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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l 28. 2023

"야~가, 니 며느리가"

어제 낮에 지인 몇 사람과 점심 식사를 하는 도중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여자 선배님 한 분께서 자신의 시집살이 이야기를 전해주었지요. 본인이 오랜 기간 교직에 있다가 퇴직한 분이라 자신의 지난 날 삶에 대해 불만도 없이 여러 가지 취미 활동을 하면서 편안하게 살고 있다고 먼저 소개하더군요. 다른 분께서 참으로 힘든 시집생활한 것을 듣고 나서 이분이 자신의 사정을 전해 주었습니다.


먼저 가혹한 시집살이를 이야기를 전해준 사람은 갓 70대가 되신 분입니다. 결혼식 후 그날부터 바로 그 많은 시집식구들 밥을 하기 시작했답니다. 심지어 자영업을 하던 남편 분이 손님을 만나기 위해 외출하던 날도 공장 직원들 삼시 세끼 식사를 모조리 준비해서 가져갔답니다. 그리고 집에 오면 시댁 식구들이 모두 자신만을 보고 있더라면서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가혹한 날들이었다고 하셨지요.


그렇다고 시어머니를 비롯한 시댁 식구들이 갓 시집 온 며느리에게 살갑게 대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유복한 집에서 성장하여 세상살이 어려움을 전혀 모르고 귀하게 자란 새댁 입장에서 정말 기가 찬 현실이었답니다. 남편 분께서 결혼 전에 집요하게 프로포즈하였고, 성실한 모습에 반했습니다. 남자 하나만 보고 결혼하였지만해도 해도 너무한 신혼 시절이었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어찌 어찌 견뎌냈습니다. 이젠 당신께서 70대가 되어 살아보니 그 시절이 ~, 손아래 동서에게 말 한 마디 못한 순간을 떠올리기도 하고. 지금이야 남편 분과 좋은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그 옛날 일을 추억 삼아 지내지만 그래도 가슴 한 켠에는 자기처럼 유복한 친정에서 자라 그렇게 가혹한 시집살이 한 사람이 있을까 하는 서운함이 많답니다.


그 여자 선배님의 가혹한 신혼생활에 이어 오늘 소개하는 이분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자신은 시어머니가 정말 잘 해주셨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시어머니께서 잘해 주신 이유 중의 하나가 이 선배님께서 결혼하자마자 월급을 통째로 시어머니께 드렸던 것 때문인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어엿한 기업 사원이고 이 선배님은 교직에 있었으니, 두 사람의 봉급을 합치면 상당한 금액이었지요. 그 이야기를 듣던 다른 분들이


"그집 시어머니는 살림할 기분이 났겠다. 며느리가 월급을 통째로 맡기면서 '어머니 마음껏 쓰세요.'라고 했으니.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 같아."

라고 이구동성으로 동의합니다. 합석한 남자 선배님들이야 별 말이 없으면서도 표정으로 동의 의사를 보냅니다. 그렇게 신혼 초부터 아들과 며느리 월급을 통째로 드렸더니 시어머니기께서 우리 며느리 최고라고 집안 곳곳에 자랑을 하고 다녔답니다. 그래서 이분은 신혼생활부터 시어머니의 엄청난 사랑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지냈답니다. 시어머니가 아침 식사부터 삼시 세 끼 모두 준비하고 며느리는 옆에서 보조하는 상황이었지요.


시댁 집안 사람들이 많아서 며느리들이 모여 함께 음식을 할 때 보니까 기가 찬 장면이 있더랍니다. 다같이 음식을 나눠먹고 앉았는데, 바로 시동생을 비롯하여 사촌 시동생들이 자기 부인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버리더랍니다.  이분은 며느리라 그냥 자리에 앉아 있는데, 하도 기가 차서 그냥 있었지만 그후 다시 모인 자리에서 시동생들이 또 그렇게 하자 한 마디했답니다.


