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엽 Aug 24. 2023

이제 지금 이 나이에 뭘 배운다고?

마을 예술 PD라는 것을 맡게 되면서 지역 거주 예술가와 해당 주민이 만나는 자리에 동행했습니다. 독거노인의 고립감 해소 방안 중 하나라도 실시하는 프로그램인데, 미술이나 음악 등 분야의 예술가들이 외출이나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의 집에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그림책을 함께 읽거나 색칠도 같이 하는 등의 활동을 하게 됩니다. 첫날은 저도 두 분의 향후 활동에 대한 사전 설명에 동참하면서 혼자 사시는 분의 집을 방문하고 그분들이 갖고 있는 삶의 현실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아휴, 그래도 지금이 제일 행복해. 날 그렇게 고생시키던 할아버지가 저 세상 가고 아~들도 지들 살길 찾아 가고 나이 여기는 나 혼자밖에 없긴 하지만 그래도 내 발로 어딜 가서 운동도 하고 친구를 만나 점심도 같이 먹고, 그렇게 하거든. 그라고 노령 연금 그거 정말 고맙지. 암만 생각해도 지금이 제일 행복해."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는 당신들의 말씀을 몇 사람에서 접했지만 살림살이나 현재 삶을 바탕으로 추측해 보면 지금 행복하다는 것보다 젊은 시절 파란만장했던 인생에 대한 원망이나 회한에 방점이 있는 듯합니다. 대부분 70대 후반에서 80대 초중반입니다. 우리가 간다고 사전 연략을 해서 그런지 집안은 깨끗합니다. 평소에도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 같습니다. 일차 면담이라곤 하지만 주민의 일방적 삶의 넋두리가 대부분입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긴 시간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어 준 사람이 없었다면서 미안해 하면서도 자신이 살아온 긴 긴 인생의 굽이굽이를 들려 줍니다. 이야기를 하다가도 울컥 눈물을 보이기도 하시고, 환하게 웃기도 하면서 종잡을 수 없는 심정을 여과없이 보여 주십니다.


어느 문은 특이한 하소연을 하셨습니다. 아들이 혼자 계신 노모를 위해 좁은 평수나마 아파트를 마련해 주었는데, 그때 당시는 참 고마웠는데 지금은 원망스럽다는 고백에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노인일자리 같은 공공 기관의 복지 사업 대상자에서 누락되기 때문이랍니다. 아들과 딸이 대출하여 사준 아파트라 아직도 대출 이자를 갚고 있는 상황에서 노모에게 용돈도 보내 줄 수 없고, 일할 능력이 충분한 노모 입장에선 당장 소액이나마 수입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또 어떤 분은 단독주택에 혼자 살면서 관리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가 봅니다. 그리고 자신도 젊은 날 책도 많이 읽고 다양한 활동을 하였는데, 지금은 류마티스에 걸려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없다는 당신의 지금 현재 삶을 들려 주십니다. 만나는 분들마다 인생들에 왜 그리 굴곡진 일이 많았을까요. 일제시대, 6.25 이야기는 단골 소재입니다. 그리고 근대화 시절 배고픈 당시를 떠올리며 새댁이, 과부가, 여자의 몸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노동 현장에 갈 수밖에 없었던 그때를 반복적으로 들려 줍니다. 함께 간 예술가께서


"어머니, 그러면 복지관에 가면 재미 있는 활동이 진짜 많거든요. 가셔서 사람들과 어울리면 더옥 좋을 것 같아요.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을 듯한데."


라고 말하자, 이렇게 답합니다.


"나도 그런데 가서 배우고 사람들을 만나면 좋지, 그렇지만 지금 80 넘어가~ 뭘 배운다고, 이 나이에 뭘 배운다고, 배워봐야 아무 소용도 없는 걸."


함께 간 예술가 선생님께서 서양의 90대 할머니 화가에 대해 소개하면서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뭔가 배울 것을 권하지만 손사래를 크게 치며 완곡하게 거부합니다. 특수한 사례는 당신과 맞지 않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그냥 이렇게 하루 하루 덜 아프고 편하게 살다가 가련다고 하시네요. 


젊은 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고생을 많이 하신 당신들로선 눈깜짝할 사이에 세월이 흘러 버렸으니, 돌아보면 아쉽기 그지없겠지요. 그렇게 정신없이 세월을 살아왔는데,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겨 뭔가 해보려 하니 나이가 너무 많아서 여의치 않게 되었네요. 조금만 더 젊었다면 하고픈 일이 진짜 많았을 텐데라고 하시는 표정에서 진한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무릎 수술을 한 탓에 바닥에는 앉지도 못하고, 계단을 내려올 때는 일부러 뒤러 걸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몸과 마음이 만사 귀찮아지는 나이입니다. 자녀들도 각자의 가정을 이루어 떨어져 살고 있어서 함께 모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그림의 떡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자녀들이 무난하게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는 말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도 이제 60대 노후에 접어 들었습니다. 저보다 연배이신 이분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저 또한 세월의 무게를 다시 한번 느끼면서 제 노후는 그래도 덜 후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노라고 마음먹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자네 나이도 만만찮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