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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l 25. 2023

수능 1등급을 받아 보자 알았제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부터 집 인근에 있는 청소년 수련관 내 '학교 밖 학생 드림 센터'에서 대입 수능 국어 1:1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무료 자원봉사활동이라 강사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던가 봅니다. 벌써 5개월째입니다. 처음엔 긴 제시문을 어려워하였고, 더욱이 고전산문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일반계 고교를 자퇴하고 고졸 검정고시는 통과했는데 대입 수능 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그 학생에게도 만만찮은 일이었지요. 자퇴하기 전에 학교 생활에서 성적이 어느 정도였나 하고 물었더니 대답을 회피하더군요. 하기야 그런 질문이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참고가 될까 싶었지요.


첫날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제 125장'이 제시문에 있어서 이 텍스트에 대한 설명이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 설명을 다 듣고 나더니 갑자기 저에게 말합니다.


"역시 선생님 실력이 다르시네요. 소문을 많이 듣긴 했지만 역시 명쾌하게 설명해 주셔서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혼자 자습할 때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선생님 설명을 들으시 머리에 쏙 들어오는데요."

라고 칭찬해 주네요. 교직 35년 간 그렇게 숱하게 대학입시 문제를 반복적으로 다루었고, 온갖 난해한 문제를 풀어보긴 했지만 우리 학생들이 이 학생처럼 저에게 바로 앞에서 대면하여 직접 칭찬한 적은 없었지요. 가끔 박수로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막상 이 학생 칭찬을 들으니 기쁘기보다 영 쑥스럽더군요.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뭔가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덤덤하게 넘어가려 했지만, 칭찬보다 이 학생이 지금껏 그 누구에게서도 '용비어천가' 텍스트 설명을 들어보지 못했다는 말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1:1 학습이 벌써 5개월째 접어들었네요. 고전운문, 현대시, 고전산문을 넘어 이제 현대 산문으로 들어오면서 학생도 점차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극문학과 종합 문제 등을 마치면 대상 교재 한 권을 마무리합니다. 빠르면 8월 말, 늦어도 9월 초까지는 지금 하고 있는 문제집을 마칠까 합니다. 한 권을 어쨌든 끝내야 성취감이 생기고, 학생이 다른 교재를 보더라도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대입 문제집은 한 권을 반복, 또 반복하여 충실하게 이해하면 다른 문제집도 쉽게 풀어낼 수 있습니다. 문제집들의 유형이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학생도 미리 예습도 충실하게 하고 집에 돌아가 복습도 재미있게 하는가 봅니다. 처음엔 늘 지각하더니 요새는 10분 전부터 미리 와서 당일 공부할 것을 한번 더 훑어볼 정도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대입 시험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생긴 것 같아 제가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래서 몇 주일 전에는 수업을 마치면서 제가 말했지요.


"수능 1등급을 받아 보자. 알았제. 지금처럼 꾸준히 가면 1등급 절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00이가 지금 너무 잘 하고 있다.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


그러자 아이의 표정이 급 환해집니다. 실제 대입 시험에서 1등급을 받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뒤늦게 시작한 공부이긴 하지만 학생의 학습에 대한 집중도가 매우 높고, 무엇보다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는 것이 수능 1등급 목표 달성을 가능하게 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설령 1등급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학생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목표의식을 강조하면 그래도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학교를 벗어나서 자칫 방황할 수 있는 학생의 입장에서 스스로 학습에 뛰어들어 자신의 인생 목표를 설정하고 노력을 쏟아붓는다면 대학 입시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에 확고한 목표 설정, 노력 투입 등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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