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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Aug 15. 2023

젊은 새댁한테 진짜 고마워해야

제가 이 아파트에 이사 온 지 꽤 되었는데, 배가 만삭인 임산부는 정말 오랜만에 보았습니다. 그 새댁이 얼마 전에 무사히 출산했고, 엄마도 아기도 건강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오늘 엘리베이터에 타니 함께 계신 분들이 새댁을 향해 고생 많이 했다고 한 마디씩 건넵니다. 사람 좋은 인상의 남편 분도 넉넉한 얼굴로 환하게 인사를 해줍니다. 여름 내내 힘든 몸을 이끌고 다닐 때마다 주민들이 식구처럼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고, 아기의 무사 출산을 기원했습니다.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는 노인들이 특히 많습니다. 아파트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분양받아 거주하신 분들이 꽤 많아 서로들 잘 알고 지냅니다. 그리고 보통의 아파트 생활과 달리 시골처럼 정겨운 풍경도 많이 보입니다. 서로를 잘 알고 있기에 무거운 짐이라도 들고 있으면 옆에서 기꺼이 도와주고, 그런 도움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요즘 같은 시절에 어디 버스를 타거나 기차에 오를 때 누가 짐을 들어주려 해도 부담스럽지 않던가요. 여기 아파트에선 거의 가족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가끔은 이사 왔노라고 떡을 가져오는 분도 계시고, 수산물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한번은 제 위층에 사시는 젊은 새댁 부부가 엘리베이터에 함께 탔습니다. 아까 말한 임산부와는 다른 분이시지요. 남편 분께서 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넵니다. 


"우리가 바로 위층에 사는데, 밤늦게까지 아이가 뛰어다닌다고 마이 시끄럽지예. 안 그래도 그기 미안해가 한번은 내려와서 죄송한 말씀 드릴라 캤는데, 이렇게 여기서 말씀 드리게 되었네요.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좀 종용히 하도록 할께예."


솔직히 그집에 아이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두 분이 부부인 줄도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평소엔 남편 분이 출근한다고 얼굴을 마주친 적이 있지만, 부인은 얼굴만 알았지 두 분이 부부라는 것과 위층에 사시는 것은 전혀 몰랐지요. 그리고 위층에서 아이가 시끄럽게 뛰어노는지도 몰랐습니다. 우리 아파트는 층간 소음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탄탄하게 지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지요.


"아닙니다. 아이가 뛰어노는 줄도 몰랐고, 시끄럽지도 않았습니다. 또 뛰어다닌다고 해도 아이가 그렇게 노는 것을 어떻게 뭐라 합니까.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짭니다. 우리도 젊은 시절 애기를 키워 봤잖아요. 두 분 전혀 걱정마시고 아가야 잘 키우기 위해 열심히 돈 많이 벌으세요."


노인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에 최근 젊은 세대가 꽤 들어오니 참 보기 좋습니다. 기존 주민들도 만나면 반가운 인사를 전합니다. 몇 년 동안 그런 일이 잘 없었는데, 낯선 젊은 부부가 들어오니 분위기도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나는 젊은 세대들도 기존 주민들과 아주 살갑게 인사를 나눕니다. 참 보기 좋습니다. 


윗층 아이가 있는 줄도 몰랐고, 설령 그 아이가 좀 떠들어도 넉넉한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제 젊은 날 경험 때문입니다. 큰아들과 딸이 연년생 그리고 그 아래 세 살 터울의 막내아들 그렇게 올망종망 아이들 데리고 전세를 구하려면 주인이 기겁을 하기도 했고, 비오는 날 부산역 앞에서 택시를 타려하면 좀처럼 태워주지도 않았던 일들이 아스라히 떠오릅니다. 당시엔 셋째 아이부터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막내는 병원 출산비가 꽤 비쌌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상전벽해와 같은 세월 변화이지요. 그리고 어렵게 전세를 구해서 생활을 시작하려면 주인집 아주머니가 와서 아이들 단속을 잘 해달라고 부탐하던 것도 정말 불쾌하였지만 어쩔 수 없이 듣고만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젊은 새댁이 아기를 데리고 나오면 정말 귀하게 보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하고 아기를 낳아 키우는 것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그들이 결혼하지 않는다고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던가요? 얼마나 팍팍한 세상인데, 교육비를 비롯한 양육비가 살인적인데, 누가 감히 젊은이들보고 결혼 하네 마네 할 수 있나요. 요즘 2030세대 젊은이들 삶 진짜 힘듭니다. 일자리도 형편없이 적으니 온전하게 일할 기회도 없고, 물가는 올라 생활비도 만만찮지요. 사교육비가 과부담 아니던가요. 저희 집 3남매가 30대 초중반 줄줄이 혼기가 가득 차도 감히 결혼하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그냥 그들의 처분에 맡길 뿐입니다. 


아기를 낳은 새댁이 친정 어머니와 함께 걸어가는데, 친정 어머니가 며느리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네요. 오가던 사람들이 출산 소식을 알고 


"애기 낳는다고 수고했어요. 아기도 엄마도 건강하니 진짜 축하해요. 아가야 잘 크길 바래요."리며 인사를 건넵니다. 새댁도 친정 어머니 손을 잡은 채 돌아보며 "감사합니다. 애기 잘 키울께요. 감사합니다."라고 답합니다. 


저와 함께 서 있던 주민 한 분이 말씀하십니다. 


"우리 저 젊은 새댁한테 진짜 고마워해야 합니다. 요새같이 어려운 시절에 결혼도 안 할라 카고, 아는 더 더욱 안 낳을라 카는데, 저 새댁은 조그만 애가 한 명 있는데, 또 아가야를 건강하게 낳았으니 지자체나 정부에서 정말 많이 지원해야 안 되겠는교. 요새는 옛날과 달라서 아~ 하나 키우는기 진짜 힘든기라. 안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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