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명재상 관중(管仲) 늙은 말의 지혜를 빌려 어려움을 극복하다
삶의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커다란 가치를 지닌다. 사람은 누구나 세월이 가면 나이를 먹고 반드시 노인이 된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이 노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조금만 생각해 보다 젊은이들도 세월이 가면 당연히 노인이 될 텐데 왜 그런 시각을 가지는 것일까.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노인 경시나 홀대가 팽배하여 세대 간의 갈등도 발생하게 되는데, 오히려 노인들의 오랜 삶의 경험이나 지혜 철학을 이 사회에 공유한다면 엄청난 자산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엔 노마지지(老馬之智)에 대해 이야기헤 볼까 한다.
노마지지(老馬之智)란 ‘늙은 말의 지혜(智慧)’란 뜻으로 아무리 하찮은 사람도 각자 그 나름의 장점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노마지지(老馬之智)는 한비자(韓非子) 설림(說林)편에 나온다.
춘추 전국 시대 천하를 호령한 오패의 선두 주자 제 나라 환공(桓公:재위 B.C.685∼643) 때의 일이다. 어느 해 봄 환공은 명재상 관중(管仲)과 대부 습붕(隰朋)을 데리고 고죽국(孤竹國)을 정벌하러 나섰다. 제환공이 천하 패자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 관중, 포숙아, 습붕, 고혜 등을 들 수 있다. 그중 관중과 습붕이 환공과 함께 고죽국 정벌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고죽국 정벌이 의외로 길어지는 바람에 그 해 겨울에야 끝이 났다. 그래서 혹한 속에 지름길을 찾아 귀국하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열악한 환경에서 혹한이 몰아치고 길까지 잃었으니 그 낭패감이야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전군(全軍)이 진퇴 양난에 빠져 모두들 두려워하고 있을 때 관중이 이 상황에서 나섰다.
“늙은 말의 지혜는 쓸 만합니다.(老馬之智, 可用也.)”
관중은 부하를 시켜 늙은 말 한 마리를 풀어놓았다. 그리고 전군이 그 뒤를 따라 행군한 지 얼마 안 되어 큰길이 나타났다. 오랜 기간 전선에서 숱한 경험을 쌓았던 늙은 말의 지혜가 위험에 처한 제나라 군대를 살려낸 것이다. 실제로 중국 땅은 너무나 넓어 TV나 영화 화면에 비친 일망무제의 황량한 들판이 정말 많다. 끝없이 사막이 펼쳐지는가 하면 험한 돌자갈밭이 죽 이어져 있다. 거기에 혹한까지 몰아치면 꼼짝없이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런 절대절명의 상황에서 명재상으로 천하에 이름을 날린 관중이 늙은 말의 지혜를 떠올린 것이다.
비단 말뿐이랴? 사람도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아지면 인생의 지혜를 많이 발현하게 된다. 경험이 일천한 젊은 세대에게 노년 세대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진에 따르면 사람의 판단력은 청년기보다 노년기에 더 성숙해진다고 한다. 인간의 2대 지능 중 하나는 기억 중심의 유동지능(流動知能이고, 또하나는 경험 위주의 결정지능(結晶知能)이다. 유동지능은 연산·기억력 등 선천적인 것으로 한창 교육받는 젊은 시절에 활성화된다. 반면 결정 지능은 훈련·판단 등 후천적인 것으로 사회 경험이 풍부한 노년 시기에 강화된다. 이것이 노인들의 의사 결정이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건강하 사회가 되기 위해서 다양한 세대가 공존해야 한다. 다른 세대에 적대적으로 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늙은 말의 지혜 덕에 위기는 벗어난 제나라 군대가 다시 행군을 계속하다가 이번에는 깊은 산속에서 식수가 떨어졌다. 사람들이 산길을 가다가 갈증에 시달릴 때의 그 고통은 대부분 알 것이다. 그런데 대군을 이끌고 가는 상황에서 군 전체에 식수가 떨어졌으니 그 당혹감이야 오죽하랴! 이번엔 습붕이 나섰다.
"개미란 원래 겨울엔 산 남쪽 양지바른 곳에 집을 짓지만 여름엔 산 북쪽에 집을 짓고 삽니다. 흙이 한 치쯤 쌓인 개미집이 있으면 그 땅속 일곱 자쯤 되는 곳에 물이 있는 법입니다."
