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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Aug 01. 2023

그대가 어렸을 때 생각해 봐

오래 전 일입니다. 현직에 있을 때 어느 후배가 하소연인지 신세 타령인지 저에게 긴 시간 털어놓았습니다. 제 혼자 연구실에서 수업이 적은 날은 책을 좀 읽으려고 아침 출근할 때부터 마음 먹었는데 허사가 되던 날이지요.  그 후배가 말하는 요지는 이렇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말을 듣지 않아요. 공부하라고 아무리 말해도 책을 펴질 않습니다. 저도 명색이 대학 4년 동안 그것도 국립대학에서 4년 동안 장학금을 받고 이곳에 온 제 나름 에리트라 여겼는데, 아이들이 도무지 제 말을 따라주지 않습니다. 학교 생활 자세도 그래요. 제가 학교 다닐 때 모범생이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여기 아이들 수준이 너무 낮아서 도저히 지도할 수가 없어요. 머리가 좋지 않으면 몸이라도 부지런해야 하는데, 너무나 게을러요. 어쩌면 좋습니까?~"


제가 그 후배의 넋두리를 길게 들었습니다. 여느 학부모의 하소연과 내용이 참으로 흡사합니다. 집에서 아무리 혼을 내도 아이가 말을 전혀 듣지 않고 비뚤어진다는 것이지요. 그런 하소연을  한 번도 아니고 자꾸 반복해서 들으면 저도 사람이라 서서히 지쳐가고 나중에는 짜증도 나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참고 들어주지요. 그래도 세상에 누군가 하고픈 말을 하는데 들어주는 사람이 저 하나라도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에서 말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학부모와 선생님들이 아이를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고 누군가에게 하소연 또는 넋두리를 늘어 놓을 때 당사자 학생은 어떤 심정일까요. 그 아이가 진정으로 학부모와 선생의 생각을 존중해 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 볼게요.


"아이 보고 '공부해'라고 하면 절대 공부하지 않습니다. 설령 누군가의 공부하란 말을 듣고 책상에 앉으면 기꺼이 공부하지 않고 살살 눈치보면서 시간만 때웁니다. 그냥 자리에만 앉아 있고 공부에서 마음이 떠났지요. 심지어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았는데, 엄마가 '공부해라'고 하면 그냥 책상에서 내려와 버립니다. 참 희한하지요. 학생 자신도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고, 하려고 마음 먹었는데도 누군가 공부하란 말을 면 그 순간부터 공부에 대한 거부 반응이 생긴단 말입니다. 학부형 대상 강의를 하다가 이런 예를 들면 누군가가 질문합니다.


"그러면 공부 안 하고 있으면 그냥 보고 있어야 할까요? 속에서 천불이 나는데 말입니다."


사실 저도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공부를 강요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공부가 절실한 것은 학생 본인이 아니고 어쩌면 엄마와 선생님뿐입니다. 정작 학생 본인은 공부에 대한 절박성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공부하라고 하면 그냥 공부하기가 싫어진다는 것이지요. 학원 같은 사교육에 집중하여 성적을 높이려고 하지만 학생에게 엄청난 부담이 됩니다. 학원도 여러 군데를 뺑뺑이 돌리면 아이가 자라서 훗날 어떻게 될지 한번 고민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공부를 잘 하면 모두 잘 살까도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학생이나 부모의 꿈인 것은 분명하지만 강제로 공부시켜서는 불가능합니다. 학생 본인이 재미 있어야 공부를 하게 됩니다. 본인의 자각에 따른 공부가 중요하지요.


그래서 최상위 성적을 올리는 학생들이 흔히 그런 말 하지요.


"우리 부모님은 단 한번도 공부하라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


사람들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것 같습니다. 최상위층 아이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 사실에 가깝습니다.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주어야지 입으로 '공부해'라는 말은 그야말로 독(毒)에 가깝습니다. 현명한 엄마들은 아이가 어릴 때부터 도서관에 많이 데려갑니다. 일단 도서관에 자주 가서 익숙해지고 아이가 홀로 도서관에 가고 싶어하면 공부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학교 현장에 있을 때 보면 어린 시절부터 사교육을 받아 초중학교까지 상위 그룹에 편성된 학생들이 고교에 와서도 그대로 상위 그릅에 자리잡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교육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공교육의 부족한 점을 상호보완하는 긍정적 순기능이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아이가 고교 2학년에 와서 갑자기 대학수학능력 모의고사에서 정말 예상외의 뛰어난 성적을 올리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그런 학생들을 만나 면담을 해보면 백발백중 어린 시절 엄마와 도서관에 자주 가서 독서를 풍부하게 했다고 답합니다. 독서를 한다고 모두 최우수 성적을 올린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뜻밖의 최고 성적을 그것고 고교 1학년 말이나 2학년 초에 갑자기 올리는 아이들은 대부분 독서 경험이 풍부합니다. 스스로 학습 능력을 키운 것이지요.


특히 국어과목에서 1등급을 올리는 학생들은 그런 경향이 훨씬 강합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마음껏 찾아 읽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입니다. 학생 스스로 책을 찾아갑니다. 그렇게 해야 점차 흥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엉뚱한 이야기로 좀 가버렸네요. 아까 말한 교직 후배에게 이렇게 충고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대 말처럼 우리 아이들이 공부에 소홀하고 선생님들의 지도 방식을 제대로 따르지 않는 경우도 있어. 그런데 자네도 어렸을 때 생각해 봐. 당시 선생님들의 지시나 교육 방식이 다 마음에 들던가. 우리도 얼마나 불만이 많았던가. 그리고 참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은 에리트라고 하더라도 저 아이들을 좀더 좋게 평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가 아이들 수준 낮다고 말할 때 한번이라도 아이들하고 나란히 앉아 모의고사를 함께 치러보게 과연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난 내 과목도 만 점을 받기 어렵다네, 그런데 아이들은 만 점을 심심찮게 받지 않던가. 아이들 이쁘게 봐 줘. 그러면 달라질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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