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부모 마음을 이해하고

추석 명절 3남매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by 길엽

단체 카톡에 비슷한 연배들이 손자 손녀들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려 흐뭇해 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참으로 부럽습니다. 우리집 3남매는 30대 초중반인데 아무도 결혼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제가 먼저 말하기도 좀 그렇지요. 누구나 자신의 자식에 대해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듯하지만, 선뜻 제 생각을 말할 수가 없네요. 어린 시절부터 3남매는 별로 다투지도 않고 유난히 우애가 깊고, 저와 아내에게 지극정성으로 효도를 해주기에 3남매에게 불만이 있을 수가 없지요. 그래서 저도 그들에게 뭐든 기탄없이 말할 수 있을 같은데 생각처럼 쉽지 않네요. 이젠 셋 모두 짝을 찾아 그들의 공간을 찾아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들이 싫어서 결코 그런 것이 아니랍니다. 언젠가 떠나가야 하고, 저와 아내가 늘 지금처럼 그 자리에 있을 수는 없기에 말입니다.


막내가 추석 연휴 첫날 일찍 경기도에서 내려와 합류하니 3남매 완전체가 되었습니다. 무슨 껌딱지도 아니고 하루 종일 셋이서 무리를 지어 다닙니다. 쓰레기 분리수거나 음식물 쓰레기 처리도 함께 다녀오네요. 그렇게 갔다가 오는 길에 저와 아내를 준다고 아이스크림을 가득 사왔습니다. 저는 평소에 '메로나'를 주로 사먹는데, 3남매는 꽤 비싼 것을 가득 사왔습니다. '브라보콘' 같은 거 말이지요. 아내가 한 개를 들고 희희낙낙합니다. 이 녀석들 제 카드를 들고 가서 산 것 같은데, 아내는 그렇게 사온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저를 놀립니다.


"아~들이 이거 사왔네. 당신은 몰랐제. 하기야 비싼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줄 모를 걸. ㅋㅋ"


기가 차서 저도 모르게 그냥 웃어버립니다. 아이들이 집에 없을 때, 밤늦게 책을 보다가 또는 원고를 쓰다가 산책 겸 가까운 수퍼에 걸어가서 '메로나'를 가득 사오면 아내가 씩 웃기만 하지 손에 들지 않더군요. 그래도 그런가 보다 했지 그 와중에 비싼 거를 찾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게 절 놀리면 재미있는 모양입니다. ㅎㅎ.


평소처럼 큰아들이 가족을 위해 요리를 준비합니다. 딸 아이가 '오빠는 정리정돈을 워낙 잘 해.'라고 하네요.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준비하면서 조금 전에 재래시장에서 장을 봐온 짐들을 꺼냅니다. 큰아들이 폰에다 음악을 틀어놓고 흥얼거리며 아주 즐겁게 요리를 합니다. 딸 아이와 막내아들은 시장에서 사온 것을 정리합니다. 셋 모두 작장인이라 '재래시장상품권'을 가지고 가서 샀지요. 셋이서 부엌에 나란히 서서 뭐라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여러 가지 추석 명절 음식을 꺼내놓고 진열합니다. 대부분 재래시장에 가서 사온 것이지만 혹시나 음식이 상할까 다시 꺼내 놓고 찬바람을 맞게 합니다. 그리곤 냉장고에 차곡 차곡 넣네요. 그렇게 정리하면서도 또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습니다. 그 장면을 보는 것안으로도 행복합니다.


막내아들은 '진지 모드 청년' 그 자체입니다. 어릴 때 우리 가족이 노래방에 함께 가면 꼭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그 당시엔 우리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때가 이해가 가진 않지만, 하옇든 애국가를 그렇게 열심히 부르더군요. 그래서 지금 저렇게 공무원이 된 모양입니다. 그래서 가끔 유머라고 들려주는 내용이 참 어설픕니다. 그래도 우리 모도 잘 들어주고 크게 리엑션해줍니다. 셋 중에 아내와 가장 많이 닮아서 그런지 몰라도 아내가 막내아들을 유난히 좋아합니다. 하기야 저도 그렇고 큰아들과 딸 아이도 막내아들에겐 지극정성이지요. 셋이서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늘 저렇게 사이좋게 지내니 참 보기 좋습니다.


아득한 그 엣날 고향 시골 마을 제 형제도 2남 1녀 3남매였고, 저 혼자 고교시절부터 대구 시내 하숙을 하면서 집을 떠나 생활하였습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온몸으로 희생하면서 제 공부를 시켜주었습니다. 가난한 농가 어려룬 살림에 저를 대구 시내 하숙 시킬 때는 우리집의 미래를 보고 밀어주셨겠지요. 제가 잘 되면 집안이 벌떡 일어설 줄 아셨겠지요. 그래서 가끔 시골에 가면 어머니께서 밤 늦게까지 제 이야기를 듣겠다고 주무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아버지도 형도 여동생도 저한테 정말 정말 잘 해주었는데, 제 노력이 미흡하여 가족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제 가슴에 늘 한으로, 죄스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늘 응원, 격려해주시던 어머니께서 일찍 세상을 버리시면서 보답할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그 당시 부모님과 우리 3남매 그렇게 다섯 명이 추석이든 설이든 명절 즈음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었을 때 부모님께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저희를 바라보시던 모습이 정말 그립습니다. 당신들께서도 그때 마음이 지금 저의 심정과 비슷할 테지요. 이제 이 나이가 되어 보니 그 옛날 부모님 심정이 그랬을 것이라고 짐직이나마 하게 되니 저도 철이 참으로 늦게 든 것 같습니다. 그때 우리 부모님 저희에게 하실 말씀이 분명 많으셨을 텐데, 끝까지 하지 않으셨지요. 저희들이 뭘 잘 해서 말씀을 하시지 않았을까요.


새벽에 일어나 방방을 확인해 보니 3남매가 깊이 깊이 잠들어 있습니다. 30대 초중반이라 어엿한 성인임에도 제 눈에는 늘 어린 시절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얼굴로 보입니다. 잠든 모습도 이쁩니다. 결혼 언제 할 거냐고 묻고 싶은 마음은 꿀떡 같은데, 그냥 입을 닫아 버립니다. 그들이 먼저 말해주기 전에는 제가 말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추석 날 혼자 아침 일찍 일어나 아내와 3남매 자는 모습을 보고 그 옛날 부모님 살악 계셨을 때 심정을 헤아리면서 하루 시작합니다. 작가님들 추석 연휴 행복하고 즐겁게 보내세요.


P.S

한번은 시골집에서 저 혼자 제 방에서 두툼한 이불을 덮고 깊이 잠들었다가 눈을 떴는데, 바로 제 얼굴 위에 어머니 얼굴이 가까이 있으셨지요. 다른 사람 같았으면 정말 놀랐을 텐데, 어머니라서 괜찮았던 것 같았습니다. 제가


"엄마 왜 밤늦게까지 잠도 안 자고, 내한테 무슨 할 말이 있나."라고 물으면 어머니께선


"으~으~응, 아이다. 그냥 니 얼굴 한번 볼 끼라고 왔지. 피곤할 낀데 미안타 잠을 깨워서."


그러시면서 두 손을 제 볼을 꼭 감싸주셨습니다. 하루 종일 들에서 손등과 손바닥이 유난히 거칠었던 기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저도 어머니 하시는 대로 가만히 있었지요. 그렇게 일찍 돌아가실 줄 알았으면 그때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와 대화라도 많이 나누었으면 조금이라도 덜 죄송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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