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엽 Jul 31. 2023

그래도 부모는 자식 걱정이지요.

강원도 속초에서 1박 2일 만남이 있었습니다. 부산에서 속초가는 길은 참으로 험난합니다. 특히 여름 휴가철에 그길은 대형 주차장과 흡사합니다. 예전 생각으로 노포동고속버스터미널에 갔다가 출발부터 시련을 겪습니다. 몇 년 전에 속초가는 시외버스를 탔을 때는 손님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당연히 그러려니 하고 첫 차 8시 40분에 어렵게 맞춰 도착했습니다. 시외버스라서 예약도 없다고 판단한 것이 실책이었지요. 뭐든 알아보지 않고 자의적으로 판단하면 이런 낭패를 당합니다.  8시 40분 만석, 10시 3분 만석 12시엔 좌석이 몇 개 남아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12시 버스는 속초 직행이 아니라 강릉까지만 간답니다. 강릉에서 다시 표를 끊어 속초까지 가라고 하네요. 물론 속초 직행도 강릉을 경유하긴 해요. 예약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버스타고 bustago"라는 앱을 다운받아 사전예약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번에 알았지요. 사람은 이렇게 힘든 경험을 해야 지식의 폭이 넓어지는가 봅니다. ㅎㅎ.


8시 40분에 도착하려고 집에서 6시에 일어나 이것저것 준비하여 7시 쯤 출발했습니다. 집 앞에서 시내버스 508번 타고, 지하철 남포동 역에 도착한 뒤 다시 지하철로 노포동역까지 열심히 달립니다. 8시 26분 경 노포동 역에 도착한 뒤 곧장 연결된 고속버스터미널 대합실로 들어서니 그래도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만석! 만석! 이런 일이 생기네요. 할 수 없이 3시간 20분을 하릴없이 대합실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가지고 간 데일 카네기 저 <인간관계론>을 다시 복습합니다. 오랜만에 밀면도 한 그릇하고 대합실에 있는 전기 콘센트에 휴대폰 충전기를 꽂고 느긋하게 책을 읽으면서 기다렸지요. 그것도 괜찮더군요.


그렇게 기다리다 12시 버스에 올랐습니다. 중국 시안에서 오신 젊은 여성이 버스 행로를 한국어로 물어보네요. 시내 모 관광고등학교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인데, 강릉에 친구를 만나러 간답니다. 안내를 해드리고 제 좌석에 앉았습니다. 제 옆에는 동해 시로 가는 손님이 앉았네요. 그렇게 출발한 버스가 부산 출발부터 엄청난 정체를 겪습니다. 이 버스는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경주 터미널로 나가서 국도로 접어듭니다. 이곳도 정체가 굉장합니다. 포항 영덕 등을 거치면서 승객들도 운전수도 모두 지칩니다. 자포자기한 마음들이 버스 안에 마구 돌아다닙니다. 여름 휴가철엔 절대로 이 길을 가선 안 될 것 같았지요. 그런데도 승객들 그 누구도 불평불만이 없습니다. 오히려 운전기사가 수고한다고 다들 위로 말을 전합니다. 어렵게 어렵게 칠보산 휴게소에 도착했습니다. 20분간 휴식한 뒤 다시 출발하는데 여기부턴 그래도 정체 현상이 거의 없었습니다. 어쨌든 예정보다 2시간 더 걸려 속초까지 왔습니다. 원래는 점심 식사부터 함께 하려 했으나 제가 저녁 8시쯤 강원도 고성권 천진항에 있는 '소담펜션'에 도착했습니다. 펜션 시설은 훌륭했습니다. 저 때문에 저녁 식사가 늦었습니다. 배 고픈 덕에 저녁식사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모두 반갑습니다."


오히려 저에게 멀리 힘들게 오느라고 고생이 많았다고 악수를 청하는 이 사람들과 인연은 벌써 30년입니다. 1994년 전국에서 선발된 선생님들 25명 그해 7월부터 8월까지 2개월에 걸쳐 일본 홋카이도 오비히로로 파견되어 현지 연수를 한 동기생들입니다. 그때만 해도 30대 초중반이었는데, 이제 30년 세월이 흘러 60대 초중반이 되었습니다. 모두 별 탈이 없이 지금까지 무사히 지내왔습니다. 신의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두 명 외엔 모두 퇴직하였지요. 그리고 저녁 먹은 후 숙소에 모여 테라 맥주와 안주를 놓고 밤늦게까지 담소를 즐겼습니다.


주요 화제는 우리들 건강 문제와 자녀들 지원 문제였습니다. 강원도에서 전원 주택을 짓고 소나무를 키워 판매사업을 하는 착하고 순수한 김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언제든 강원도 고성에 와서 자기 집 별채에 묵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먼 길을 오는 것도 알고 보면 김 선생님의 인덕 덕분이지요. 전북 고창에서 약초와 목공을 하면서 은퇴 후 멋진 인생 2모작을 누리고 있는 박 선생님은 그 나이에도 사회인 야구를 할 만큼 건강한 몸을 갖고 있습니다. 약초에 관해 여러 가지 유익한 정보를 들려 줍니다. 이번에는 특이하게 다들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그렇게 모이면 소주가 3박스 정도는 동이 났지요. 이번에는 소주 두 병에 맥주 6병 정도로 끝났습니다. 굳이 술을 권하지도 않고 마시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가족들 근황이 많이 나옵니다.


