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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l 16. 2023

간담상조(肝膽相照)

유종원(柳宗元).  간과 쓸개를 꺼내어 보이다.

간담상조(肝膽相照)는 ‘간과 쓸개를 꺼내어 서로 내보이다.’라는 뜻입니다. 몸속의 장기를 밖으로 내보일 수는 없지만 마음을 터놓는다는 뜻으로 격의 없이 사귀는 친구를 뜻하지요. 출전은 중국 당(唐)대 한유(韓愈)가 유종원을 위해 쓴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입니다. 자후가 유종원의 자(字)입니다.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은 당나라 성당(盛唐) 시절 문인이자 정치가인 한유(韓愈)가 그의 절친한 문우인 유종원(柳宗元)의 사망에 임해 지은 글로, 유종원은 한유보다 5살 아래의 후배였으며 “고문(古文)” 운동에 의기투합하여 이를 발전시키는데 힘을 합쳐 일한 지기(知己)였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고문이란 변문(騈文)에 상대되는 문장의 형식을 말합니다. 변문(騈文)의 변(騈)은 쌍두마차를 끄는 말이라는 뜻으로 문장 전체가 대구(對句)로 구성되어 있거나 음조(音調)를 중요시하는 것을 그 주된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특징을 살리기 위하여 미사여구(美辭麗句)의 나열에 힘쓴 나머지 문장의 사상 내용이 결여되었다는 비판이 있었지요. 즉 변문은 형식면에서 외형미의 추구를 중시한 나머지 내용이 공허하게 되기 쉬운 문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유가 형부시랑(刑部侍郞)으로 있던 817년, 헌종(憲宗 재위: 806~820)의 불골(佛骨_부처의 유골. 사리) 봉안을 배척하는 상소문을 올립니다. 이 상소문 때문 미움을 받아 광동성 조주(潮州) 자사(刺史)로 좌천되어 가게 되어 이듬해 봄 임지에 도착했는데 그 도중에 유종원의 부음(訃音-죽었다는 기별)을 듣게 됩니다. 오래 전에 유종원이 한유에게 부탁한 일이 있습니다. 유종원 자신이 먼저 죽으면 묘지명을 지어달라고 말이지요. 그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에 간담상조가 언급됩니다.     


유종원(柳宗元)은 773년에 장안에서 태어나, 어머니 노(盧)씨의 높은 교육열 덕에 792년 20세의 나이로 1차 과거시험에 합격해 향공(響貢)이 되었고 1년 뒤인 793년 진사(進士) 시험에 합격하여 벼슬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5년 뒤인 798년에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합격한, 젊은 시절엔 시험만 보면 합격하는 수재였습니다. 그마저도 5년 동안 시험을 보지 않은 것은 도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때 진사시와 박학굉사과에 함께 합격한 유우석(劉禹錫)과는 평생의 친구가 됩니다.  유우석의 자는 몽득(夢得). 낙양(洛陽) 사람입니다.

   

조정의 정치 권력 투쟁에 휘말린 유종원이 805년 9월 소주(邵州)의 책사로 좌천됩니다. 그런데 2개월 만에 또 좌천되어 영주(永州) 사마가 되어 이동 중에 거처도 못 구하여 잠시 용흥사(龍興寺)에 머무르는 신세가 되고, 그로부터 6개월 뒤 모친상을 당합니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의 연속이었지요. 개혁적인 정책을 펼쳐나간 데 대해 보수파들이 반대를 하고 나서며 음모를 꾸몄던 것입니다. 이런 암투 속에서 정원(貞元) 19년(803년) 장안으로 부름받았다가 다시 유주자사로 갈 때, 친구인 중산 사람 유우석(몽득)도 좌천되어 파주(播州)자사로 가야만 했습니다.   

   

자후는 눈물을 흘리며,  

    

“파주는 사람 살만한 곳이 아닌데, 몽득은 노모마저 계시지 아니한가. 나는 차마 몽득의 궁(窮)함을 볼 수 없으며, 그 노모께 아뢸 말이 없음을 차마 볼 수 없다. 또 모자가 함께 갈수 있을 리도 만무하다. 내 조정에 청하여 유주자사와 파주자사를 서로 바뀔 것을 원하여 비록 이것으로 중하게 죄를 얻어 죽는다 해도 원망하지 않으리라.”

      

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자신이 파주자사를 친구 유우석에겐 유주자사로 청원하는 상소를 올리지요. 그런데 마침 다행히도 누군가가 황상에게 유우석의 사정을 아뢴 사람이 있어 다행히 몽득은 연주(連州) 자사로 바뀌어 파견됩니다.

    

이에 한유가 말합니다.      


“아아! 사람이란 곤궁할 때 비로소 진정한 절의가 나타나는 법이다. 평상시에는 서로 아껴주며 주연이나 오락에 서로 부르고 불려가며 농담도 하고 사양도 하면서 지낸다. 그러다가 때로는 서로 손을 맞잡고 간과 쓸개를 서로 꺼내 보이면서 하늘을 가리켜 결코 죽어도 배신하지 말자고 맹세하여 참으로 믿을 것처럼 한다."


握手出肺肝相示 指天曰涕泣 誓生死不相背負 眞若可信



“그러나 하루아침에 터럭만큼의 이해관계에라도 얽히면 마치 서로 모르는 듯 눈을 부라리며 반목하는 것이 보통이다. 함정에 빠져도 그 사람을 구해 주기는커녕 도리어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고 또 심지어 돌까지 던지는데 거의가 다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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