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엽 Aug 25. 2023

나이가 들면 칭찬을 많이 하라

평소처럼 아내 아침 출근길 승용차를 운전하여 다녀와서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웠습니다. 차문을 열고 나오는데, 초등학교 1~2학년 아니면 유치원생인가 확실치는 않지만 여자꼬마 아이가 정말 낭랑하게 인사를 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도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래 안녕 학교 가나?"


아이가 환하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이고 이뻐라'라는 말을 하려다가 그만 멈춥니다. 행여 아이 엄마가 오해할까 봐 그랬습니다. 60대 할아버지가, 같은 아파트 거주하고 서로 안면이 있다지만 세상살이 하도 고약해 괜히 제가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건네고 꼬마 아이에게 괜히 '이쁘다, 귀엽구나.' 등을 말하면 딱 오해받기 십상이지요. 그래서 아이가 먼저 인사하기에 저도 같이 받아주는 것에 그칩니다. 그 아이가 다시 저에게 


"안녕히 가세요."라고 크게 인사하기에, 저도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아이 목소리가 얼마나 청량한지 모릅니다. 그렇게 아이와 떨어져 걸어오는데, 그 아이 할머니로 보이는 분이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고 있다가 목례를 해줍니다. 저도 그 할머니는 안면이 있어서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말했지요.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손녀 아가야 진짜 잘 키웠네요. 어찌 저렇게 인사를 잘 하고 말도 또박또박하니 이쁘게 잘 키웠습니다. 손녀가 정말 에쁘죠?"


그랬더니 그 할머니 이번엔 정말 기뻐합니다. 리엑션도 상당히 큽니다. 당신의 손녀 칭찬에 매우 기뻤겠지요.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청소하시는 할머니께서 지난 폭풍우에 떨어진 낙엽을 쓸어모은다고 애를 쓰시기에, 


"아이고, 정말 수고 많으십니다. 늘 이렇게 열심히 청소해주시니 우리 아파트 입주민들도, 외부에서 오시 손님도 다들 아파트가 깨끗하다고 좋아들 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청소하시다가 저를 바라보시며 매우 기쁜 표정을 짓습니다. 


나이가 들면 세상 사람들과 만날 때 우선 상대방의 칭찬할 만한 것을 먼저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참 묘한 것이 상대방을 이쁘게 보기 시작하면 진짜 이쁜 것만 보입니다. 나이가 들어 남을 미워할 생각은 절대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젊은 날에는 치열하게 살다 보니 상대방이 밉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나이가 들면 한결 여유를 갖고 사람을 대해야 합니다. 


칭찬하되 진심이 담겨야 합니다. 하기야 빈말이라도 칭찬하면 신기하게도 큰 효과를 발휘하기도 해요. 그래도 상대방을 칭찬할 때 진심이 담겨야 그 칭찬의 효과가 매우 큽니다. 무엇을 칭찬할 것이냐고 고민할 것 없어요. 상대방의 밝은 얼굴, 씩씩한 걸음걸이, 세련된 옷차림, 음성, 맛있게 식사하는 모습, 정성껏 사람을 대하는 자세, 미소, 친절, 배려 등등 칭찬할 거리는 무궁무진합니다. 


저는 솔직히 어린 시절부터 못 생겼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잘 생긴 친구들과 함께 가는데 기가던 어른들이 잘 생긴 친구보고 '아이고 고놈 잘 생겼네.'하면 참 부러웠습니다. 샘도 났고요. 그 친구보다 낫게 보이려고 공부를 좀더 열심히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이웃 마을 어느 집을 방문하는데, 그집 아주머니께서 저를 보고


"아이고, 참 인물도 좋제. 덩치도 장골이제. 이 무거운 것도 싫다 않고 즈그 엄마가 시킨다고 이렇게나 무거운거를 지게에 지고 멀리까자 아무 불만도 안코 왔다니 진짜 효자제. 거다가 인물도 좋으니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겠네. 인물도 좋은데가 공부도 열심히 하면 더 좋겠제. 아지매 이 아들 공부 잘하지요?"


저 스스로 늘 못 생겼다고 생각하고 지냈는데, 낯선 아주머니께서 그렇게 '인물 좋다'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하여 칭찬해 주셔서 정말 그 순간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습니다. 우리집과 그 댁은 한 3k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지게에 벼나락을 한 가마니 지고 어머니를 따라 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댁에서 우리집에 뭔가 품질 좋은 쌀나락을 부탁했고, 어머니는 그 대신 돈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런 것은 기억이 별로 나지 않습니다. 인상이 참으로 인자한 대갓집 부인께서 어머니와 대화 도중 거의 지나가는 말로 저에게 그렇게 해준 말이 정말 좋았습니다. 


어머니와 꽤 긴 시간 담소를 나누시던 그분께서 빈 지게 바지게에 단술, 감주(甘酒)와  떡을 가득 얹어 주었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들길을 따라 어머니와 함께 걸었습니다. 가을날 높이 뜬 푸른 하늘에 맑은 공기도 참 좋았습니다. 제가 연신 싱긍벙글 하니까 어머니께서 물으십니다. 


"야~야, 니 오늘 기분 좋은 거 있나. 학교에서 뭐 시험이라도 잘 쳐서 상이라도 받았나. 오늘 니 웃는기 수상쩍다이."


"엄마, 그기 아이고 아까 그 아지매가 나보고 인물 잘 생겼다 안 카더나. 그것도 두 번이나. 그기 그렇게나 기분 좋데."


어머니가 제 얼굴 빤히 쳐다보십니다. 제 얼굴의 실상을 세상에서 가장 잘 아시는 어머니께서 일 순간 침묵을 지키십니다. 사실대로 말할까, 아이 기 살리기 위해 그댁 아지매처럼 빈말을 던질까 수없이 고민하셨겠지요. 그리곤 그냥 휙 돌아서서 먼저 가십니다. 아무 말씀도 없이 얼굴엔 웃음만 가득 띠시고. 평소 같으면 어머니를 따라 가서 왜 그러느냐고 물어봄직도 했는데. 


저는 그래도 그댁 아지매 말을 단단히 믿었습니다. 실제로 그댁을 다녀온 그날 밤늦게까지 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달 월례고사에선 난공불락의 여학생 수석을 추월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 아이를 위협할 정도 점수를 올렸고, 우등상도 받았습니다. 어렸을 때 칭찬 한 마디가 저에게는 엄청난 계기가 되었지요. 칭찬의 효과에 남녀노소가 있을까만 나이가 들면 젊은 세대, 후배들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나이가 들면 배우자가 최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