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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l 20. 2023

父母唯其疾之憂 어떻게 해석할까요

진순신(陳舜臣)저, 서은숙 역『논어교양강의』51쪽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논어 위정편인데,  


孟武伯問孝。子曰:「父母唯其疾之憂.」

맹무백이 효를 여쭈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부모는 오직 그 병을 근심한다.


『논어』에는 다양한 독법이 있고, 그 상이한 독법이 저마다 납득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맹무백은 공자의 동료이자 노나라 가신인 맹의자(孟懿子)의 아들입니다. 동료의 아들이므로 당연히 상당한 나이 차이가 납니다. 그 맹무백이 공자에게 효행이란 어떤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父母唯其疾之憂'라는 일곱 자가 공자의 대답이었습니다. 겨우 일곱 자의 대답이 다양하게 해석됩니다.


첫 번째는 후한 마융(馬融) 76~166 등의 고주에 의거한 설로, 이 주장을 따르는 사람이 가장 많은 것 같습니다.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은 병으로만 하라.'라는 풀이입니다. 병만은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으므로 그외에는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이 효행이라는 의미입니다. 불가항력 이외의 것으로 부모를 근심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는 주자(朱子)의 학설입니다. '부모는 단지 (자식의) 병을 걱정한다'라고 읽습니다. 첫 번째에서는 병만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고 풀이하지만, 주자학에서는 부모가 걱정하는 것은 자식의 병뿐이라고 정반대로 주장합니다. 병은 불가항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몸을 조심하고 건강에 주의하며 섭생을 제일로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세 번째는 후한 왕중(王充) 27~90의 주장이라고 하는데, '부모에 관해 말하자면 (자식은) 오로지 그들의 병을 근심한다'라고 읽음으로써 부모가 아니라 자식이 부모를 근심한다고 풀이합니다. 자식에게 근심스러운 것은 부모의 건강입니다. 일본의 이토 진사이伊藤仁齋 1627~1706도 이 주장에 근거해 효를 언급했습니다.


종이가 없는 시대였기 때문에 죽간이나 목간에 먹으로 쓰거나 칼로 새겼으므로 가능한 한 문장은 간단히 기록했을 것입니다. 자명한 내용은 쓰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분명했지만 백 년이 지나면 어떤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단지 일곱 자가 나타태는 의미도 크게 갈라져 이 세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수많은 주자학 생도들이 '건강이 최고의 효도'라는 두 번째 해석과 주자의 말을 중시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마다 독법이 다르겠지만, 저는 두 번째 주자 해석이 상당히 와닿았습니다. 젊은 시절엔 자식이 부모를 걱정하는 것이 효라고 생각했기에 주자의 견해가 좀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는 그 생각이 조금씩 바뀌네요. 孝가 뭘까요. 자식이 아플 때 부모님이 걱정하시는 그런 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효도를 하는 방법을 알게 될 것 같습니다. 자식이 아플 때 부모님이 얼마나 애태웠는지 기억하고 그와 같은 마음으로 대하면 그것이 효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린 시절 병상에 누워 엄마 아빠를 애련하게 바라볼 때, 자식을 위해 국물을 먹이고 약을 먹이는 부모님의 정성을 떠올리면 이해가 보다 쉽게 가지 않을까요.





만당(晩唐) 시인 맹교(孟郊, 751-814) 의 시 <유자음(遊子吟)>이 있습니다. 제목을 풀이하자면 여행 중의 자식의 노래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여행은 객지로 보는 것이 적절하겠지요. 즉 객지에 있는 자식이 부르는 노래라고 할까요.  




慈母手中線(자모수중선) : 인자하신 어머니 손끝의 실은  

遊子身上衣(유자신상의) : 떠돌이 아들이 몸에 걸칠 옷이라네.

臨行密密縫(임행밀밀봉) : 바느질하실 때 꼼꼼하게 꿰매시는 뜻은

意恐遲遲歸(의공지지귀) : 행여 더디 돌아올까 걱정하는 것이라네.

誰言寸草心(수언촌초심) : 누가 말했던가 한 치 짜리 짧은 풀이

報得三春暉(보득삼춘휘) : 석 달 간의 봄 빛에 보답할 수 있다고?



맹교(孟郊, 751-814)는 동야(東野)이고 호주(湖州) 무강(武康) (지금의 절강성(浙江省) 덕청(德淸) 사람입니다. 젊은 시절 숭산崇山에 은거하였지요. 『당재자전(唐才子傳)』에 따르면, 맹교는 평생 곤궁하게 살다가 마흔 여섯 살에 겨우 과거에 급하고 쉰이 되어서야 겨우 과거에 급제하여 율양현(溧陽縣, 지금의 강소성 율양시)의 현위(縣尉)라는 말단 관직에 부임했습니다. 맹교는 율양 현위가 되고서도 관리로서의 업무는 등한시하고 시 짓기에만 몰두하다가 감봉 조치를 당했다고 합니다.


 이 시는 맹교가 율양현위가 된 뒤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를 자신의 근무지인 율양으로 모셔온 일을 계기로 옛날에 자신이 몇 차례나 어머니와 작별하던 일을 회상하여 지은 것이라 합니다.  한유(韓愈) 768-824와 ‘망년지우(忘年之友)’의 교분을 맺었습니다. 북송의 소동파(1036-1101)는 가도(賈島) 779-843와 함께 ‘교한도수(郊寒島瘦)’라고 하여 맹교는 차고 가도는 야위었다고 평하였습니다.  


    

그리고 위 시 유자음(遊子吟) 마지막 부분에 있는 ‘풀’을 다시 볼가요. 풀은 스스로 자랐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 풀이 맹춘·중춘·계춘의 석 달 동안 따스하게 내리쬐어준 봄볕 때문에 자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봄볕은 이렇게 큰 사랑을 베풀고도 말을 하지 않으니 한 치밖에 안 되는 짧디 짧은 풀의 마음이 어찌 깊디 깊은 봄볕의 거룩한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지요. 결국 맹교가 그 어머니에 대한 효가 미진함을,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위대했음을 비유한다고 보면 되겠네요.


           

맹교는 젊은 시절 산천을 유람하면서 하릴없이 세월을 보냈습니다. 흔히 시에 갇힌 죄수, 즉 ‘시수(詩囚)’였다고 하지요. 46세에 겨우 급제하고 50세에 율양현위가 됩니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율양현에 모셔 놓고 지난 날 어머니가 베풀어 주신 사랑을 생각하며 이 시를 지었지요.  셋째 구의 ‘밀밀(密密)’과 넷째 구의 ‘지지(遲遲)’를 대비하여 어머니의 양가적 마음을 절묘하게 표현하였지요.



먼 길을 떠나는 아들을 위해 옷을 한 땀 한 땀 온 정성을 다해 꿰매는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해 볼까요. 옷을 꼼꼼히 꿰매면 행여 늦게 돌아올까 두렵고, 꼼꼼히 꿰매지 않으면 옷이 풀어져 온 사방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는 데 방해가 될까 두렵겠지요. 그리고 한 치 봄풀같이 작디작은 자식의 마음으로 봄볕처럼 한없이 따사로운 어머니의 크나큰 사랑을 어찌 다 갚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춘초심(寸草心)’과 ‘삼춘휘(三春暉)’는 자식과 부모 간의 효도와 내리 사랑을 여실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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