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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Aug 13. 2023

그때 부모 심정도 이랬을까요

경기도에서 혼자 생활하는 막내아들이 온다는 말을 듣고 가까운 시장에 가서 떡과 순대를 샀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내가 유난히 좋아하던 막내아들인데, 혼자 생활하며 직장 생활하고 있으니 아내는 안쓰워서 그런지 몰라도 아침부터 아들에게 뭘 먹일까 고민합니다. 이제 갓 서른 대열에 들어선 막내 아들이 어련히 알아서 할 텐데도 굳이 저렇게 아들에게 뭘 해줄까 요리 조리 고민하네요. 어렸을 때 가족끼리 노래방을 가면 '애국가'를 부르고, 밤에 잠을 잘 때도 의관을 정제하여 바른 자세로 눕기도 하였던 막내아들이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지요. 온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할 정도로 재롱도 많이 부리고 그랬던 막내아들이 이제 서른을 넘어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열심해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고맙지요.


이젠 체격도 저를 능가할 만큼 커지고, 가끔 곁에 와서 힘자랑도 합니다. 유머 감각이 풍부하여 주위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준다면서 자기 자랑 즉 '자뻑'도 꽤 있는 것 같습니다. 부모 입장에서 자식의 모든 것이 이쁘게 보이기 마련이지요. 남에게 피해 안 주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자기 자랑하는 것도 이쁘게 보일 수밖에 없겠지요. 큰아들과 딸 아이도 제 동생에게 각별합니다. 언젠가 막내아들이 모 기업에서 진행한 '차세대 CEO 양성 프로그램' 과정에 응모하여 면접갈 때 큰아들이 자신의 구두를 새벽부터 반짝 반짝 광을 내어 현관 바닥에 두었더군요. 막내아들이 그 신발을 신고 가서 면접에 응해서 합격했는지 몰라도, 그 신발이 놓인 장면은 저에게 두고 두고 기억할 만한 것이었지요. 피를 나눈 형제라는 것이 세상 살면서 진짜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늘 가는 떡 가게 주인 할머니는 이 더운 날에 떡을 사러 와줘서 진짜 고마워요란 말과 함께 가래떡을 비롯한 여러 가지 떡을 설명해 주십니다. 그래서 이 떡도 고르고, 저 떡도 찬찬히 살펴 봅니다. 예전 같으면 대강 하나만 덜렁 들고 사와서 아내랑 둘이 나눠 먹었을 텐데, 이번엔 떡을 고르면서 막내가 어떤 떡을 좋아할까를 생각해 봅니다. 특정의 떡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같은 값이면 막내아들 취향을 저격하고 싶습니다. 우리 가족은 모두 떡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디 먼 곳에 갈 일이 있으면 집에 올 때 가급적 떡을 사가지고 옵니다. 아내가 어떤 떡은 맛이 좋은데, 또 어떤 집은 영 맛이 아니라고 품평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떡 모두를 맛있게 먹어 줍니다. 그것이 정말 고맙지요.


떡을 고르고 이번엔 순대집으로 갑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많이 주네요. 같은 가격에 평소보다 양이 훨씬 풍성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양이 진짜 많았습니다. 순대를 잘라서 포장하시는 분은 그냥 담담하게 담아주는데, 옆에서 함께 일하시는 아주머니께서


"야. 이건 진짜 심하게 양이 많다."라고 한 마디 합니다. 다시 봐도 양이 많습니다.


