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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Sep 09. 2023

나이가 들면 책을 가까이 하라

주말 2박 3일간 책만 읽겠다

금요일 오후 도서관에 들러 대출 상한선 다섯 권을 대출하였습니다. 주말에 평소에 하지 못한 책읽기에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퇴직 후 가장 좋은 것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책을 안고 나오니까 지인들이 인사를 건넵니다. 그리고 한 마디씩 던집니다. 


"가방 크다고 공부 잘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책을 그리 마이 들고 가능교? 인자 그런 거 하지 말고 쉬어 가면서 안 살고."


"책을 마이 들고 댕기는 거 보이 할 일이 어지간히 없는 갑네. 무리하지 말고 오늘 저녁에 우리하고 막걸리라도 한 잔 안 할랑교?"


"아이고. 역시 책을 좋아하시네예. 그래도 인제 퇴직했으이 너무 무리는 하지 마이소. 쉬엄쉬엄 그리 쉬 가면서 여유롭게 사는 기 안 좋겠습니꺼?"


오늘 밤엔 안 된다고 집으로 와서 책상 위에 올려 놓고 바라보니 그냥 배가 불러 오는 느낌입니다. 2박 3일간 이 이 책을 다 읽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한번 도전해 보려 했습니다.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접어든 요즈음 창문 너머 숲에서 풀벌레 소리가 엄청 터져나옵니다. 그런데도 귀에 거슬리지 않고 정말 듣기 좋기만 합니다.  


첫 권째가 <이웃사냥>인데 책 제목부터 섬뜻하지요.




소설의 대략 내용은 이렇습니다. 번잡한 대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삶을 꿈꿔왔던 퇴역 해병 해리가 사샤가 신혼부부로 넓은 목초지와 삼림이 가득한 깊은 산골 집을 저렴한 가격을 구입합니다. 오래 전부터 두 살맘의 로망이었던 조용한 산골 생활이었지요. 그런데 이들이 새로 들어온 집은 지난 10년 간 빈 집이었고, 이웃이라곤 딱 한 집밖에 없었지요. 그집 부부 댄과 루시 그들을 찾아와 그 곳에서 악령이 존재한다는 믿기 어려운 끔찍한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그리고 그 악령이 출현할 때 대비책이 계절에 따라 다르다면서 그 의식을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처음 이곳으로 들어온 신혼부부에겐 도저히 이해가 될 리가 없었지요. 악령의 모습 중 첫 번째가 신혼집 근처 연목에 구(球) 무양이 불빛이 등장하게 된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불이 붙으면, 빛은 사라진다.

남향 창문으로 가서 빛이 아직도 있는지 보라.

만약 여전히 빛이 보이면, 불에 장작을 더 넣어라.

빛이 사라졌다면 악령은 떠난 것이다.

악령이 떠나면 곧바로 느낄 수 있다.

그러면 불이 알아서 꺼지게 놔두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던 일을 계속 하면 된다.



봄에 연못 위 불빛의 형태로 등장하는 악령을 내쫗기 위해 댄 부부가 알려 준 방법은 비교적 쉬웠습니다. 장작에 불을 피우면 불빛 악령이 사라지는 것이지요. 실제로 해리 사샤 부부가 그렇게 합니다. 좀처럼 믿을 수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첫 악령은 물리칩니다. 그런데 악령은 계절마다 다르게 나타나는데요. 여름엔 웬 남자 벌거벗은 채로 거대한 곰에게 쫓겨 해리 사샤 부부 집으로 달려오면서 살려달라고 외칩니다. 그런데 남자를 구해주면 안 됩니다. 오히려 총을 그 남자에게 겨냥하여 죽여야 악령이 사라지는 것이지요. 참으로 괴기합니다. 가을엔 허수아비 형태로 등장합니다. 겨울은 작가님들이 확인해 보세요. 해리가 해병 현역에 있을 때 총으로 살해한 다섯 악령 정도만 말해 둘까요. 



그리고 이 책에서 서술자의 시점이 해리와 사샤 두 사람이 돌아가면서 바뀝니다. 그래서 소 제목이 '해리', '사샤' 로 번갈아가면서 서사구조가 전개됩니다. 동일한 사건이라도 누가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효과가 있지요. 전체적으로 음산한 분위기에서 전개되는 소설이라 심야에 혼자 읽으면 좀더 그 느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ㅎㅎ 우리가 흔히 접하는 공포 소설 종류와는 다른 의미를 지닌 내용을 있습니다. 계절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악령의 모습에서  악령의 존재 유무, 악령이 출현하는 이유, 자연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 죽음과 죽임 등 다양한 주제를 제시합니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관계 설정 과정에서 우리가 타인이나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파악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더군요. 악령이 출현하는 상황이 공포감을 주기도 하지만, 왜 그렇게 악령이 등장하는가가 더 궁금했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남에게 피해를 준 적은 없는지, 남에 대해 너무 심한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 등등 책을 덮고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해보았습니다. 


두 번째 책은 <혁명과 죽음>이란 문학 평론 책인데 1960년대가 주요 시대 배경입니다. 평론 책은 아무래도 소설보다 딱딱하여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겠지만, 토요일 오후부터 넉넉한 마음으로 여유롭게 읽어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다 읽고 나면 여기 브런치에 소개하여 작가님들도 대충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해볼게요. 



나이가 들면 세상살이가 그냥 귀찮을 줄 알았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하루 또 어떻게 보내지 하는 걱정도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그 정도는 아니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오후엔 지인들과 잠깐 만나 차라도 한 잔 해야 하겠습니다. 2박 3일간 5권을 다 읽겠다는 허무맹랑한 목표는 저만치 밀어놓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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