장에서 보자면 안영의 계략이 참으로 교활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누구보다 나라에 큰 공을 세웠는데 재상의 계략에 의해 세 명 모두 자살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안영이 누구인가? 자신의 욕심 때문에 그러한 계책을 쓸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특히 국가에 공을 세운 자들이 겸손하지 않고 오만방자하게 국정을 농단하고 권력을 전횡한 사람들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안영이 부린 술수라고 비하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안정된 국정을 위해서 세 사람은 일찌감치 도태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했다. 세 사람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되 좀더 겸손한 자세로 국정에 참여하였으면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을 터!. 다시 봐도 안영의 계책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제나라 명재상 안영의 이도살삼사 사건이 후세 사람들에게 더욱 유명하게 된 것은 제갈량(諸葛亮이 이들 세 사람의 무덤이 있는 탕음리(蕩陰里)를 지나다가 읊었다는 「양보음(梁甫吟)」 덕택이다. 제갈량의 시를 한번 음미해 볼까 한다.     


步出齊東門  제 나라 도성 동문 밖으로 걸어 나서면

遙望湯陰里  탕음리가 저멀리 보이는데

里中有三墳  그곳에는 무덤이 세 개가 있다

累累正相似  모두가 같은 모습으로 나란히 늘어져 있다.

問是誰家塚  지나가던 사람이 누구의 무덤이냐고 묻자

田開古冶子  전개강(田開疆), 고야자(古冶子), 공손첩(公孫捷)의 무덤라고 한다.

力能排南山  힘은 남산을 밀어올릴 수 있었고

文能絶地紀  그 학덕은 지기(地紀)라도 끊어 천지를 움직일 만하였다.

一朝被讒言  하루아침에 참언을 받아

二桃殺三士  복숭아 두개로 삼사가 죽음을 당했다.

誰能爲此者  누가 능히 삼사를 이렇게 죽일 수 있었는가?

相國齊晏子  제 나라의 상국 안자이었더라!    



*지역 문화원에서 '이도살삼사'에 관해 설명하였더니, 어느 남성 분이 말하기를 "그 세 사람 참 멍청하네, 복숭아를 균등하게 잘라서 나눠 먹었으면 될 것을, 아니면 사람을 시켜 과수원에 가서 한 개 더 따와서 먹으면 되었을 텐데."


태산을 넘어가며 넘어지는 사람은 없어도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은 많다. 아주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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