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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l 26. 2023

야~야 냉장고 위에 한번 봐라

친정오빠가 여동생 부부 싸움 해결하는 방법

오늘은 심야에 유난히 에피소드가 많이 생각나네요. 여기에 기록하지 않으면 잊어버릴까 살짝 메모하듯 남깁니다. 오래 전에 우리집 이사하고 며칠 뒤에 지인 부부가 우리집에 찾아왔습니다. 지인 부부는 원앙처럼 금실이 좋다고 소문났을 정도로 늘 꼭 붙어 다닙니다. 그날도 우리 부부 앞에서 유난히 친한 모습을 보입니다. 대화도 서로 존중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흔히 쇼윈도우 부부라 해서 남들 앞에서 친한 척하는 그런 부부가 아니라 진짜 서로 아껴주는 사람들이었지요. 늘 여행도 함께 다니고 맛난 음식도 함께 먹고 그랬지요. 그런데 우리집에 이사 축하한다고 와선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다가 당신들의 부부싸움  이야기를 전해주어 황당했습니다. 


부부가 살다 보면 부부싸움이야 으레 있는 것이지요. 잉꼬부부라고 소문났다고 해서 부부싸움이 없을 리야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그 부부가 다투었다니 그건 상당히 의외였지요. 사소한 말다툼이 조금은 심각하게 되어 친정 오빠까지 왔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친정 오빠가 부부싸움을 말리고 서로 다투지 않게 달래야 할 텐데, 아니면 여동생 편을 들어야 할 것을 오히려 여동생을 일방적으로 나무랐던 모양입니다. 물론 세게 말한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여동생의 남편 즉, 매제에겐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시종일관 여동생의 허물만 말하더랍니다.  그래서 여동생 입장에선 친정 오빠를 부르지 않은 것만 못하게 되었지요. 그 순간 울화통이 터질 만큼 화가 진짜 나더랍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자신을 이뻐해 주고 잘 대해 준 오빠에게 대들기도 뭣하고. 그냥 친정 오빠가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지요. 그래서 남편과 다투는 것은 깡그리 잊고 친정 오빠를 밀어내다시피 강제도 집에서 나가게 했지요. 친정 오빠도 못 이긴 척 그렇게 여동생 집을 나섰습니다. 


부부싸움도 그렇게 대충 끝나고 가만히 생각하니 친정 오빠가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하고 원망스러웠지요. 남편에 대한 원망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오빠에 대한 미움이 한꺼번에 밀려오더랍니다. 도대체 이런 경우는 뭐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낮에 친정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업무 때문에 오빠가 전화를 조금 늦게 받았는가 봅니다. 그래서 오빠가 전화를 받자마자 마구 쏘아댔습니다. 평소 같으면 근황부터 안부 인사까지 두루두루 한 다음에 본론이 들어가는데, 이 날만큼은 그렇게 할 정신적 여유가 없었지요. 그렇다고 둘 다 50대 나이이니 어린 시절처럼 함부로 말을 마구 할 수는 없지요. 그런데도 서운함과 화가 덜 풀린 탓에 불만을 털어놓게 되었지요. 


"오빠. 아니 어떻게 그렇게 하고 가는데. 진짜 오빠한테 서운하고 화가 나고 그래. 김서방이 잘못 했는데, 왜 나만 일방적으로 잘못 한 것처럼 이야기를 그렇게 해놓고 가면 우짜는데? ~"


친정 오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여동생의 일방적인 불만을 가만히 들어주더랍니다. 이분도 그렇게 일방적으로 친정 오빠에게 마구 퍼붓긴 했지만, 통화 시간이 늘어져도 오빠가 반응을 일절 하지 않자 힘이 빠지더랍니다. 그리고 왜 우리집 일을 가지고 친정 오빠까지 오게 해서 아무 죄도 없는 오빠에게 이렇게 퍼붓고 있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가더랍니다. 그래서 여동생 이분도 할 말이 없어지고 나중엔 미안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친정 오빠가 여동생을 질책한 적이 거의 없었지요. 늘 살갑게 대하면서 세상에서 제일 귀한 여동생이라며 그렇게나 잘 해준 친정 오빠였지요. 그런데 부부 싸움은 내가 해놓고 애먼 친정 오빠 그리 착한 우리 오빠에게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친정 오빠가 우리 집에 와서 부부 싸움을 말리려 하지 않고 내 허물만 말했을 뿐이지, 그렇다고 그리 심하게 말한 것도 아닌데 내가 하룻밤이 지나도 진정하지 못할 만큼 오빠가 심한 말도 하지 않았는데 바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놓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퍼붓다니 등등. 


그 짧은 순간에 별의별 생각이 다 지나가더랍니다. 그래서 전화를 내려놓으려고, 

"오빠 가만히 생각하니 내가 미안하네. 어릴 때부터 오빠가 단 한번도 나 한테 험한 소리 하지 않았는데, 괜히 내가 흥분해서 일방적으로 이렇게 말하고 나니 미안키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고 그렇네. 오빠 미안해요. 또 어제 김서방하고 싸운 것도 내 잘못이 많은 것 같애."


라고 했더니, 오빠는 그래도 말이 없이 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딱 한 마디 했지요. 


"야~야, 니도 많이 서운하재 그케도 우짜겠노. 거~서 니 핀을 들 수는 없는 거 아이가. 김서방처럼 착한 사람 어딨노. 니 성질 내가 잘 아는데. 그건 그렇고 냉장고 위에 한번 봐라. 잘 살거래이. 전화 끊는데이."


그래서 전화를 끊고 냅다 부엌으로 달려가 냉장고 위에 손을 쭉 뻗었습니다. 하얀 봉투가 두툼하니 손에 잡힙니다. 손끝으로 느끼기에도 상당히 큰 금액으로 보입니다. 



갑자기 너무 고마운 마음이 생겨, 다시 전화해서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도저히 전화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냉장고에 기대 가만히 생각합니다. 지금껏 그들 부부에게 큰소리 한번 하지 않은 친정오빠입니다. 그리고 남편 김서방은 피붙이 이상으로 귀하게 대합니다. 그래서 친정오빠와 남편은 결혼 때부터 그 흔한 언쟁도 없었지요. 둘이 만나면 그렇게 친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보기엔 남편 김서방에게 부족한 것이 진짜 많은 것 같은데도 친정 오빠가 김서방에게 불만을 털어놓을 법한데 말입니다. 그래서 남편 김서방도 자신의 친정 오빠에게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대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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