아마도 순대집 사장님께서 우리 막내아들이 집에 오는 날인 줄 아는가 봅니다. ㅎㅎ. 떡과 순대를 상당히 많이 싸들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들은 아직 집에 도착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벌써 부풀어 오릅니다. 몇 달만에 만나는 아들이 또 어떤 얼굴로 집으로 들어설까 궁금해집니다. 현관 문을 열고 환하게 웃으며 들어와선 크게 인사를 하겠지요. 그리고 다시 저 앞으로 와서 한 번 더 확인용 인사를 할 것이고, 안방에서 열심히 TV를 보고 있을 아내에게 가서 가볍게 포옹도 해주겠지요. 아이가 정이 많아서 스킨십을 잘 하는 편입니다. 아내가 그래서 막내아들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형과 누나랑 셋이서 방안에 둘러 앉아 지금껏 생활한 것을 무용담처럼 털어 놓을 것입니다. 큰아들과 딸 아이는 평소에 말이 적은 편인데도 제 동생 말을 지긋이 다 들어줍니다. 제가 곁에서 지켜 보면 막내아들이 어떨 땐 큰아들 같습니다. 동생 둘이서 형의 말을 듣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하지요. 그리고 자리를 옮겨 부엌 싱크대에 모이면 큰아들의 장기인 요리를 함께할 것입니다. 셋이 시끌벅적하게 담소를 나눕니다. 간간히 저에게도 말을 걸어옵니다. 최근에 어떻게 지내셨냐, 어디 몸은 아픈 데가 없으시냐 등등 관심을 보일 테지요. 막내아들이 기차를 타고 와서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일어날 일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웃음이 살며시 번집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까 그런 생각에 잘 빠집니다. 그래도 예전에는 그냥 아이들이 알아서 생활을 잘 하고 건강할 테지라고 생각했는데, 노후 세대가 되어 노년의 삶을 영위하면서는 자식들의 세세한 것들도 눈에 잘 들어옵니다. 아이들에게 관심이 갑자기 커진 탓일까요. 예전보다 아이들을 더욱 사랑해서 그럴까요. 아이들이 어딜 다녀온다고 인사를 하면 제 입에서 저도 모르게 나오는 말!


"야~야, 차 조심해라잉. 오갈 때 급하게 뛰다니다 차랑 부딪히지 말고, 알았제. 조심해서 다녀와야 한다이."


걱정의 말이 참 많아지지요. 노파심도 늘어가고 간섭도 많아진 것 같습니다. 저는 걱정한다고 그렇게 말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늙은이의 잔소리로 여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돌아가신 부모님 심정도 그랬을까요. 필시 그랬겠지요. 어렸을 때 그런 말을 듣는 것이 때로는 귀찮기도 했지요. 이제 생각해 보니 부모님께서 어린 우리를 결코 귀찮게 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진짜 진심어린 걱저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아이가 온다고 아침부터 마음이 설레고, 아이가 좋아하는 뭔가를 사먹이려고, 해먹이려고 하는 마음 먹을 때마다 돌아가신 부모님 심정을 이해하게 됩니다.



초등학교 시절 오랜 기간 마을 이장을 하셨던 아버지께서 면사무소에 가서 월급이 아닌 수당 성격의 돈을 받은 날에 면소재지에 있는 통닭 가게에 반드시 들르셨습니다. 형과 저 그리고 여동생 그렇게 3남매 주시려고 통닭을 사서 자전거 뒤에 꽁꽁 묶어  달성군 논공면 삼리 고갯길을 밤길에 걷고 타면서 밤늦게 도착하면 어머니 혼자 주무시지 않고 우린 깊은 잠에 빠져 있었지요.  그런데 제가 살풋 잠에서 깨어들으니 아버지께서 대문을 들어서며 기다리고 계시던 어머니께,


"아~들은 날 기다리다 자고 있제. 오늘 오후에 면사무소에서 각 부락 동장들을 모아 놓고 회의를 하는데 저녁까지 먹으면서 시간이 많이 지났뿠다 아이가. 우리 아~들  이 통닭 진짜 좋아하는데, 지금 이 늦은 시간에 깨워서라도 믹이야 하는데, 안 되겠제. 우짜꼬 그래도 살살 깨아가 믹이까. 당신 생각은 어떻노?"


그러면 어머니께서

"당신이 아~들 믹일라고 사왔으이 그래도 한번 깨아보입시더. 내가 살살 깨우면 아~들 큰 불만 없이 일날 낍니더. 그렇게 하는 기 안 좋겠는교? 우쨌든 오늘 오후부터 지금 이 시간까지 큰 욕 봤심더. 배도 고플낀데, 거~다가 밤늦게 고개를 넘어올라 카믄 그것도 큰 고생일낀데, 욕봤심더."


다시 아버지께서,


"저녁이야 같이 묵었고, 고갯길은 옆 동네 이장들하고 섞이가 넘어오이 괘안타. 그래 아~들 살살 깨아봐라."


그렇게 어머니께서 우리 3남매를 살살 깨웁니다. 저는 깨울 줄 알고 있으면서도 잠자는 척했습니다. 혹시나 안 깨우고 내일 아침에 통닭을 줄까 봐 걱정하면서 말이지요. 잠든 3남매도 일어나 아버지께서 힘들게 사오신 통닭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셋 다 성격이 무던하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들었기에 그렇게 밤늦게 깨워도 불펼불만이 없어 감사합니다만 말과 함께 어머니랑 함께 통닭을 먹던! 참으로 그리운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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