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2박 3일간 책만 읽겠다
금요일 오후 도서관에 들러 대출 상한선 다섯 권을 대출하였습니다. 주말에 평소에 하지 못한 책읽기에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퇴직 후 가장 좋은 것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책을 안고 나오니까 지인들이 인사를 건넵니다. 그리고 한 마디씩 던집니다.
"가방 크다고 공부 잘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책을 그리 마이 들고 가능교? 인자 그런 거 하지 말고 쉬어 가면서 안 살고."
"책을 마이 들고 댕기는 거 보이 할 일이 어지간히 없는 갑네. 무리하지 말고 오늘 저녁에 우리하고 막걸리라도 한 잔 안 할랑교?"
"아이고. 역시 책을 좋아하시네예. 그래도 인제 퇴직했으이 너무 무리는 하지 마이소. 쉬엄쉬엄 그리 쉬 가면서 여유롭게 사는 기 안 좋겠습니꺼?"
오늘 밤엔 안 된다고 집으로 와서 책상 위에 올려 놓고 바라보니 그냥 배가 불러 오는 느낌입니다. 2박 3일간 이 이 책을 다 읽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한번 도전해 보려 했습니다.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접어든 요즈음 창문 너머 숲에서 풀벌레 소리가 엄청 터져나옵니다. 그런데도 귀에 거슬리지 않고 정말 듣기 좋기만 합니다.
첫 권째가 <이웃사냥>인데 책 제목부터 섬뜻하지요.
소설의 대략 내용은 이렇습니다. 번잡한 대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삶을 꿈꿔왔던 퇴역 해병 해리가 사샤가 신혼부부로 넓은 목초지와 삼림이 가득한 깊은 산골 집을 저렴한 가격을 구입합니다. 오래 전부터 두 살맘의 로망이었던 조용한 산골 생활이었지요. 그런데 이들이 새로 들어온 집은 지난 10년 간 빈 집이었고, 이웃이라곤 딱 한 집밖에 없었지요. 그집 부부 댄과 루시 그들을 찾아와 그 곳에서 악령이 존재한다는 믿기 어려운 끔찍한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그리고 그 악령이 출현할 때 대비책이 계절에 따라 다르다면서 그 의식을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처음 이곳으로 들어온 신혼부부에겐 도저히 이해가 될 리가 없었지요. 악령의 모습 중 첫 번째가 신혼집 근처 연목에 구(球) 무양이 불빛이 등장하게 된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불이 붙으면, 빛은 사라진다.
남향 창문으로 가서 빛이 아직도 있는지 보라.
만약 여전히 빛이 보이면, 불에 장작을 더 넣어라.
빛이 사라졌다면 악령은 떠난 것이다.
악령이 떠나면 곧바로 느낄 수 있다.
그러면 불이 알아서 꺼지게 놔두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던 일을 계속 하면 된다.
봄에 연못 위 불빛의 형태로 등장하는 악령을 내쫗기 위해 댄 부부가 알려 준 방법은 비교적 쉬웠습니다. 장작에 불을 피우면 불빛 악령이 사라지는 것이지요. 실제로 해리 사샤 부부가 그렇게 합니다. 좀처럼 믿을 수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첫 악령은 물리칩니다. 그런데 악령은 계절마다 다르게 나타나는데요. 여름엔 웬 남자 벌거벗은 채로 거대한 곰에게 쫓겨 해리 사샤 부부 집으로 달려오면서 살려달라고 외칩니다. 그런데 남자를 구해주면 안 됩니다. 오히려 총을 그 남자에게 겨냥하여 죽여야 악령이 사라지는 것이지요. 참으로 괴기합니다. 가을엔 허수아비 형태로 등장합니다. 겨울은 작가님들이 확인해 보세요. 해리가 해병 현역에 있을 때 총으로 살해한 다섯 악령 정도만 말해 둘까요.
그리고 이 책에서 서술자의 시점이 해리와 사샤 두 사람이 돌아가면서 바뀝니다. 그래서 소 제목이 '해리', '사샤' 로 번갈아가면서 서사구조가 전개됩니다. 동일한 사건이라도 누가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효과가 있지요. 전체적으로 음산한 분위기에서 전개되는 소설이라 심야에 혼자 읽으면 좀더 그 느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ㅎㅎ 우리가 흔히 접하는 공포 소설 종류와는 좀 다른 의미를 지닌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계절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악령의 모습에서 악령의 존재 유무, 악령이 출현하는 이유, 자연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 죽음과 죽임 등 다양한 주제를 제시합니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관계 설정 과정에서 우리가 타인이나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파악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더군요. 악령이 출현하는 상황이 공포감을 주기도 하지만, 왜 그렇게 악령이 등장하는가가 더 궁금했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남에게 피해를 준 적은 없는지, 남에 대해 너무 심한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 등등 책을 덮고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해보았습니다.
두 번째 책은 <혁명과 죽음>이란 문학 평론 책인데 1960년대가 주요 시대 배경입니다. 평론 책은 아무래도 소설보다 딱딱하여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겠지만, 토요일 오후부터 넉넉한 마음으로 여유롭게 읽어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다 읽고 나면 여기 브런치에 소개하여 작가님들도 대충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해볼게요.
나이가 들면 세상살이가 그냥 귀찮을 줄 알았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하루 또 어떻게 보내지 하는 걱정도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그 정도는 아니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오후엔 지인들과 잠깐 만나 차라도 한 잔 해야 하겠습니다. 2박 3일간 5권을 다 읽겠다는 허무맹랑한 목표는 저만치 밀어놓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