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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Aug 14. 2023

차가운 물수건 갖다 주세요、빨리

작은 방 침대에 누워 열심히 스마트 폰을 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은 아내를 차에 태워 병원 정기 치료를 다녀오는데, 왕복 2시간, 치료 시간 1시간 ~1시간 30분 정도 시간이 걸려 오전 내내 대기하는 상황이지요. 벌써 4년 째 되어 갑니다. 그래서 토요일 오전은 누군가와 약속을 잡지 않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금요일 밤배로 출발하고 월요일 아침 8시에 부산항에 들어오는 주말 일본 여행이나 방문도 코로나와 함께 시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비용도 상당히 비싸서 그렇기도 합니다. 지인들과 만남도 주말엔 거의 할 수 없습니다. 주중에도 아내 퇴근 후엔 옆에서 늘 대기해야 합니다. 최초에 코로나 2차 접종 후유증을 겪을 때보다 훨씬 좋아졌지만 예전처럼 오롯이 돌아가긴 어렵습니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지낼 수 있음에 다행으로 살아갑니다.


퇴직하면 부산에서 한 시간 이내 시골에 터를 잡으려 했고, 실제로 몇 곳을 돌아보았습니다. 경남 의령이나 창녕이 후보지였고, 퇴직하면서 곧장 그곳으로 들어가 은거하고 싶었습니다. 세상 욕심 다 버리고 사람들과의 인연도 끊으면서 고즈넉한 자연 속에서 편안하게 독서와 글쓰기를 하며 지내고 싶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그렇게 꿈꾸어 온 일이라 아내도 이해해 주었지요. 다만 저보다 퇴직 시점이 몇 년 늦어서 저 혼자 먼저 시골로 들어갈 것이라고 마음 먹었고,. 세상 사람과의 연락은 끊어 버리고 아내에게만 연락할 생각이었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시골 마을, 지천과 강물이 만나 새벽 안개가 부드럽게 물가에 머물고 있는 곳, 시골의 새벽길을 조용히 혼자 걸으면서 길게 난 농로 위로 생각에 잠겨 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하루 이틀 아닌 긴 시간일지라도 꼭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 그 사이로 난 들길을 따라 한참 걸으면 강둑길이 나오고 그 위로 올라서면 일망무제 드넓게 펼쳐진 산하를 멀리 멀리 바라봅니다. 하염없이 흘러가는 강물 조각 조각들마다 지난 세월의 사연들이 켜켜이 얹혀 굽이 굽이 흘러갑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무슨 욕심을 내고 무슨 욕망에 젖었던가. 세상 부귀영화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단 한번이라도 이렇게 아무도 없는 강둑길에 홀로 앉아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이름없는 풀들이 날 올려다보는 자연 속에서 서서히 스러져가고 싶었습니다. 


이 세상에 올 때 그 누구도 나의 존재를 몰랐듯이, 세상을 버리고 갈 때도 아무도 모르게 가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런 전원 생활에 젖어들고 싶었습니다. 청량한 새벽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시골 허름한 집 문을 열고 나서서 길게 난 들길을 매일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걷고 싶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손님이 별로 없는 가게 평상에 앉아 사람좋은 인상을 가진 주인장에게 부탁하여 막걸리라도 천천히 한 잔 마시는 그런 여유를 누리고 싶었습니ㄷ, 사시 사철 시름 모르고 변해가는 자연 풍경 속에 제 몸을 눕히고 싶었습니다. 


밤늦게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보름달이 휘영청 솟아 올라 온 세상을 밝혀 주면 슬며시 문을 열고 마루로 내려와 섬돌에 놓인 신발을 신고 마당에 내려섭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달빛을 혼자 누리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동구밖 길을 나서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잠에 들었고, 마을 골목 골목길은 그냥 조용합니다. 시골 마을을 벗어나면 작은 물길이 조용 조용 흘러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달밤에 피어오른 호박꽃이 호박잎 가운데 자리 잡고 흘러가는 물길에 흔들리며 저를 바라봅니다. 정말 편안하고 시원한 바람이 귓가를 스쳐갑니다. 아무도 없는 달밤 마을 동구밖에 홀로 앉아 흘러가는 물결 소리를 듣는 것도 세상에서 찾기 어려운 호사입니다. 그런 자연 속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돈독히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저는 그리 살지 않고 혼자 고독 속에서 세월을 낚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퇴직을 몇 개월 앞두고 아내가 코로나 예방 접종 2차 주사를 맞고 심각한 상황에 처했지요. 119 구급차에 실려가서 병원 응급실으로 들어가 그야말로 응급처치하고 며칠을 보내면서 이렇게 사람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들기도 했습니다. 제가 지나치게 걱정하고 두려워하면 그것이 환자에게 치명적이 될 것음 알았기에 아내가 걱정하지 않도록 겉으로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환자 본인은 또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일주일 새 5kg이 빠지는 것을 보면서 저와 아내 둘 진짜 걱정이었지요. 의사는 못 먹으니 살이 빠지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요 하면서 위로해주었지만, 아내는 두려움을 정말 많이 갖더군요. 제가 옆에서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내가 있는 한 절대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쓸데없이 걱정하면 그것이 병 된다. 괜찮아진다고 스스로 확신해야 몸도 그렇게 간다 하더라. 내가 있으니 절대 걱정하지 마."