자녀들 혼사, 자녀들 살 집 등등에 대해 각자의 집안 사정을 들려 줍니다. 증여세 한도액인 5천 만 원을 자녀에게 주려고 퇴직금을 썼다는 경우가 가장 많았습니다. 자녀들 집을 구하는데 지원한 선생님들도 꽤 많았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말이지이요. 그중 어느 선생님께서 말을 듣고 있다가 한 마디 합니다.


"아니, 우리들 퇴직금으로 왜 아이들 집을 사는데 보태요. 그러면 우리 노후는 어떻게 되는데요? 우리 평생 힘들게 모은 돈은 부부가 노후를 즐기라고 있는 돈 아닌가요. 그리고 아이들은 그 돈을 받으면 그 순간만 감사해하고 이후로는 또 다른 재산을 노린단 말입니다. 부모의 선의는 생각지도 않고 한 번 돈을 받아본 경험이 있어서 또 다른 재산을 어떻게 하면 받아 챙길까 합니다. 이젠 부모와 자식은 남이라고 냉정하게 대처해야 자식에게 버림받지 않아요. 선생님들은 세상 물정 모르니 그런 바보 같이 그러는 겁니다. 우리가 다 쓰고 죽을 때 유언하여 결국 자식들이 알아서 처리하게 해야 합니다. 더 현명하게 해야 합니다. 절대로 퇴직금을 자식에게 쓰지 않도록 하세요. 다들 아셨지요."


그런 말을 들으면서 대부분 동의하는 표정을 보입니다. 저도 그 대상 중의 하나입니다. 딸 아이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도 집사람이 우리 부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몇 년 전에 제 퇴직금을 미리 당겨 보태고 아이 저축에 대출까지 보태 겨우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해 주었지요. 그러니 저도 아까 그 선생이 말한 바보 같은 사례 중의 하나입니다. ㅎㅎ.


그 선생의 말은 분명 맞습니다. 일리 있는 말씀이라서 우리가 반박하기 어려웠지요. 그래도 제가 대꾸를 했습니다.


"선생님 말씀 분명 맞습니다. 그런데 퇴직하고 보니 우리 부부는 퇴직 연금으로 생활이 충분하더군요. 지금은 건강하여 아직은 돈이 많이 들어가지 않아서 그렇겠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진짜 돈이 많이 필요한 것은 우리 같은 노년 세대가 아니라 지금 한창 생활하는 2030들입니다. MZ세대라고 하지요. 그들이 진짜 돈이 많이 필요합니다. 우리 젊은 시절 생각해 보면 안 그렇던가요? 선생님 말씀처럼 일시 퇴직금을 딱 쥐고 있으면 저와 아내는 여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힘들 것 같아요."



그렇게 말을 하고 한 마디로 맺었습니다..


"그래도 부모는 자식 걱정해서 그렇게 아끼지 않도 보답도 바라지 않고 지원하는 것 같아요."



P.S

하룻밤 묵었던 강원고 고성은 제 젊은 날 군복무로 청춘을 바친 곳입니다. 제 고향 경상북도 달성군 논공면 위천1리 120번지에서 1982년 6월 22일 입대하여 1984년 9월 6일까지 고향을 떠나 머나먼 강원도 최전방에서 군복무를 하며 보낸 곳이라 하룻밤을 머물러도 그냥 옛생각에 접어듭니다. 지금은 율곡부대라 불리는 22사단 당시는 뇌종부대라고 했습니다. 번개와 종인데 발음 이미지가 좋지 않아 부대명을 바꿨다고 알고 있습니다. 최전방 GOP에서 휴가 출발하여 개인화기 소총 등으로 무장을 한 뒤 부식추진용 트럭에 올라 민통선 입구 위병소까지 내려와서 다시 개인화기 등을 반납하고 본격적으로 휴가를 합니다.


그렇게 도착한 속초시외버스터미널 근처 돼지국밥 집에서 먹었던 국밥 한 그릇이 눈물이 날 만큼 맛이 좋았습니다. 서울 마장동 강남고속터미널로 가는 버스 안에 간간이 헌병들이 올라 검문검색하는데, 최전방에서 내려오는 우리들은 아예 검문도 하지 않더군요. 후에 알았던 사실인데, 헌병 출신 동료의 말이 검문해 보면 최전방에서 고생 고생하다 내려오는 병사들은 단번에 알아챈답니다. 그리고 고생을 많이 하는 것을 잘 알기에 그냥 통과하는 경우가 많았다네요.


정작 휴가병들은 휴가간다고 며칠 전부터 휴가복을 그렇게나 열심히 다리고, 구두 광을 낸다고 애를 썼는데 말입니다. 아무리 씻고 광을 내도 최전방에서 내려온 병사들은 한 눈에 알아챈다니. ㅎㅎ. 강남고속터미널 도착 그리고 동대구역 근처 동부시외버스터미널 대구 끝에 있는 동부에서 달성군을 가려면 성당주차장까지 시내버를 타고 가야 합니다. 성당주차장 즉 서부시외버스 터미날에 도착하면 다시 고령이나 현풍가는 시외버를 탑니다. 그렇게 멀리 멀리 달성군 논공면 위천1동 우나리 깊은 밤에 떨어집니다. 어머니는 새벽부터 아들을 기다리고.


"야~야, 느그 부대장은 휴가를 와 이리 밤늦게 보낸다 카더노. 참 희한하대이."



작가의 이전글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