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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l 25. 2023

은퇴 후 행복한 삶을 보내려면

퇴직해서 본격적인 노년세대의 삶을 살아보니 우선 시간적인 자유가 주어집니다. 아침에 눈을 떠도 어디에 매이지 않고 그냥 편안하게 부엌으로 가서 시원한 물을 한 잔 마시며 아파트 거실 너머 산과 바다를 바라봅니다. 아이들의 방을 하나 하나 확인합니다. 물론 우리 자식이지만 일일이 노크를 해야 하겠지요. 커프 포트에 물을 가득 부어 끓이면서 그렇게 하루를 넉넉하게 시작합니다. 누가 오라는 사람도 없고 어디 오라는 곳도 없지만 왠지 오늘 하루도 즐거운 일이 많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생깁니다. 사람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제 삶을 일반화시키는 것은 무리겠지요. 그래서 제가 살아가는 삶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갈까 해요.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퇴직했다고 해서 노인정으로 가는 것은 좀 그렇지요. 대신 노인정에 가끔 들러 고스톱으로 하루를 보내는 진짜 나이가 많으신 분들 드시라고 음료수나 먹거리를 내놓으면 그분들도 매우 행복해 하고 저도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파트 노인정은 시골의 마을회관과 분위기가 조금 다릅니다. 시골 마을회관은 친척이 대부분이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오랜 세월 같은 공간에서 얼굴을 보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도시와는 다르게 아주 밀접합니다. 흔히 말해 이웃 집에 숟가락, 젓가락이 몇 개 있는가도 알 정도이지요. 도시 아파트는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남의 집 사정까지 알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하루 일과를 빡빡하게 짤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아침에 일어나 하고픈 일들을 메모해 두었다가 편안하게 처리하면 됩니다. 현직 때처럼 하루 일과가 짜여 돌아가는 것이 아니지요. 그리고 어느 곳인가 조직 구성원으로 책임과 의무를 반드시 해야하는 것은 아니고요. 물론 퇴직했다고 해도 가정 내에서 또 다른 의무는 있게 마련이지요. 저 같은 경우는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습니다. 너무 난해한 책은 오히려 스트레스입니다. 지금 이 나이에 무슨 깊이 있는 학문을 연구할 것도 아니고, 그냥 수필 같은 말랑말랑한 책을 주로 읽습니다. 책을 읽다가 허공을 한번 보고 생각에 잠기기도 합니다. 책 진도가 잘 안나가면 새벽에 현관 밖으로 나가 조금 걷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른 시간에 만나는 아파트 주민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면 저도 그분도 행복해집니다. 


은퇴 후 행복하려면 무엇보다 경제적 여유가 매우 중요하지요. 너무 쪼들리면 삶이 그냥 고달펴집니다. 사람들이 노후에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이라고 합니다. 건강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퇴직하고 지인들을 만나 보니 꼭 그런 것일까 의문도 생깁니다. 건강한데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의 삶도 고달프긴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하여 일자리라도 있으면 그래도 어느 정도 노후에 버틸 수 있는데, 현실은 냉정합니다. 그래서 오랜 기간 월급쟁이 생활하여 연금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노후 경제 문제는 웬만하면 해결되는 것 같습니다. 경제적 여유, 건강에 인간 관계가 매우 중요하더군요. 좀더 욕심내자면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소일거리가 함께 있으면 노후는 충분히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듯합니다. 


위에서 말한 것은 노후 세대의 인프라 즉 하드웨어적 측면으로 보입니다.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노후에 어떤 마음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말해 볼까요. 먼저 베풀어야 합니다. 남에게 무슨 '대접'을 받겠다는 생각은 아예 접어야 합니다. 나이 많은 사람을 아무런 조건 없이 대접할 사람은 세상에 드뭅니다.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나이 든 사람이 젊은 또는 나이가 적은 세대에게 베풀지 않고 그저 말만 하면 대접은커녕 오히려 무시당하기 십상이지요. 그래서 내가 먼저 베풀겠다는 마음 가짐이 중요하지요. 


그리고 꼰대짓은 절대 금물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고리타분한 예의범절을 강조하다간 구시대 퇴물이라도 옆에 오지도 않습니다. 젊은 세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정색을 해서 한 마디 하겠노라 마음먹는 순간부터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지요. 지금은 시대가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그래서 굳이 젊은 세대들과 억지로 만날 생각보다는 같은 연배의 또래들과 어울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모임에선 나이에 매이진 않지요. 저 같은 경우는 30년 넘어가는 모임이 세 개 있습니다. 20대 또는 30대에 만나 30년 그 세월을 함께 지내오면서 매달 한 번씩 만났으니 대단한 인연이지요. 친척들보다 훨씬 자주 만납니다. 가족들도 매월 한 번 만나기 쉽지 않지요. 그래서 앞으로 두고 두고 만나면서 재미있게 놀자고 선배들이 기대를 많이 합니다. 


한번은 제가 모임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이렇게 긴 세월 인연을 쌓았으니 선배님들 앞으로 최소한 10년은 마음 변하지 말고 함께 갑시다."


했더니, 어느 여자 선배님께서


"무슨 말씀을, 그래도 30년은 만나야지, 10년 가지고 되겠나?"


그분 60대 후반인데 30년 후에는 ㅎㅎㅎ. 


노후에 행복하려면 하루 종일 해도 지치지 않을 정도의 취미가 있어야 합니다. 부부가 함께 하면 좋겠지만 결국 혼자가 되는 것이 인간 세상의 숙명이니 혼자 무엇을 하든 정말 좋아하는 취미가 필요하지요. 그래서 저도 올해 1월부터 색소폰을 배우고 있습니다. 진도가 제대로 나가지 않아서 가끔 답답합니다. 열심히 노력해야 하겠지요. 


다른 사람과 모였을 때 가급적 말을 적게 해야 합니다. 하고픈 말이 있어도 말을 너무 많이 하면 주위 사람들이 질려 버립니다. 현대인들은 누구든 말을 많이 하고 싶어합니다. 하기야 현대인만 그런가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은 누구나 남들하고 말을 많이 하고 싶어하지요. 그래도 노후엔 말을 줄여야 곁에 사람들이 모입니다. 실력을 갖추고 남들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말수도 적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지요. 


마지막으로 '공감'능력입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 진정으로 공감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특히 불행한 일을 겪은 이웃이나 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요. 그런데 우리네 사람들은 의외로 남들의 고통에 둔감합니다. 공감 능력이 충분해야 남을 기꺼이 도와줄 수 있게 됩니자. 지금껏 살아오면서 노후에 행복하려면 이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참! 노후에 행복하려면 가족과의 관계도 매우 중요하더군요. 특히 오랜 기간 가부장적 사고로 가정에서 생활한 가장들이 노후에 가장 먼저 버림받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내가 가족을 위해 평생 헌신하고 고생했으니 이젠 노후에 좀 편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물론 가족을 위해 헌신한 것은 그것대로 보상을 받으면 좋겠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가족들도 각각 노력하고 헌신했다는 점을 잊으면 절대 안 됩니다. 특히 가정에서 주부들이 임금도 받지 않고 평생 일한 경우엔 그 고생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능력이 된다면 평생 고생한 부인의 임금도 제대로 쳐주어야 합니다. 그냥 가장 혼자만 헌신, 고생했다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착각일 뿐이지요. 그래서 노후에 부부, 부모자식 간에 대화는 진짜 주의해야 합니다. 상호 존중, 배려, 인정과 공감이 어우러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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