라고 달랬지요. 제가 의사가 아닌데 무슨 수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겠습니까만 환자 옆에 있는 사람은 그렇게 환자를 설득하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무한 반복해야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아니면 병원 바로 앞에 있는 병원 약사님의 권유가 먹혔을까요. 액체 영양제를 먹어 보라고 권유하여 그렇게 입으로 삼켰지요. 꽤 비싼 약이었지만 그 당시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액체 영양제를 먹으며 견뎌내다가 죽을 사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매주 토요일이면 병원 정기 치료를 받고 돌아오면서 죽 가게에 들러 1주일 치 죽을 사오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나아지니 오가는 차안에서 아내가 이런 저런 말을 많이 합니다. 제 딴에는 늘 최선을 다하는데, 아내에겐 성이 차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요. 환자 우선 아니던가요.


가끔은 환자의 바람직한 매너도 생각합니다. 자신의 몸이 아픈 것은 이해하지만 옆에서 케어하는 사람의 심정도 조금은 생각해 주면 좋지 않을까 하고요. 열심해 노력했는데 그것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말 대신에 뭔가 다른 것으로 꼬투리 잡는 화법을 접하면 저도 사람인지라 정말 서운하거든요. 가끔 혼자 생각합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해봐야 나중에 아내가 고맙다는 생각을 하기나 할까. 또 뭔가 나의 모자란 것을 들고 불평 불만을 할 것 아닌가. 이렇게 애를 써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을까.' 등등. 그렇게 속으로 서운한 감정이 생기다가도 환자인 아내가 가장 고통스럽고 불편한 상황임을 직시합니다. 그래도 저는 이렇게 건강하니 누군가를 도울 수 있지 않느냐고 자위해 봅니다. 또한 이렇게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건강한 몸을 만들어 준 사람이 평생 저에게 헌신해 준 아내 덕이 아닌가 하고요.



실제로 저와 우리집 아이들 3남매에게 아내는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경북 상주 처가에서 장모님이 사람 몸에 좋은 것을 골라 9곡 미숫가루는 해마다 보내주었고,  아내는 저와 아이들로 하여금 늘 챙겨 먹였지요. 그 덕에 저도 아이들도 매우 건강할 수 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내는 어딜 가더라도 아이들에 좋다 싶으면 돈 아끼지 않고 사고, 집에서 정성껏 마련해서 아이들 먹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환자가 된 아내이니 제가 좀 서운한 것 있어도 환자 우선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둘이 함께 차를 타고 가까운 거리를 다녀올 수 있고, 함께 움직이며 대화를 할 수 있음에 정말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란 말을 많이 들었지요. 환자의 상태가 길어지면 가족이 지치게 마련입니다. 사소한 것에 예민해집니다.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환자를 돌보는 힘은 '환자가 이전에 나에게 얼마나 헌신적으로 해주었는가를 절대 잊으면 안 된다는 마음'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그러면 아내 간호에 힘이 빠지거나 제가 좀 서운할 때도 '아니지 아내가 나와 아이들 때문에 저렇게 된 것인데, 그러면 안 되디.'라고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나아지고, 가을엔 둘이서 몇 년 전에 돌아가신 부모님을 모셔놓은 경북 김천의 어느 절에 가자고 약속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날이 선선해 지면 둘이 다시 코로나 이전처럼 여행을 떠나자고 했지요. '무계획, 무목적, 무방향' 여행이라고 그냥 토요일에 집을 떠나 해가 질 때 닿는 곳에 숙박하는 여행입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그렇게 자주 떠났지요.


이렇게 생각에 빠져 있는데, 아내가 휴대폰으로 말합니다. 저는 거실에 있고, 아내는 안방에 있었는데, 저를 부르는 소리를 제가 못 들은 모양입니다. 아내가


"차가운 물수건 주세요. 왜 불러도 대답 안 하는데. 물수건 빨리 갖다 주세요."


전 무슨 급한 일이 생겼나 하고 일단은 냉장고에서 꽝꽝 얼어 차가운 물수건을 머리에 대기 편하게 풀면서 안방으로 달려 갑니다. 그런데 바로 옆에 딸 아이가 스마트 폰을 보면서 앉아 있네요. 아니 딸 아이가 바로 옆에 있는데, 거실에 있는 저에게 굳이 전화를 해서 찬 물수건을 갖고 오게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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