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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l 19. 2023

노년엔 조금만 베풀어도 큰 칭찬을 받는다

지역 문화원에서 인문학 강의 < 사기열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기> 10강을 끝냈습니다. 매주 목요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지역 시니어를 대상으로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만족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요즘 어딜 가나 노래교실을 비롯한 각종 체험활동 위주로 프로그램이 편성되어 인문학 강의가 과연 제대로 될까 의문이 있었지만, 의외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이와 연계하여 앞으로도 꾸준히 인문학 강의를 개설해 달라고 요청 받았습니다. 이번엔 문화원에서 예산을 투입하여 강의를 전개하였지만, 앞으로는 무료로라도 하겠노라고 약속하였습니다. 다음 강의는 동양고전 함께 읽고 말하기 "논어(論語)이야기"입니다. 강사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함께 참여하시는 분들이 자유롭게 생각을 털어놓는 그런 방식으로 할까 합니다. 


앞에서 했던 사기열전(史記列傳)은 제가 10여 년 읽었던 텍스트였기에 자신있게 설명도 할 수 있었지만 관련 자료를 PPT로 제공하고 강의 분량은 가급적 짧게 하고, 책을 매주마다 적당한 분량으로 읽어오게 하였지요. 사진 자료가 많아서 실제로는 읽는 분량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참여하신 분들에게 자유롭게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게 하면서 곤란하거나 불편하면 굳이 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막상 진행해 보니 다들 적극적으로 발표하셨습니다. 쉬는 시간 없이 2시간을 진행했는데, 순식간에 시간이 다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단체 톡도 만들어 앞으로 계속해 달라고 하시더군요. 저도 앞으로 계속 관련 공부를 할 겸 주민들에게 부족한 재주나마 자원봉사하겠노라고 했습니다. 


10강 진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있잖아요. 집에 가서 남편이나 아이들 앞에 무슨 이야기를 5분만 해도 모두 듣기 싫어합니다. 그런데 여기 오면 10분 정도 해도 말을 끊지 않으셔서 이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는 괜히 기분이 좋고, 뭔가 성취해서 가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이 수업엔 가급적 빠지지 않으려 해요. 진짜 감사합니다."


결국 만족도가 높은 핵심적 이유는 강사의 高퀄리티 강의가 아닌 수강생들의 자유로운 발표 분위기 조성이었지요. 그래서 한 권 책은 당연히 그 기간에 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전원 돌아가면서 자신의 생각을 충분하게 발표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주고 맞장구도 쳐주고 공감하는 분위기가 매우 좋았습니다. 그 점에서 만족도가 높았던 것이지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치매'가 요즘 시대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인지능력 저하가 치매의 치명적인 원인임을 고려할 때, 노년 세대들이 늘 책을 읽고 공부하고 타인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하고 공감하는 경험이 많을수록 치매 예방에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논어를 비롯하여 지역 주민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텍스트를 선정하여 '동양고전 함께 읽기'를 계속하려 합니다. 강의비를 받아 수익을 올리겠다는 그런 차원은 결코 아닙니다. 제 재주가 별로지만 그래도 혹시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이렇게 길게 설명하고 보니 원래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를 깜빡했네요. 생각났습니다. 오늘 드리고 싶은 말은 '노년엔 조금만 베풀어도 큰 칭찬을 받는다'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인색한 이미지를 주면 그 삶은 굉장히 초라해집니다. 그렇다고 돈을 뭉텅뭉텅 쓰는 것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흔히 말하지요. "나이가 들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라."고.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나이가 들수록 지갑도 열고 입도 열라고. 물론 앞의 말에 방점은 나이가 들수록 인색하지 말라는 것에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어쨌든 나이 들어서 조금만 베풀어도 큰 칭찬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생활하면서 노년 세대들에게 부담이 될 만한 지출을 강요하지는 않지요. 최소한 그런 분위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저의 인문학 10강을 진행하면서 도와주신 지역 문화원 관계자들에게 음료와 과자 등을 사가지고 갔습니다. 도와주어 진짜 고맙다고 했지요. 그리고 양말 한 켤레씩 함께 선물로 드렸습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정말 적은 금액인데도 다들 너무나 크게 감사해 해서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넉넉한 이미지를 심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돈을 조금만 써도 좋은 말을 들을 수 있으니 그것이 노년 세대의 특징이라 할 수 있지요. 대신에 불필요한 말을 길게 하거나, 허세를 부리며 과격한 표현을 쓰는 말은 그야말로 돈 쓰고 원망을 듣게 됩니다. 실제로 그런 분을 최근에 목격한 적이 있었지요. 


몇 년 전에 시골로 귀향한 분인데, 경제적으로 상당히 여유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월례회에 오면 식사가 끝나고 귀가하는 분들을 붙잡고 기어코 2차로 끌고 갑니다. 자기가 계산하도 큰소리를 칩니다. 처음 한두 번은 사람들이 기분 좋게 따라갔습니다. 저도 그랬지요. 세상 공짜가 없다고 굳게 믿고는 있지만 당장 누가 술이나 식사를 사준다는 것은 상당히 달콤한 유혹이었습니다. 그렇게 한두 번 따라가 보니 그 자리가 참 불편하였습니다. 2차 맥주와 안주를 사다 놓고 자신의 자랑만 주구장창 늘어놓습니다. 다들 눈쌀을 찌푸렸지요. 저도 불쾌하더군요. 재산 자랑, 동생 승진, 자녀들 성공 이야기 등등 한참이나 늘어놓다가 "자! 한 잔 합시다."라고 큰소리로 술을 마실 것을 강요합니다. 그리고 또 자신 이야기를 죽 늘어놓습니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비가 좀 오던 날 저녁에 술 생각이 좀 났던 모양입니다. 저에게도 초저녁에 전화가 왔지만 그땐 독서토론회 중이라 전화 온 것도 몰랐지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화를 돌렸는데 아무도 응하지 않더랍니다. 저도 독서토론회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전화를 걸어 '죄송하다. 독서토론회 하느라고 전화를 못 받았아요.'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그분께서 자신이 누군가와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싶은데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거나, 전화를 아예 받지 않는다고 하네요. 저도 솔직히 그분과 밤늦게 마주 앉아 술을 마실 기분도 아니었지요. 그래서 나이가 들어 인색한 이미지도 절대로 좋지 않지만, 그에 못지 않게 조심해야 할 것은 '돈을 쓰면서 허세를 부리거나 자기 자랑을 지나치게 하여 함께 자리한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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