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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l 28. 2023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

술을 함께 마시며 병권을 내놓다.

       

송 왕조는 태조 조광윤 이래로 문치주의를 표방하였다. 조광윤 하면 ‘배주석병권’이 유명하다. 술 한 잔에 병권을 내놓았다는 뜻이다. 송나라 초대 황제의 자리에 올랐던 조광윤은 내정의 안정을 어느 정도 이룬 후 본격적으로 천하 통일 전쟁에 들어가게 된다. 당나라 멸망 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숱한 국가들을 차례로 정벌하여, 중국 북부지역에 강력한 송나라의 기틀을 마련한다. 비록 송나라를 개국하고 넓은 지역의 영토를 확보하여 본격적인 통치를 시작하였지만, 아울러 통치 과정에서 장애물이 등장하였다. 바로 강력한 지방 절도사의 군사력과 개국 공신들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개국이나 창업에 성공하고 나면 공신들에 대한 처리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소유한 영웅이라 해도, 그 또한 사람이라 혼자 무언가를 도모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주위에 사람을 모아 일정 세력을 확보한 다음에 천하를 도모하는 것이 정해진 수순이다. 그 과정에서 숱한 사람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새로운 나라를 세워 창업에 성공하면 곧장 수성의 어려움이 닥친다. 창업도 어렵지만 수성은 더욱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중국 진시황이 최초로 천하 통일을 이룩했지만 우둔한 2세 황제 호해 때문에, 대제국 진나라가 15년 만에 급격하게 붕괴하여 망한 것을 보면 수성(守城)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개국 초에 공신(功臣)을 어떻게 대우하거나 처리하는가에 따라 그 국가의 향후 진로가 결정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역사적 사례를 보면 대부분 공신을 제거해 버려 반란의 싹을 없애려 하였다. 그래서 권력자들이 강력한 무력을 행사하여 강압적으로 공신들의 사병(私兵)을 해산시켜 저항의 여지를 제거한다. 공신들의 약점을 집중 공격하거나 역모 등의 권모술수와 잔인한 고문을 가해 공신들을 처단해 버리기도 한다. 그에 따른 반발이 생기면서 개국 초기엔 공신을 처리하면서 숱한 혼란과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명나라 주원장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실로 엄청난 수의 관리를 처형하고 숙청하였다. 명나라 주원장은 1368년부터 30년간 황제의 자리에 있었다. 이 기간에 주원장은 무려 10만여 명의 공신, 군인, 대신, 관료를 숙청했다. 주원장은 어린 시절 지독히도 궁핍한 삶을 살았다. 원나라 치하에서 목숨 같은 볍씨를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관리들이 빼앗아 가자, 아버지는 자살하고 어머니는 병으로 죽었다. 이런 일들로 인해 주원장은 세상에 대한 극단적인 분노심을 갖게 된다. 훗날 명나라를 세우고 황제에 올랐을 때, 수많은 사람을 학살해 버린다.           


그런데 살벌한 전장에서 주원장을 평생 지켜준 개국공신, 혈육, 고향 친구 등도 희생되었다. 특히 상소문에 중을 뜻하는 ‘중(僧)’, 대머리를 빗대는 ‘광(光)’, ‘도적(盜賊)’이 들어있다는 이유로 학자, 사간, 대신들이 죽어나갔던 일도 비일비재하였다. 이러한 문자옥(文子獄)은 모두 주원장의 출신 콤플렉스에서 초래되었다. 그는 자신의 외모나 황각사 시절 탁발승으로 연명했던 것, 도적 무리인 홍건적에 가입했던 일을 떠올리게 하는 그 어떤 문장과 글자도 용납지 않았다. 너무나 추한 외모 때문에 자신의 초상화를 그린 사람들도 죽였다니 외모 콤플렉스도 어지간히 심했던 모양이다.    


       

어쨌든 황제의 권력 독점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된다면 그 어떤 사람도 주원장의 칼날을 피해갈 수 없었다. 한고조 유방도 마찬가지이다. 초한 쟁패에서 항우를 격파하고  대제국 한나라의 고조가 되고 나서 자신을 도운 수많은 공신들을 제거하였다. 그중 숱한 전투에서 군대를 이끌어 유방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한신이 죽어갈 때 토사구팽이라 한탄하였던 일이 유명하다 『사기』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보면 아래와 같은 한신의 탄식이 나온다.

          

“과연 사람들의 말과 같도다. 교활한 토끼가 죽고 나면 좋은 사냥개도 삶아 죽이고, 높이 나는 새가 다 잡히고 나면 좋은 활도 창고에 들어가며, 적국이 타파되면 함께 도모한 신하도 죽인다. 천하가 평정되었으니 나도 마땅히 팽(烹)당하겠지.”     


 ‘토끼가 죽으니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것인데, 한고조 유방이 초패왕 항우를 누르고 천하 제패의 목적을 달성하니 사냥개의 역할을 한 한신 자신이 그 희생이 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어디 한신뿐이랴!


그런데 송나라 태조 조광윤은 한고조나 주원장과 공신을 처리하는 방식이 달랐다. 그가 쓴 방법은 매우 현명하였다. 어느 날 송나라 건국과 조광윤 자신의 황제 등극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 조보(趙普), 석수신(石守信) 등 공신들과 절도사를 불러 모아 연회를 열었다. 당일 연회에 참여한 신하들은 조광윤으로부터 자신들의 공적에 대한 칭찬과 보답을 기대했을 터. 그런데 조광윤이 연회에 참석한 공신들에게 차례로 술을 권하며 말했다.          

 “짐이 오늘날 이런 자리에 오른 것이 모두 경들의 공 덕분이오. 짐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소. 하지만 요즘 편히 잠잘 수가 없다오. 천하의 질서를 세우고 백성들의 평안을 도모하기 군사를 일으켰던, 그 고난의 세월에 짐을 보좌하고 지켜 준 경들이야 절대로 의심하지 않소. 그런데 경들의 아래 사람들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오. 지난 날 그대들이 짐에게 반란을 권하고 짐에게 황포를 입혀 이 자리에 올린 것처럼 경들의 부하들 또한 그대들에게 반란을 권하고 황포를 입히려 하면 경들이 어떻게 거역할 수가 있겠소?”   

        

당일 연회에 참석한 공신들이 역모를 한다든가 하는 기미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어려웠던 시절 조광윤을 황제의 자리에 올릴 때 혁혁한 공을 세웠던 부하들이라 충성심이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조광윤의 우려 섞인 발언에 참석한 공신들이 변함없는 충성을 맹세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조광윤에게 도로 물었다.       

“경들이 이제 나이도 들고 했으니 지방에 내려가 좋은 집에 많은 노비들을 거느리고 호화롭게 편안하게 사는 것 또한 좋지 않겠소?”      


라고 제안했다. 그 연회가 있고 나서 절도사와 공신들은 모두 사임서를 제출하고 각자의 고향으로 떠났다. 훗날 이를 두고 술을 마시며 병권을 내놓다는 의미로 ‘배주석병권 ’이라 하였으니 세상 사람들은 조광윤의 현명하고도 탁월한 공신 처리 방식이었다. 실제로 개국 이후 공신 처리를 하면서 피비린내 나는 상황이 숱하게 전개되면서 엄청난 살육이 따랐던 사례들과 비교하면 조광윤의 이 방식은 참으로 현명하였다.   


혹자는 조광윤이 병권을 회수하면서 대신에 공신들에게 부정부패를 보증해 준 결과가 되었다고 혹평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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