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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Sep 15. 2023

나이가 들면 맥락을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상대방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곤란

사람은 누구나 크든 적든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숱한 언어행위가 발생합니다. 언중(言衆)의 언어 행위에서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대화 도중에 들어오면 그 전에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 진행되고 있는 대화의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 경우엔 가만히 있으면서 대화를 지켜보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지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맞장구치는 것 정도는 무난합니다. 그런데 대화의 맥락도 제대로 모르면서 지레 짐작으로 대화의 내용을 판단하여 남의 말을 끊는 것은 정말 최악의 자세입니다.


며칠 전 어느 지인께서 전화상으로 자신의 현재 사정을 아주 절박하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어떻게 도와줄까 하루 종일 고민하고 또 고민하였습니다. 그래서 제 능력이 닿는 한도 내에서 여기 저기 지원을 요청하였습니다. 제 일이 아니기에 내용 설명도 복잡합니다. 그래도 열심히 설명하면서 부탁한다고 하니 전화를 받은 사람들도 저의 일이라 여기고 한번 노력해 보겠노라고 했지요. 세상 일이란 것이 마음 먹은 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애는 써봐야 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저의 이런 행동이 전형적인 오지랖 넓은 짓이지요. 그래도 어쩝니까. 절박한 사정이 있어서 저에게 어려움을 털어놓는 사람을 외면할 수 있는 없지요. 무슨 금전적인 지원 문제는 아닙니다. 인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 제가 아는 인맥을 최대한 동월해 보려 했던 것입니다. 제대로 될지 안 될지는 장담 못하지만.


그런데 제 밤 늦게 그분께 전화를 드렸더니 자신이 했던 말은 대부분 잊어 버린 모양입니다. 괜히 저만 설친 꼴이 되었습니다. 그 날 자신의 하소연을 잘 들어주어 고맙다고 말하더군요. 어, 이게 아닌데, 내가 무슨 그런 감사하다는 말을 들으여 한 것이 아닌데. 그분은 현재 자신의 상황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고, 그 대상이 바로 저였을 뿐입니다. 저는 너무나 진지하게 받아들여 실제적으로 그분께 도움을 드리려는 마음에 제 아는 사람들 몇에게 전화를 드려 궁색한 말을 해가며 부탁한 모양이 되어 버렸네요. 누군가에게 뭔가 부탁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래도 최선을 다했는데, 이분의 의도는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봅니다. 갑자기 허탈해집니다. 제가 오버했던 모양입니다. 그분의 하고자 하는 맥락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액면 그대로 판단하여 자칫 큰 실수를 할 뻔했습니다. 제가 부탁한 사람들에게 다시 전화를 돌렸습니다. 아까 부탁한 것 모두 취소라고. 제가 이 나이에 참 싱거운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전화로 절박한 사정을 털어놓으면 상대방의 도움을 바라는 것이 올바른 맥락이 아닌가요. 상대방이 명확하게 '도움을 요청한다.'라고 해야 제가 움직여야 하는 것이 정상인가요. 제 딴에는 상대방 말의 의도를 미리 판단하고 도우려 했고, 그것이 정확한 맥락 파악이라교 여겼던 것이지요. 나이가 들어 누군가에게 부탁을 할 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절박한 사정을 무작정 털어놓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또 설령 상대방이 나에게 현재의 절박한 사정을 심각하게 이야기해도 '도와달라'고 명확하게 의사표현하지 않을 경우엔 그냥 자신의 하소연임을 파악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칫 남을 도우려다가 제가 중간에서 구설수에 오를 위험성도 있겠더군요. 요즘 같이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에 저처럼 긴 시간 하소연을 들어주는 사람도 드문 일인데, 제가 도우려고 했던 마음이 오히려 '오버'라는 생각에 허탈한 하루였습니다. 그래도 많이 배운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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