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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Aug 06. 2023

샘예 가지 마이소

부둣가에서 전근가시는 선생님 보내지 않으려 아이들이 줄을 놓지 않고

일요일 오후 색소폰 학원에 들렀습니다. 몇 개월이 지났지만 저만 유난히 진도가 나가지 않아 사람들이 안쓰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지도하시는 선생님이 오랜만에 오셔서 1:1로 집중 지도해주십니다. 몇 번이나 답답해 하십니다. 저도 답답합니다. 왜 이리 악기 연주가 잘 안 될까요. 사람들이 격려 박수를 크게 쳐 주지만 저도 잘 안 되네요. 옆에서 테너 색소폰으로 풍성한 음량을 선보이는 분의 노래를 들으니 참으로 부럽기만 합니다. 


"진짜 잘 하시네요. 저는 언제 그런 연주 실력을 갖출 수 있을까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러자 강사님께서


"아이고, 욕심만 목까지 가득 찼네예. 저분은 색소폰 연주하신 지 13년 째입니다. 인자 몇 개월 하신 분이 무슨 욕심이 그리 많습니꺼. 하기야 남들 잘 하는 것 보고 부러워하다 보면 욕심이 나서 연습을 하게 되겠네예. 그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심더. 어쨌든 기초를 튼튼히 하시고 연습 또 연습하면 저분처럼 아주 능숙한 연주자가 될 낍니더. 힘 내이소."


음정, 박자, 텅잉 등 연주 기초가 전혀 안 되어 있다고 혹평을 받았습니다. 소리가 나는 것이 어디냐고 스스로 대견해 했는데, 프로 선생님께서 이렇게 사정없이 냉정하게 평가하니 정말 쑥스럽습니다. 그래도 기죽지 않고 열심히 배웠습니다. 이론은 어떻게든 이해가 되는데 역시 실기가 관건이지요. 그래서 여기 색소폰 학원에 온 이래 오늘 가장 많이 연습을 했습니다. 아직 노래도 제대로 연주하는 것은 없지만 꾸준히 연습을 반복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겠지요. 


평소 같으면 30분 연습하고 잠깐 쉬고, 담소를 나누었을 텐데 오늘은 거의 1시간 연습하고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니까 갑자기 어지럽기도 하고, 입가가 가볍게 떨리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연습 부족이라고 하네요. 어쨌던 최선을 다해 몇 시간 연습을 반복하였습니다. 그렇게 세 시간 연습 후 쉬는 시간에 원장님께 갑자기 최근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극단적 선택하신 뉴스를 언급합니다. 


"아이고, 그 선생님 정말 안 되었어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학부형들 그 드센 학부형들이 얼마나 괴롭혔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을까 싶습니다. 죽은 선생님도 선생님이지만 그 어머니, 아버지 또 가족은 얼마나 충격일까요. 요즘같이 선생님 되기 어려운 시절에 공부도 잘 하고 모범생이었다고 하는데 부모님에게 얼마나 고통일까 싶습니다. 요즘 학부모 정말 무섭습니다. 제 어릴 때 섬마을에 오신 선생님들께 우리 부모님들 진짜 선생님을 귀하게 생각했다 아입니꺼."


(308) 섬마을 선생님, 이미자 [가요무대/Music Stage] 20200427 - YouTube


섬마을 부두에 전근가시는 선생님을 위해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모여 짐을 일일이 이고 지고 해서 가지고 왔는데, 모두들 높다란 고갯길을 넘어왔답니다. 배에 싣고 사공이 부두에 묶어둔 줄을 풀어야 하는데, 갑자기 학생들이 크게 울면서 그 줄을 안 놓는 겁니다. 그 선생님께서 섬마을에 오셔서 얼마나 아이들을 위해 애를 썼는지 모른답니다. 아이들 학업 성적을 올리기 위해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지도한 모양입니다. 학업 성적뿐만 아니라 섬마을 아이들 한 명 한 명 모두 성심껏 챙겨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샘예! 샘예! 제발 가지 마이소. 안 가믄 안 됩니꺼. 샘 가시면 우린 우짜란 말입니꺼."


뱃사공은 줄을 풀려고 하고, 아이들은 내놓지 않고 그렇게 한참이나 서로 시룹니다. 아이들은 모두 밧줄을 꽉 쥐고 놓지 않으려 하고 엉엉 울고, 선생님도 뱃전을 두드리며 통곡하면서 이별을 힘들어합니다. 마을 주민들과 학부모님들도 눈물 그렁그렁한 채 선생님을 보내기 싫은 마음에 배를 한 번 보고 다시 바다를 봤다가 하늘도 보면서. 그렇게 한참 동안 시루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배가 떠나갑니다. 그 선생님께서 학생들과 마을 주민들, 학부형들에게 엄쳥난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사람들이 부두에 서서 이별을 아쉬워했습니다. 그리고 허전한 가슴을 달래며 돌아서서 다시 고갯길을 넘어 집으로 가는데 정말 너무나 슬펐답니다. 고개를 넘어가면서 배떠난 바다를 돌아보고, 다시 걷다가 뒤돌아보고 또 울고. 


원장님께서 당신의 고향 섬마을 부두에서 선생님과 이별한 사연을 들려주면서 갑자기 눈가에 눈물이 서립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그리운 순간인가 봅니다. 그렇게 당신께서는 선생님 하면 정말 아름다운 추억이 생각나고 진짜 인간적인 정을 떠올리는데, 이번에 돌아가신 초등학교 선생님이 너무 안타깝다면서 한숨을 쉽니다. 도대체 이건 누구 책잉이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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