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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l 19. 2023

같은 값이면 좋은 말로 하세요

저녁 무렵 집에서 나와 아파트 1층 현관을 나섭니다. 현관 정문 앞에서 SUV 차량 한 대가 서 있고 젊은이 두 명이 뭔가 짐을 열심히 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 한 사람이 제게 다가와 인사를 건넵니다. 낯은 익은데 누군지 금방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침에 인사 드린 11층입니다."

"아하, 안녕하세요. 지금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예, 집사람이 오늘 오후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침에 병원에 진찰간다고 갔는데, 갑자기 출산하였습니다."

"아이고 그랬군요. 진짜 축하드립니다. 산모는 어떻습니까? 건강하지요. 아이는 요?"

"예 집사람은 출산 후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고, 아들도 건강합니다. 걱정해 주신 덕분에 아이와 엄마 모두 건강하여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병원에 잘 다녀오세요."


애기 아빠는 싱글벙글 매우 행복한 표정을 짓습니다. 곁에 있는 남성은 아마도 형제 같습니다. 오늘 아침 아내 출근길 태워주려고 제가 먼저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그때 이 부부가 인사를 하더군요. 임산부의 배가 유난히 커서 걱정이 되기도 했지요. 이제 갓 걷기 시작한 아들은 아빠가 안고, 애기 엄마는 만삭이 되어 조금은 불편한 자세로 서 있었는데, 아이가 거실을 마구 뛰어다녀 아래층 저희 집에 피해를 드려 정말 죄송하다면서 연신 공손하게 인사를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전혀 아닙니다. 우리집에서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한참 자랄 때 당연히 그렇지요. 지금 보이 이 아이가 뛰어다닌다고 해도 아래층에 소리가 날 것 같지 않네요. 지금 병원에 가시는 것 같은데, 산모가 조심 조심해서 잘 다녀오세요. 저희 집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이 순산하길 빕니다. 요즘같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시대에 정말 대단한 일 하시는 겁니다. 건강, 건강한 아이 나오길 빌게요."


"우리 부부 진짜 감사합니다. 평소에도 아이를 귀여워해 주시고, 집사람의 안전을 늘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병원 진찰 차 갔다와야 하는데. 이렇게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진짜 감사합니다."


그렇게 헤어졌거든요. 제가 현직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노후 세대 삶을 살아가며 여러 가지를 결심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주위 사람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친절하고 부드럽게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을 건네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실천하고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지요. 같은 값이면 좋은 말을 네기로 했습니다. 나이 진짜 많으신 분들 짐을 들어주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차를 태워드리기도 했습니다. 뭔가 보답을 바라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냥 그렇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잘 해드리면 결국 그것이 저에게도 몇 배로 큰 복으로 돌아오더군요. 그게 삶의 순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침에 이 부부와 좋은 이야기를 나눈 덕에 산모가 건강하게 아이를 낳은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저 젊은 부부가 둘째 아이를 순산했으니 앞으로 그 가족에 더욱 큰 행복이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양가 부모께도 큰 선물이겠지요. 나아가 저출산 시대에 우리 사회에도 큰 기여를 하는 것이지요. 이런 젊은 부부는 나라나 지자체에서 많이 챙겨주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말 한 마디를 해도 살갑고 친절하게 하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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