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엽 Sep 16. 2023

나이가 들면 여유를 가져야 한다

세상사에 쓸데없이 관심두지 말 것

"마음은 젊은 시절 그대로인데"


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긴긴 현직 생활을 끝내고 퇴직한 후 이제 노년 세대에 본격적으로 접어들어 보니 그런 말을 예전보다 훨씬 많이 듣게 되고, 저 스스로도 그런 기분이 가끔 들기도 합니다. 


오래 전 그러니까 한 10년 전쯤이었을까요. 시골 초등학교 동기들 체육대회에 참석하여 같이 뛰는데, 제 마음 같지 않더군요. 배구공을 놓고 발로 차서 야구 경기처럼 뛰는 게임이었는데, 제 나름대로는 건강에 자신이 있고, 웬만한 공은 다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달려가서 차면 수비하는 동기들 저 너머로 뻥 찰 수 있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그런 심정이었을 테지요. 


그런데 옆에서 보니까 여자 동기들이 학창 시절과 달리 마음 같지 않아 보입니다. 몸도 마음도 어린 시절과 달랐던 것이지요. 홈에서 볼을 세워 놓고 정말 있는 힘껏 세게 찼는데, 볼이 내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도 열심히 뛰면 1루에서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공을 찬 뒤 1루로 뛰던 여자 동기가 갑자기 붕 뜨는 것 같더니 그 자리에 그만 너머집니다. 아마도 본인은 1루로 빨리 달려가려는 마음에 서둘렀던 모양입니다. 어린 때나 젊은 시절이었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상황이지만 지금은 나이가 만만찮고, 긴 세월 운동도 제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니 몸의 균형을 맞출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나머지 동기들은 그 여학생이 넘어지는 모습에 웃고 말았지만 그 여자 동기는 넘어져셔 영 낭패입니다. 그래서 제가 곁에 가서 그 여자 동기의 손을 잡고 살짝 일으켜 세웠습니다. 괜찮냐고 확인하면서 말이지요. 아무리 동기동창이라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우스꽝스럽게 넘어지면 창피할 수밖에 없지요. 자신은 넘어져 있고 동기들은 모두 웃고 있으니 얼마나 낭패겠습니까. 다행히도 그 여자 동기는 제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서면서 


"아이고, 야야. 난 분명 달렸는데 이렇게 픽 날라갈 줄 누가 알았나. 진짜 마음 같지 않네. 고맙다 야." 라고 말합니다. 칭피스럽다는 말을 하지 않아 그야말로 다행입니다. 그 여자 동기와 학창시절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제가 순간적으로 달려나가 손을 내밀고 그녀도 제 손을 잡고 일어나 동기들 앉아 있는 좌석으로 돌아오니 모두들 박수를 치고 야단법석입니다. 제 입장에선 오랜 기간 학새들과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뛰어나가 사태를 파악하고 손을 내밀었던 게지요. 어쨌든 크게 다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 노년 세대들의 몸은 어리고 젊었던 시절과는 정말 다릅니다. 그렇다면 정신은 어떨까요. 머릿속으로는 모든 것이 이해하고, 어떤 일이든 해낼 것 같지요. 그런데 막상 현실에 맞닥뜨려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발생하는 문제들을 우리들 머리 속에서는 해결책이 금방 나오지요. 그런데 사람들과 함게 모인 자리에선 그런 해결책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해결책이라고 생각해도 사람들을 우리 자신의 생각처럼 이끌어내는 것 또한 그리 쉽지 않답니다. 그래서 어떤 좌중이든 나이가 많은 사람이 제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더라도 그냥 그 사람만의 생각일 뿐이라도 치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어울려 뭔가 해결책이 떠올랐다고 해도 한번 '쉼'의 시간을 갖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모두 들어보는 것이 현명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해결책을 부탁하면 그제서야 조용하고 부드럽게 자신의 생각을 내놓습니다. 그것도 좌중의 의견이 나오기 시작하는 즈음이 아니라 대화가 거의 끝나가고, 잠깐의 소강 상태일 때 노년 세대가 자신의 의견을 내놓아야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하기 쉽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처음부터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이 관철되지 않으면 세상 무너질 듯이 마구 떠들며 주위 사람들의 생각은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격주 금요일 오전 11시에 시작하는 독서회에서 가장 연장자인 여자 선배님은 절대로 처음부터 화제를 주도하거나 전체 분위기를 좌우하려는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습니다. 어제는 세 사람이 토론을 전개하는데, 꼭 3자매가 정답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처럼 보여 정말 보기 좋더군요. 동네 마을 카페 대표께서는 환경이나 기후 분야에 직접적으로 활동하시고 평소에 공부를 많이 하셔서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알려 줍니다. 이분은 평소 사람들과 교류를 많이 하셔서 그런지 몰라도 사람들을 대할 때 늘 환한 웃음과 함께 초긍정적이고 명랑한 모습으로 어울립니다. 또 다른 분은 지난 달 따님이 서울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아이비리그 유학을 떠날 예정인데, 절대로 자신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우리가 축하해도 계면쩍어하시면서 쑥스러워합니다. 그렇게 세 분이서 정답게 각자 읽은 책 내용을 부드럽고 자유스런 분위기로 대화를 합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하는 분은 바로 최연장자 여자 선배님이십니다. 나이 70에 막 접어들었는데, 나이가 적은 사람들과 어울릴 때 정말 바람직한 모습을 보입니다. 잔잔한 미소와 함께 다른 이들의 발표에 맞장구도 치고, 리엑션도 편하게 해주어 좌중 분위기를 편안하게 해줍니다. 그런 것이 전체 분위기 조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마련이지요. 그분을 보고 새삼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세상사 쓸데없이 관심두거나 간섭하지 말고, 여유를 가져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나이가 들면 맥락을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