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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l 10. 2023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면

규칙적으로 출근하여 하루 종일 근무하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월급을 받던 시절을 저만치 뒤로 하고 하루 24시간 무한하게 펼쳐진 노후 세대의 삶을 보내면서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면' 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제 삶의 행복이 최고라고 여기고 그냥 하루 하루 편안하게 살면서 즐겁기만 하다면 된다고 여기고 살아왔지요. 그렇게도 하지 못해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 비해 스스로 행복을 느끼면서 나날을 보낸다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여겼지요. 그런데 요즘 와서 문득 제가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면 그것이 상대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복누림'이 결국 저에게 다시 돌아옴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어느 독서 모임에서 만난 안희연 산문집 <단어의 집>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습니다. 


"'휘도'라는 단어에서 그 답을 찾아보기로 한다. 물리학에서 쓰이는 조도와 휘도는 명백히 다른 개념이다. 빛이 얼마나 도달하는가, 그 물리량을 가늠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조도는 특정 면적에 직접 도달한 빛의 양을 일컫는데 반해 휘도는 그렇게 도달한 빛이 반사되어 우리 눈에 얼마나 들어오는지를 측정하는 개념이다. 결국 휘도는 필연적으로 한 번의 굴절을 거치는 셈이다.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라는 저 유명한 <카사블랑카>의 대사가 세기의 고백일 수 있었던 까닭을 생각해본다. 이 문장은 조도가 아니라 휘도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내가 여기 있어서 당신을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먼저 거기 있기에 이렇게 나도 당신 눈 속에 담길 수 있습니다. 저 혼자 빛나는 사람은 없다. 탄생부터 죽음까지 우리는 모두 타인의 보살핌 속에서, 관계망 속에서 살아간다. 영악하다는 말은 욕이어도 영리하다는 말은 칭찬이다. 너 때문이라는 말은 힐난이지만 너 덕분이라는 말은 상찬이다."


여기서 만난 '휘도'라는 단어에 살짝 꽂혔습니다. 특정 면적에 도달한 빛이 반사되어 우리 눈에 얼마나 들어오는지를 측정하는 개념이라네요. 저도 이 단어를 처음 접했는데, 우리네 삶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어휘더군요. 상대방이 있어 내가 보낸 어떤 것들이 반사되어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생각하니 우리 삶에서 늘 접하는 인간 관계에 적용할 수 있는 단어였지요. 이 세상 나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상대방을 생각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면 그 행복이 그에 머무르지 않고 결국 반사되어 나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요즘 정말 많이 느낍니다. 상대방이 행복해 하면 그것이 결국 저의 행복이 되더군요. 그래서 제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제 앞에 있는 사람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제가 말하는 것이 논리적이지 않을 수 있겠지만,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면 결국 우리 자신이 행복해지지 않던가요. 


요즘엔 누굴 만나도 제가 먼저 살갑게 인사를 건넵니다. 상대방이 기뻐하면 그 덕분에 저도 즐거워집니다. 지난 주 토요일 모임에서 참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과 둘러앉았는데, 그중 한 사람이 저에게 요즘 즐거운 일이 많냐고 물어봅니다. 특별히 즐거운 일이 없었는데 왜 그렇게 물어보시느냐고 도로 물었지요. 사람들을 대하면 유난히 반갑게 맞아주고, 웃으면서 인사를 살갑게 대하는 것이 남달라 보인다고 하더군요. 저도 늘 그렇게 하겠노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긴 했지만, 막상 누군가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니 새롭게 느껴집니다. 저와 그분이 그런 이야기를 주고 받자 바로 옆에 있던 선배님 한 분께서 우리 이야기에 끼어드십니다. 


"내가 살아보이 역시 그래도 다른 사람한테 웃으면서 잘 대해주는 사람이 결국 행복해지고 그것이 얼굴에 생생하게 나타나는 것 같아요. 나도 나이를 많이 먹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여기 모임에 오면 사람들이 나이 많다고 외면 않고 잘 대해주니 정말 고맙지요. 그리고 그렇게 대해 주는 사람들의 삶이 대체로 잘 풀리는 것 같아요. 같은 말이라도 웃으면서 부드럽게 여유를 갖고 상대를 대하는 사람이 역시 보기 좋다 아거지요. 내가 너무 늦게 깨달았나 싶어요."


그 말씀을 하시면서 제 얼굴을 빤히 쳐다보십니다. 아마도 저를 좋게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끝까지 그 점은 밝히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앞으로도 제가 행복하기 위해서 남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말 한 마디라도 따뜻하고 살갑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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