“蟻冬居山之陽,夏居山之陰,蟻壤一寸而仞 有水”
습붕이 평소에 독서를 하면서 지식을 획득했는가 또는 사람들과 대화에서 그런 지혜를 얻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평소에 누적된 삶의 지혜가 위기 상황에서 너무나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습붕의 말을 듣고 군사들이 일제히 산을 뒤졌다. 개미집을 찾은 다음 그곳을 파 내려가자 과연 샘물이 솟아났다. 그런데 이 부분은 고증이 필요할 것 같다. 과연 개미집 아래에 샘물이 반드시 있는가 하는 과학적 근거 말이다.
이런 일화에 대해 한비자(韓非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관중이 총명하고 습붕이 지혜 가득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것은 늙은 말과 개미를 스승으로 삼아 배웠다. 그러나 그렇게 현명한 그들도 그렇게 미물에게서 배우는 것을 결코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스스로 어리석지만 옛 성현의 지혜를 스승으로 삼아 배우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 아닌가.”
”以管仲之聖而隰朋之智, 至其所不知, 不難師於老馬與蟻. 不惜向老馬和螞蟻學習. 今人不知以其愚心而 師聖人之智,不亦過乎?
늙은 말의 지혜라는 말을 생각하면 노인의 지혜가 아울러 떠오르는데, 어디선가 읽은 내용을 추가해 본다.
조선시대 9대 임금인 성종(成宗) (1457~1494) 때 일이다. 어떤 사람이 일찍이 딸 하나를 낳아 길러서 시집보낸 후 노년에 늦게 아들을 하나 보게 되었다. 그런데 아직 '강보'에 싸여 있는 어린 아들을 남겨두고 노인이 죽음을 앞두게 된다. 노인이 유언을 남긴다.
"전 재산을 시집간 딸에게 모두 물려주고, 어린 아들에게는 아버지의 얼굴을 그린 족자 1개만 주라."고.
시집 간 딸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친정 재산을 모두 물려받았다. 딸은 살림살이가 여유로워졌지만 친정에 남은 어린 동생이 가여웠다. 그래서 동생을 데리고 와서 함께 살았다. 정성껏 돌보았다.
그런데 아들이 장성하게 되면서 부친의 유언의 내용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부친이 왜 그런 유언을 남겼을까 의아했다. 시집간 누나가 아니라 아들인 자신에게 유산으로 남겨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결국, 족자를 들고 '관청'에 나아가 소송을 제기하기로 하였다. 요즘 주위에서 흔히 벌어지는 형제간의 재산권 다툼 같은 저열한 그런 송사가 아니다. 아들도 누나가 자신을 정성껏 돌봐준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다. 단지 돌아가신 부친의 유언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달랑 하나 남겨 놓은 '족자'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을 판다고 해도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관청에 들어간 청원이 임금 성종에까지 도달하고, 성종이 족자를 펼쳐 보니 노인의 화상만 그려져 있다. 그리고 족자를 벽에 걸어놓고 한참이나 응시한다.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임금 성종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족자를 벽에 걸어놓고 멀리 앉아 쳐다보니 그림 속의 노인이 '손가락'으로 '아랫부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성종이 이 부분에 주목한다. 손가락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에 필시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 사람을 시켜서 그 족자 끝의 축을 쪼개 보도록 했다. 그랬더니 그 속에 '종이쪽지'가 들어 있었고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내가 전 재산을 딸에게 모두 다 준 것은, 딸에게 어린 동생을 잘 돌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아이가 자라고 나면 내 재산을 균등하게 나누도록 하라."
그래서 '성종 임금'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지"에 따라 문서를 작성하여 재산을 남매에게 균등하게 나누어 주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시 재산을 어린 아들에게 물려주었다면 누나는 재산 때문에 어린 동생을 돌보지 않고 해쳤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처럼 동생을 잘 거두어 기르지 않았을 것이다. '노인의 지혜'가 참으로 놀랍구나!"
노인의 지혜가 강보에 쌓인 아들도 살리고 재산도 온전히 유지할 수 있었다. 현대 자본주의 세상에서 인간적인 배려와 도리보다 자본 즉 '돈'이 최우선적으로 추구되어 형제 간에도 유산을 놓고 피터지는 싸움을 많이 접한다. 상가(喪家)에서 부의금을 놓고 싸우는 일들도 만만찮다. 모두 재산을 놓고 벌이는 아귀다툼이다. 시집간 딸에게 전재산을 물려 주면서 어린 아들도 지겨낼 수 있는 혜안을 보인 노인의 지혜가 대단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