"전부 어디로 가는데예? 왜 저만 쏙 빼놓고 다 갔뿌만 우야는데예? 저 혼자 하라카는 겁니꺼? 그래는 못 해예. 다 이리 오이소. 그라마 안 되예. 내 마누라 귀한 줄 알만 남의 마누라도 귀한 법 아입니꺼? 이런 경우가 어딨습니꺼? "


그일이 있고 나서는 동서들이 음식을 함께 설거지하게 되었답니다. 이분이 지금 생각해도 속이 시원하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시댁 집안 식구들의 시샘과 험담이었습니다. 흔히 뒷담화라고 하지요. 시댁 집안 사람들, 특히 친동서를 비롯한 사촌동서 그리고 시누이들이 명절날이면 부엌에서 은근히 괴롭히거나 아니면 자신들끼리 있을 때 심한 험담을 했답니다. 그런데 이분도 만만찮은 성격이라 그때마다 확실하게 정리했다면서 말하더군요. 자신이 할 말이 있을 때 절대 참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번은 집안 식구들 모두 모여 있는데, 저를 험담한 사람이 오데예. 그리고 그 사람이 제 없을 때 '선생질 한다고 집안 일은 전혀 안 하고 엉망이다'라고 험담했던 것이 기억나서 사람들 앞에서 바로 쏘아부쳤지요. 저 그렇게 하는  거 봤어예? 내 없는 자리에서 그렇게 근거없는 말을 지어내면 가마이 안 있을 낍니더. 아무리 시누이라고 해도 없는 말 함부러 지어내면 안 되예. 알았지요. "


그런 일이 두세 차례 있고 나서는 시댁 식구들이 함부로 이분을 험담하거나 뒷담화했다는 말이 사라졌답니다. 물론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자기들끼리 모여서는 별의별 이야기가 있었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집안 식구들 모인 자리에서 이분을 함부로 대하는 일이 없었답니다. 무엇보다 시어머니가 딱 버티고 있어서 시댁 식구들이 이분께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시누이나 동서들은 그래도 연배가 비슷하니 어떻게 자신의 의사를 확고하게 밝힐 수 있었지만 윗어른은 그럴 수 없었지요. 어느 날 시댁 식구들이 가득 모여 음식을 준비하면서 떠들썩했습니다. 이분도 스스로 요리를 잘 못하지만 그래도 힘을 보태겠다는 생각에 앞치마를 두르고 제 나름 열심히 일했답니다. 그런데 부엌에 모여 한참 음식을 하고 있는데, 시삼촌이 꼭 자기만 콕 찍어 따로 부르더랍니다. 방이 여러 개 있었는데, 그중 가장 구석진 방으로 끌고 가서 대뜸 꿇어앉으라고 명령하더랍니다. 이유도 모르고 말이지요. 자신은 시삼촌을 만날 일도 별로 없고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물었답니다. 그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시삼촌 볼 때마다 큰절을 왜 안 하느냐는 겁니다.



그렇게 30분 가까이 꿇어 앉아 참으로 황당무계한 훈계를 들으면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잘못은 없다고 항변했답니다. 말이 30분이지만 안 그래도 허약한 몸에 그렇게 꿇어 앉아 있으니까 나중엔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쥐가 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긴 시간 꿇어앉아 훈계를 들은 단 한 번도 경험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시삼촌의 훈계를 일방적으로 듣고 있는데, 시어머니께서 방문을 쾅!하고 열어제칩니다. 그리고 며느리가, 허약한 며느리가 꿇어앉아 있는 것을 보고 눈이 확 돌아갑니다. 당장 시삼촌 멱살을 잡고 끌고 나갑니다. 시어머니 당신께서 시집올 때 조그만 아이였던 시삼촌을 그야말로 업어 키웠으니 그렇게 시동생 멱살을 잡아 끌고 나갈 수 있었겠지요. 그리고 노발대발하며,


"니가 뭔데 야~를 이래 꿇어 안차 났노? 야~가! 니 며느리가. 니가 와 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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