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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Aug 15. 2023

지금 행복한가요

태풍이 지나가고 기온이 조금 내린 것 같습니다. 아침 저녁은 선선한 바람이 귓가를 스쳐 갑니다. 어제 일요일 그리고 오늘 출근하고 다시 내일 광복절 공휴일입니다. 오늘 휴가를 받은 사람은 황금 연휴를 즐기겠네요. 점심 시간 무렵에 잠깐 외출하여 운동 삼아 걸어가는데, 그 뙤약볕에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분들이 보입니다. 그 더운 날에 모자에 마스크까지 잔뜩 얼굴을 가리고 일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짠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도와 비닐하우스 속에서 토마토 작업을 할 때 42도까지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그 온도는 정말 살인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토마토엔 고온이 정말 필요했기 때문에 우린 일하면서 어쩔 수 없이 견뎌내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생산한 토마토를 저녁 무렵 트럭에 실어 대구 칠성시장 경매장에 보내면 박스당 가격이 상당히 좋았지요. 힘들어도 돈 맛에 일한다고 하던 고향 사람들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분들 모두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지요. 저녁 무렵 비닐하우스 문단속을 다하고 나서 길게 난 들길을 따라 경운기 행렬이 마을로 향해 달렸습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당시에 대부분 비닐하우스 특수작물 재배 일명 '특작'을 했는데, 토마토가 대다수였습니다. 


겨울 11월 무렵에 비닐하우스 사전 작업을 시작으로 한겨울을 보내는 특수작물 농사가 본격적으로 전개됩니다. 겨우내내 온 가족이 하우스 속에서 생활합니다. 물론 밤에는 집에서 잠을 자지만, 한밤 중 눈이라도 내리면 비닐하우스가 내려앉을까 봐 밤새 눈을 털었습니다. 새벽에 피곤에 지쳐 잠시 눈을 붙인다는 것이 그만 깊은 잠에 빠져 비닐하우스가 통째로 내려 앉은 일도 있습니다. 초저녁부터 그렇게 노심초사하며 눈을 털었지만 무심한 눈은 밤새 내리니 사람이 감당하기 어렵지요. 그렇게 추운 겨울 내내 난로를 피워 온도를 유지하는 일도 만만찮습니다. 


만약에 농사라도 망치면 엄청난 손실이 생기게 되기 때문에 그 기간에는 멀리 외출도 잘 못합니다. 어딜 갔다가도 빨리 돌아와야 합니다. 비닐하우스에 바람이라도 불면 날라갈 판이지요. 3월 말부터 본격적인 수확이 시작됩니다. 토마토는 이틀에 한번 수확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수확기엔 온 가족이 달려들어야 합니다. 그래도 수확기엔 고향 마을 전체가 현금을 손에 만지는 시기가 됩니다. 모두들 얼굴 표정이 환합니다.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지요. 실제로 칠성시장 경매장에서 현금을 받으면 그날로 대구은행에 바로 바로 입금하여 겨울이 지나면 그때 당시 돈으로 거액을 모은 형님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살림살이가 튼실했넌 어느 형님 부부는 당시 대구 시내 아파트를 세 채를 사서 인근에 소문이 자자했지요. 세상일에는 명암이 있는 법이어서 돈만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었고. 그 그림자에 해당하는 일은 여기에 밝히기 좀 어렵네요.


겨울 특작을 잘 하고 나면 초여름 모내기를 하고 나서는 다시 겨울이 올 때까지 여유를 갖고 보낼 수 있습니다. 당시엔 우리 마을 사람들 집집이 돈을 많이 모은 것  같습니다. 한 때는 토마토 특수작물 재배 단지로 태통령상도 받기도 했고, 서울의 유명대학 농대 교수가 대학원생들과 함께 인근 마을에 내려와 숙식을 하면서 비닐하우스 토마토 재배도 실험적으로 하기도 했지요. 물론 아주 단기간에 했지만 말입니다. 


뜨거운 여름날에는 농한기가 되어 그간 누리지 못했던 관광여행을 자주 다녀오시더군요. 저희 부모님께서도 같이 가셨는데, 우리집 토마토 비닐하우스는 규모가 크지 않아 큰 돈은 모으지 못한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서 50대 중반에 세상을 버리시고 직후부터 토마토 농사는 접었습니다. 그래도 비닐하우스에 둘러앉아 점심 식사를 하거나 중참을 먹을 때는 그 맛이 정말 꿀맛이었지요. 어머니께선 하우스 한쪽에서 맛있게 밥을 먹는 저에게 말씀하였지요. 


"야~야, 니는 절대로 농사 지으면 안 된다. 농사는 느그 형에서 끝내고 니는 꼭 공부해서 편하게 살아야 한다. 형이야 이미 논밭을 갖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니 농사를 지어야 하지만 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대구 들어가서 살아야 한데이. 형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래도 친형과는 평생 말다툼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특별히 뭘 잘 해서 그렇다기보다 다섯 살 위의 형님이 어릴 때부터 동생들에게 정말 잘 해주었지요. 동생들을 아끼고 우리들을 존중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에 가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동생에 대해서는 늘 자랑스러워했다고 하더군요. 저 또한 형님을 진정으로 따랐습니다. 말대꾸 할 일이 없었습니다. 부모님 농사지만 형이 주로 다했고 저는 잠시 잠깐 도와드렸을 뿐이지요. 형이 운전하는 경운기 뒤에 앉으면 그 조금 높은 자리에서도 세상이 눈 아래 보이는 기분을 느낍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경운기에 앉아 들판을 바라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을 많이 하던 시절에도 뜨거운 여름날엔 낮은 피했습니다. 새벽이나 저녁 무렵 선선할 때 들에 나가 일했던 경험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당시에 그렇게 일해도 우리 가족이나 마을 사람들의 집집에 행복이 넘쳐 올랐던 것 같습니다. 밤이 되면 마을 앞 동구밖에 형님들은 미리 자리깔고 농삿일에 지친 심신을 달래고자 술잔을 나누었지요. 제가 지나가면 굳이 끌어앉혀 막걸리 잔을 건넸습니다. 


그런데 오늘 낮에 본 현장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니 얼마나 힘들까 싶었습니다. 옷을 벗고 해도 시원찮을 판에 그 혹서에 완전무장하고 하루 종일 일해야 하니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겠지요. 곁으로 지나가기가 정말 미안했습니다. 그냥 수고하십니다란 말만 건넸는데도 환하 미소를 띠면서 감사합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렇게 뙤약볕에서 현장일을 하시는 분들 얼마나 힘들까, 지금 그분들 행복할까 생각해 봅니다. 현장 소장일을 하시는 지인께서 말한 것이 떠오릅니다. 


"요새 외국인 말고는 현장에 일할 사람이 없어요. 젊은 친구들은 카페 같은 데서 알바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현장에는 절대 안 와요. 사실 현장 일당이 얼마나 센지 모릅니다. 물론 힘드니까 돈을 많이 주지만 생각보다 쎕니다. 그래서 한 철 단기 알바하고 가는 대학생들도 많습니다. 그 학생들이 두어 달 바짝 일하고 몇 백만 원을 손에 들고 가면서 말합니다. 이런 일자리라도 어디냐고요. 세상일이 딱 정해진 기 어디 있던가요. 겉으로 보기에 현장 노가다가 저 더운 여름철에 땀이 줄줄 흐르니 진짜 힘들지만, 그렇게 고생해서 큰돈을 받으면 그것도 행복입니다. 저런 일도 없어서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니면 본인이 몸이 안 좋아서 눈앞에 뻔히 보여도 일할 수 없는 사람이 많거든요."


무더위에 완전 노출된 채 고통스럽게 현장에서 막노동하는 사람들도 임금을 받을 때 행복을 느낀다는 현장 소장님의 견해가 반드시 맞을까 싶습니다. 저는 믿어지지 않습니다만. 


"지금 행복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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